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제주도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비행기를 타고 콘도에서 묵고, 를 렌트해 정말 편안한 여행을 했다.

나이가 들어서? 애가 있어서? 힘들어서? … 얼추 맞아떨어지는 듯한 이런 저런 핑계들이다.


 


내 나이
25,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제주 하이킹을 간 적이 있다.

4일 바싹 아르바이트를 해서 30만원을 벌어 충동적으로 떠났다.


인천공항이 아닌 부두에서 출발해 10시간 이상 배를 타고, 자전거를 렌트했고,
바퀴벌레가 가득한
민박집 이라도 가격만 싸면 OK였다. 비가와도 좋았고,
시원한 바다 바람이 그냥 좋았고,
방학이 너무 길어서 마냥 좋았던 시절이었다.
죽을 힘을 다해 자전거 페달을 굴리며
땀 범벅이 되어도 언덕 위에 다다르면
내리막 길이 있다는 이유로 좋았다
. 필름카메라를
들고 현상하는 날을 기대하며 설레었고,
젊음을 만끽할 수 있음에 무엇보다 좋았다. 그 땐 그랬다.



 

얼마 전의 편안했던 제주 여행을 가만히 반추하다 갑자기 힘들었지만 너무도 좋았던

8년 전의 제주 여행이 떠올랐다. 여행 첫날 통제 된 '오름'에 올랐다가 조난을 당했던,
정말 어처구니
없었던 당시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잠시 8년 전으로 돌아가 봤다.

 

젊음의 패기와 열정이 가장 충만했던 2001년 7월9. 여행 첫 날 

 

자전거 대여소에서 처음만난 재관이와는 오늘 코스까지만 같이 동행하기로 했다. 첫 도착지인 산굼부리로 갔다.
가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속의 거대한 분화구를 지나 또 다른 분화구인 아부오름으로 갔다. 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젊고 혈기 왕성한 우리는 철창을 넘나들며 스펙터클한 경관에 감탄했다
. 내려오는 길에 도랑에 빠진 경운기 꺼내는
일도 도와 드리며
,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한 신선함과 가슴 벅찬 제주 여행의 짜릿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다음코스는 다랑쉬 오름. 비가 많이 온다. 비바람을 헤치며 열심히 달려 도착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통제구역이
되어있었다
. 잠시 망설였다. 고민도 잠시, 젊고도 철없던 우리는 철조망을 넘어 산 정상을 한 번 바라보고 힘차게 오르기
시작했다
. 그 때 시각
530. 경사도 가파르고, 비도 많이 와서 길이 많이 미끄러웠다. 가도가도 끝이 없어 보이더니
결국 정상이다
. 뿌듯하다. 바람이 정말 쌔다. 기분 좋~. 사방으로 바다가 펼쳐진 제주의 멋진 풍경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시계를 보니 어느덧
7.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비는 어느새 그쳤다. 내려갈 길이 막막하다. 정상을
탈환한 기쁨도 잠시
. 서둘러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이 안 보인다. 무작정 계속 내려갔다. 내 키만한 가시 넝쿨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 돌아서 다시 내려갔다. 여전히 길은 없다.

 

"나 못가!" 힘 없어서 도저히 못 가겠다.

"안돼! 해 지기 전에 내려가야 돼!" 배가 고파 미칠 것 같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 깔리기 시작한다. 나랑 재관이는 너무지쳐 내려가는 것을 포기했다. 정상에 초소하나가 있던게
생각나 초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자자고 했다
. 그런데, 독재자 창배형은 안 된다며 혼자 길을 찾는다. 이제 밤이다.
저 먼 곳에서 창배 형 목소리가 들린다
.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 "한이야 ! 한이야 ! 어딨어!"

 

난 더 이상 대답할 힘도 없어서 가만히 드러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딜 갔다 왔는지 양쪽
다리가 긁히고 피가 송글송글 맺혀있다
. 우리가 안 보여서 허겁지겁 키만한 가시덩굴을 헤치고 왔단다. 안쓰럽다.

 

해가 완전히 사라졌다. 우비도 없이 온몸이 흠뻑 젖은 나는 너무 춥고 배가 고팠다. 아무 말없이 우리는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그런데, 재관이가 갑자기 전화기를 꺼냈다. 스피드 011 ...119와 경찰서에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당시 우리의 0X9는 불통... 마음속으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다리다 너무 추워 초소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바람이라도 없으니 살 것 같았다. 옆에 보니 유통기한이 언젠지 모를 흙설탕과 커피가 있다. 열심히 퍼먹었다. 신세 참 처량하고 불쌍하다.

