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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구피 (해외파) VS 피라미 (국내파) -위험한 동거


지난 8월 21일 회룡사 계곡에 다녀와서 썼던 포스트 중 잠시 언급했던 우리 집 열대어 구피와 피라미의 동거에 대한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잡는 재미만 보고 그 자리에서 방생 했으면 좋았을 걸 고 피라미들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어찌 처리 할까 고민하다 구피들이 살고 있는 집에 넣었던게 비극의 시작이었죠.



피라미를 넣으면서도 "이거 구피들이 다 잡아먹어 버리면 어떻해?" 라며 어린 피라미들은 걱정했어도 쪽 수도 많고 이미 자랄대로 자란 구피들은 걱정도 하지 않았죠.

그도 그럴것이 당시 왠만큼 커다란 구피들이 열 댓마리 정도 였고 총 7마리 피라미 중에 한 마리만 구피 보다 조금 작은 정도였고 나머지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안보일 만큼 아주 작고 어린 녀석들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 구피들이 본인들이 사는 터전에 이방인이 들어 온 것에 대한 텃세라도 부리듯이 어린 피라미들을 쫓아 다니며 괴롭히더라구요.
이걸 빼야되나 말아야 되나 순간 고민하다가 가족들과 이야기 하고 식사를 하다보니 두어 시간 정도 잊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  퍼뜩 피라미들 생각이 나더라구요. "얘들 다 잡아 먹힌거 아냐? ㅠㅠ"


얼른 달려가 어항을 들여다 보았을 때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더라구요.
구피보다 조금 작은 고 피라미 한 마리가 저보다 덩치크고 쪽 수도 많은 구피들을 한 쪽 구석으로 몰아 넣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구피들은 오른쪽 구석에 몰려 있고 작은 피라미들이 온 어항을 누비고 있더군요.
구피 한 마리가 살짝 나오려고 하면 그 대장 피라미 한 마리가 사정없이 쪼아서 구석으로 몰아버리구요.


사실 그때는 왠지 우리 토종 물고기 한 마리가 저보다 덩치도 큰 열 댓마리의 구피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을 보며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했고 작은 물고기들 사이에서라도 우리 것의 강함을 발견한 듯 하여 우월감과 뿌듯함 까지 느껴지더라구요.
펄펄 날아다니는 그 대장 피라미 혹시라도 물 밖으로 튀어나와 죽을까봐 어항 뚜껑까지 덮어 주었는데 그 녀석은 본인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뚜껑에 뚫린 50원짜리 동전 하나 정도의 크기의 구멍으로 어찌 나왔는지 의문이지만) 이틀을 못 넘기고 어항 밖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지요.






그렇게 대장 피라미가 죽고 난 후 또 작고 연약해 보이는 피라미가 걱정이 되더라구요.

대장이 없으니 구피들이 다시 공격하고 괴롭힐까봐...
하지만 기우였는지 구피는 어항 윗 쪽 공간에서 피라미들은 어항 아래 쪽 공간에서 그럭저럭 잘 지내는 듯 보이더라구요.


그렇게 3~4일 정도 지났을 때 구피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엥? 얘가 왜 죽었지? 물이 너무 더러워서 죽었나?"
어항도 깨끗하게 청소해주고 물도 갈아주었습니다.


이틀 후 또 한 마리의 열대어가 죽었습니다.

전화로 이상하게 구피가 죽는다고 구피를 분양해 준 이모에게 자문을 구했지요.
"너희집은 구피가 사는 어항이 너무 횅~하더라...물고기들은 숨을 곳을 많이 만들어 줘야해."
당장에 마트 가서 물풀도 더 사다가 넣어줬습니다.


나름 정성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한마리가 죽었습니다.

이번에는 "밥을 너무 많이줬나? 그래서 얘들이 너무 배불러서 자꾸 죽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얘들이 심하게 배가 볼록한 종자들이니 뭐 조금만 많이 먹어도 소화를 못시키고 배터져 죽을 수도 있다는 어설픈 추리까지 하면서 말이죠. 
안 그래도 물고기 밥량이 많았는지 물도 너무 빨리 더러워지고 그러길래 아침마다 딸내미와 물고기들의 밥을 줄 때 전에 주던 양의 반에 반으로 줄여주었습니다.

