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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솔직한 사용기

어제 난 처음으로 영화가 끝난 후 기립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보았다 - 내사랑 내곁에






가끔 어떤 훌륭한 영화 시사회장에서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쳤다는 기사들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극장에서 그런 장면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역대 최고의 흥행을 했다던 태극기 휘날리며,실미도,왕의 남자 등 부터... 최근의 해운대까지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표정에 감동이나 영화에 대한 여운이 남아 있긴 했지만 그 자리에서 박수를 치는 것은 못 보았습니다.

어제 오전 9:30분 조조 타임, 파주 출판단지 안에 위치한 이채 시너스.
평소 한가하기로 유명한 이채 시너스에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객석의 2/3 가량이 채워졌고 내사랑 내곁에가 끝난 후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깜깜하고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공연히 쑥쓰러운 소심쟁이 하랑맘은 마음으로만 박수를 보냈지만 말입니다. ^^;







이 영화의 어떤 점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진심어린 박수를 받아낼 수 있었을까요?


20kg을 감량한 김명민의 연기 투혼 덕분에 톡톡히 홍보 효과를 본 내사랑 내곁에.
이미 다 알고 있는 결말,  불치병에 걸린 한 남자와 그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한 여자의 순애보를 다룬
뻔한 스토리 전개 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보석같은 명품 배우 '김명민'과 드라마 '황진희'
때부터 팬이 되어버린 하지원이 주연하는 영화라 배우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별 다른 기대는 물론 하지 않았구요.



루게릭 병이라는 생소한 병에 걸린 환자의 투병기라는 점을 빼고는 스토리면에서 봤을때 불지병을 다뤘던 기존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다던가 탄탄한 구성력을 갖추었다라거나 특별히 영상이 아름답다거나...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불치병 소재를 다룬 영화들 처럼 처음에는 씩씩하게 받아들이던 주인공이 점점 악화되는 병세에 지치고,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에 좌절하고....또 희망을 갖고... 그리고 결국에는 사랑하는 남겨진 사람들을 걱정하며 죽게되는  공식같은 뻔한 스토리였지요.





하지만 이 영화가 억지스럽게 관객의 눈물샘만을 자극하려는 신파로 끝나버리지 않을 몇 가지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첫째, 죽음에 대한 재 조명이었죠.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죽음은 누구나 느끼는 막연한 공포가 아닌 현실 입니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다가 올 통과의례. 때문에 더 열심히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원래 사람은 다 죽어, 순서가 따로 없어서 그렇지, 그러니까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야."
"우리는 하루를 일년처럼 아니 십년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야."

실제로 지수와 종우 그리고 같은 병동에 입원한 다른 환자들을 보면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나는 것이, 말 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값진 일인지 느껴집니다.
그저 그 죽음을 두려워 하기 보다는 당장 죽는다고 해도 후회 없을만큼 지금 순간순간을 잘 보내야 한다는 메세지를 영화 상영 내내 전달 합니다.


둘째, 훌륭한 조연들이었습니다.

백종우(김명민 분)가 입원한 병실에 함께 입원한 환자들과 그 가족...
병원 허드레 일을 하며 식물인간 남편 곁을 9년간 지켜온 옥연 할머니(남능미 분)
수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형을 돌봐온 동생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병원측에 형의 안락사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앞길이 창창했던 피겨 선수였 던 진희. 사고로 전신이 마비가 된 안하무인 행동을 하는 여고생 진희 역할을 맡았던 브아걸의 섹시 걸 가인의 싸가지 연기도 재미에 한 몫했었구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인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남편역을 맡은 임하룡은 극중 내내 자칫 무거워 질 수 있는 분위기를 살리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 냈습니다.

대부분이 의식이 없거나 의식이 있어도 움직일 수 없는 반신불수인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생활고와 아픔...
힘든 과정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적을 바라는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풀어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핵심은 명품 주연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루게릭 병에 걸린 환자를 표현하기 위해 살인적인 체중 감량을 하고 연기 투혼을 불사른 김명민...
지금까지 그가 맡았던 모든 역할이 그랬듯이 백종우 역시 그를 위한 배역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사랑 내곁에에서 배우 김명민은 없었습니다.
전도 유망한 법학도였으나 루게릭 병이 걸린 뒤 점점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시간이 갈 수록 ㅜ ㅠ  움직일 수도 없고 마지막에는 그가 가장 두려워 했던 언어장애까지 겪게되는 환자, 그럼에도 죽는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백종우가 있었을 뿐 이었죠.

김명민이 살인 다이어트를 했다면 하지원은 7년간 고이 길러온 머리를 싹둑 자르고 철저하게 이지수가 되었습니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을 가진 당차고 씩씩한 여자,직업상 늘 죽음을 대하기 때문에 종우에 대한 병을 알면서도 스스럼없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도 합니다.

처음 종우를 만나던 날 종우 할머니의 염을 하면서 정성스럽게 닦고 화장을 해 준 그녀는 죽은 할머니에게 거울을 보여줍니다.
"할머니, 피부가 너무 고와서 화장이 잘 먹었어요. 너무 예쁘지요? 예쁜 옷입고 예쁘게 화장하시고 꼭 좋은데 가셔서 행복하게 사세요."
시체와도 스스럼 없이 대화를 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혐오 직업을 가진 여자, 때문에 남편들에게 두 번이나 버림 받았고 지고지순 청순함은 찾아 볼 수 없는 술도 잘 마시고 왈가닥 지수역을 같은 여자가 보아도 사랑스럽게 잘 표현하였습니다.

죽음 앞에서 너무 오버스럽지 않게 적당히 절제된 그들의 연기가 이 영화를 이끌어 갈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관객들이 보냈던 박수와 환호는 바로 그 지수와 종우역을 한 두 배우들의 연기에 감동받은 관객들이 보내는 응원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억지로 눈물샘 자극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설정도 많았고 영화를 보기전에 문득 생각했던 '혹시 이영화 마지막에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 부르는 유치한 일은 안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굳이 그 내사랑 내곁에를 힘겹게 부르다 죽어간 백종우를 보며 식상한 감도 있었습니다. 
어제 개봉했으니 앞으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얼마만큼의 관객을 동원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몇 가지 단점을 배제 하고라도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영화였다라는 것이 개인 적인 소감입니다.

나이가 한살 한살 늘어감에 따라 점점 감성이 메말라 간다 싶을 정도로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거나 눈물을 흘리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오랜만에 펑펑 울면서 재미있는 영화 한편 보고 왔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