 

역시 스피드 011. 119소방차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온다. 얼마 후 어디서 나타났는지, 소방대원, 경찰관이 눈앞에 서있다. 시계를 보니 10시반. 한심한 듯 우리를 쳐다보시더니 바로 길을 안내하신다. 그렇게 가까운 뒷길이 있을 줄이야…

불쌍한 우리에게 민박집도 잡아주시고 밥도 사주셨다
. 정말 고마우신 분들… 인심좋은 제주도...

 

이런 사연으로 인해 혼자 여행을 왔던 재관이와 우리는 78일간의 제주기행을 함께하게 되었다. 민박집에서 샤워하고 빨래하고... 벌써 새벽3. 아무리 씻어도 진흙범벅 된 발은 잘 씻기질 않는다. 다리에 난 상처들이 이제서야 쓰리다. 짧고도 힘든 우리의 하루 일정이 모두 끝났다. 내일을 기약하며 굿나잇~

2001년 7월10
의 새벽은 그 어느날 보다 편안했다.



 

그리고 지금은 2009 10.
그 시절이 참 그립다. 함께했던 친구가 그립고, 근심 걱정 없었던 시절이 그립고,

자전거만 있어도 행복했던 시절이 그립다. 무엇보다도 걱정, 근심을 능가했던

열정이 충만했던 내 자신이 그립다.

 
제주 여행을 마치고 다시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캠프장에서

하랑이 엄마를 만났다. 그리고 6년 뒤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Oh, my god!!!!


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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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시에는 고생하셨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것 같습니다.
    점심맛있게 드셨는지요?
    한주 마무리 잘하시길..

    2009.10.09 13:0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언제 저런 시절이 있었나 싶습니다~ ㅎㅎ
      점심은 장인 장모님이 고기를 너무 많이 구워주셔서 잘 먹었습니다만... ㅎㅎ

      2009.10.10 23:58 신고 [ ADDR : EDIT/ DEL ]
  2. Oh, my god!!!! ㅋㅋㅋ...
    이거 행복한 비명이신거죠??? ㅎㅎ..
    오늘 금요일입니다..
    하랑이랑 행복하세여~~

    2009.10.09 13:0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즐거운 금요일~ 저는 창립기념일이라 회사를 쉬고 와이프랑 처가집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9.10.11 00:04 신고 [ ADDR : EDIT/ DEL ]
    • 10월 9일이 회사창립기념일이라 쉬었다면..???
      ㅎㅎㅎ.
      H그룹이신가요???
      그렇다면...^^ ㅎㅎ..뭔가 인연이 닿을 듯합니다..
      주일 잘 보내세요^^

      2009.10.11 08:13 신고 [ ADDR : EDIT/ DEL ]
    • 어떤 인연이 닿을지 궁금합니다 ~~ ^^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2009.10.12 16:45 신고 [ ADDR : EDIT/ DEL ]
  3. 뭔가 색다른(?) 경험으로 남으셨군요 ㅎㅎ;

    산에 갈 때는 비상식량하고... 체온을 보호할 수 있는 옷들을 챙겨가야 겠더라구요

    이왕이면 후레쉬 까지 -_-ㅋㅋ

    2009.10.09 13: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요즘엔 산에 갈 때 필수 아이템들 잘 챙겨서 다닙니다 ~ ^^ 즐거운 주말 밤 되세요!

      2009.10.11 00:04 신고 [ ADDR : EDIT/ DEL ]
  4. 사진만 봐도 행복해지는데요. 정말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입니다. 첫마음 고이 간직하시고 늘 행복하세요!!! ^^

    2009.10.09 14: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감사합니다 ! 첫! 마음..음...알겠습니다 !! 근데 러브스토리는 좀 ㅋㅋ
      즐거운 밤 되십쑈!

      2009.10.11 00:05 신고 [ ADDR : EDIT/ DEL ]
  5. 당시에 아찔한 기억도.. 모두 추억으로 남게 되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좀더 멋진 여행들을 왜 안다녔다 이런 후회도 남습니다. 충동적 여행~ 너무 좋으셨겠군요..^^

    2009.10.09 15:3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지금도 충동적이고 싶은데...처자식이 딸려서...
      충동만 일고 실천은 못하죠 ㅎㅎ 같은 심정이 아니실런지요 ㅋ

      2009.10.11 00:05 신고 [ ADDR : EDIT/ DEL ]
  6. 정말다행이네요 ^^
    역시 스피드 011를 써고 있는 저로서는 뿌듯하네요 ^^
    내일이면 기다리던 주말입니다.
    오늘 하루만 더 힘을 내자고요 ^^
    행복한 하루되세요.
    ^^