우리 딸내미 매일 밥 줄 때마다 "언니!$^&  맘마!@&*^." 못 알아 들을 외계어로 대화를 나누고
잠깐 슈퍼에라도 가려면 "이야 (우리 딸내미는 물고기를 이야라고 합니다. ㅡㅡ;;)~안녕 ."이라고 꼭꼭 물고기에게 인사를 하고 좋아합니다.
구피를 키우기 시작한 이유 자체가 딸내미 정서함양을 위해서 였고 여러 생명들을 거두는  꾀나 큰 수고로움과 귀차니즘도 극복하고 나름 정성을 들여가며 기르던 물고기들인데 자꾸 죽어나가고 원인도 찾을 수 없으니 정말 속이 상하더라구요.


어느 날 시골에 이틀간 다녀와 보니 이 번엔 두 마리나 죽어 있더군요.
더 충격적인건 그 시체들을 피라미들이 모여서 뜯어 먹고 있구요.
순간 소름이 쫙 돋으면서 피라미들이 꼴도 보기 싫어 졌습니다.
가뜩이나 치우기 싫은 물고기 시체들 더 치우기 싫었던 것은 당연하구요.
신랑에게 피라미들 냇가에다 데려다 주라고 했지만 "피라미들이 원래 잡식이니 자연의 섭리지 뭐...살아있는 거 잡아 먹은 것도 아니고 걔들도 본능이니까..."라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군요.
이때까지도 구피들이 죽는 이유에 대해선 산소가 부족 한 건가?, 새끼 낳다가 죽었나?...혼자서 갖가지 추리를 했었죠.


그 뒤로도 구피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 나갔고 그때마다 그 시체 주변에는 항상 피라미들이 집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달려드는 피라미들 때문에 죽은 구피들을 치우는 일은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근처에만 가도 정신 없이 도망다니고 숨기 바빠하던 녀석들이 이젠 도망은 커녕 나무 젓가락으로 시체를 꺼내는 순간에도 쫓아오며 쪼아댔습니다.


어느 순간 혹시 얘들이 구피들을 괴롭히는게 아닐까? 그래서 자꾸만 구피들이 죽어나가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었고 또 피라미들에게 손도 대고 싶지 않아서 그냥 두었죠.


그러다 드디어 비실비실 죽어가는 구피 한 마리를 두고 피라미들이 집적대며 괴롭히는 모습을 발견 했습니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한 마리 타겟을 정해 공격하고 괴롭혀서 죽게 만들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결국은 피라미들은 격리조치 시켰습니다.
한 달도 채 안 된 시간이지만 사람이 주는 밥 먹고 살던 아이들이 야생의 상태로 돌려졌을때 적응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지만 이 정도의 공격성과 단결력이면 야생에서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에너지 넘치는 녀석들을 잡아다가 좁은 어항속에 넣어두었으니 이 녀석들도 넘치는 힘을 어디로든 분산 시켜야 했겠지요.
또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 남아야 할 녀석들의 태생에 따른 공격성과 야생의 본능을 간과한 채, 정말 별 생각없이 피라미들을 잡아와 관상어인 구피들이 사는 어항속에 넣은 우리 부부의 잘못이 너무 크네요.






구피 숫자가 많이 줄었구나 정도로 생각하고 직접 세보지는 않았었는데 피라미들을 다 꺼내고 보니 열 두 마리정도는 죽고 달랑 4마리만 남았네요.
그래도 다행인건 피라미들의 공격을 받아 비실거리던 구피 한 마리는 조금씩 회복 되는 듯 하더니 이젠 제법 어항 위, 아래로 헤엄치고 다니더라구요.


처음에 눈에 잘 보이지도 않던 작은 피라미들...한 달도 채 안 된 시간동안 정말 많이도 자랐습니다.
유년시절에 좁은 어항에서 주는 음식들 받아먹는 걸로 길들여져서 야생에서 잘 적응할지 걱정이지만 더 늦기전에 이제라도 피라미들은 저희들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보내주려구요.
부디 잘 적응해서 씩씩하게 사냥도 잘 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