    2009.10.09 16: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스피드 011을 쓰고 싶은데, 회사에선 강제로 타사를 ...ㅎㅎ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009.10.11 00:06 신고 [ ADDR : EDIT/ DEL ]
  7. 진짜 제대로 여행을 하셨군요... ㅎㅎ
    2001년에 다랑쉬면.. 지금보다 더 가기 힘들었을 텐데...
    역시 여행은 고생을 해야 기억에 오래 남는가 봅니다... ^^

    2009.10.09 17: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같이 갔던 형이 부추겨서 ... 어린 동생들은 그냥 따라갔죠 ~~ ㅎㅎ 이제 고생은 사서 못하죠 ~~ ^^

      2009.10.11 00:08 신고 [ ADDR : EDIT/ DEL ]
  8.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게어요 ㅋㅋ
    이래저래 제주와는 인연이 깊으신 것 같습니다. ㅋ

    2009.10.09 18: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제주랑은 인연이 좀 깊어요~~ 4살 부터 8살 때 까지 살았거든요 ^^ 아빠랑 놀러다녔던 기억이 어렴풋이~~ ^^

      2009.10.11 00:08 신고 [ ADDR : EDIT/ DEL ]
  9. 여행다운 여행을 하셨네요...
    잊혀지지 않을꺼 같은데.....
    고생해야 평생 남더라구요......
    뭐 다신 고생하고 싶지 않으시겠지만......ㅎㅎㅎ

    2009.10.09 19:0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이제는 고생하고 오면 그냥 뻗어버릴거 같아서 ㅎㅎ 편안한 여행만 고수하게 되네요 ^^

      2009.10.11 00:09 신고 [ ADDR : EDIT/ DEL ]
  10. ^^* 재밌네요.
    근데 4일 바싹 일해서 30만원이나 벌 수 있는 알바가 있었던가요?
    약 10여년 전일텐데요.
    거의 잠도 안자고 일했었나봐요.

    2009.10.09 22: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코엑스에서 열심히 일했답니다 ㅎㅎ 집도 의정분데 일찍 안보내줘서 짜증이 많이 났었던 기억이~~ ㅎㅎ

      2009.10.11 00:11 신고 [ ADDR : EDIT/ DEL ]
  11. 그때 011이 산에서도 잘 터진다고 홍보하고는 했었는데.. 화길히 타사보다 잘터지긴 하더라구요~

    2009.10.10 07: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산악 지형에 강하다!! 카피 하나로 대박났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핸드폰은 잘 터져야 제맛이죠~

      2009.10.11 00:11 신고 [ ADDR : EDIT/ DEL ]
  12. 하랑아빠 반갑습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 글에서 하랑맘 만나신게 행운이라는 거에요? 아님 다른 의미인거에요?
    오마이갓 하니의 의미를 해석하기가 애매해서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9.10.10 07:5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안녕하세요~~ ^^ 반갑습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하랑맘은 늘 오마이 갓!! 이랍니다. ㅋㅋ

      2009.10.11 00:13 신고 [ ADDR : EDIT/ DEL ]
  13. 행운의 캠핑장이었군요.
    제주의 사연 잘 봤습니다.

    2009.10.10 15: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과연 행운이었을까요? 캠프장 알바를 안했더라면...더 큰 행운은 없었을까요? ㅎㅎ 풉~

      2009.10.11 00:15 신고 [ ADDR : EDIT/ DEL ]
  14. 하랑이 아빠분을 만나는 군요.^^
    너무 반갑습니다.
    절은 시절을 떠올린 글을 보니 제가 다 추억에 잠기네요.
    암튼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캠프장에서 만난 인연..^^

    2009.10.10 16: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hani. 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 하랑맘과 소통하시는 분들은 참 좋은신분들 같습니다. 하랑맘도 참 좋은신 분 처럼 댓글도 남기고 그러네요 ㅋㅋㅋ

      2009.10.11 00:16 신고 [ ADDR : EDIT/ DEL ]
  15. 포스트 다 읽고나니........지금은 헤어졌지만 8년을 만난 여자친구랑 처음 여행을 갔던곳이 제주도에요. 첫 여행이라
    추억도 기억도 참 많은데.......지금은 사진만 남았네요. 제주도 가서 살고 싶은 꿈이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버려지지 않고 계속 지속되고 있습니다. 사진 보니 옛생각이 많이 납니다.열정과 패기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수 있었던 그때가.....

    2009.10.12 02:5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6. why oh my god 인지 궁금하네요. ㅎㅎ

    파란만장한 제주도 여행기네요.
    저도 제주도 처음 갔을 때 정말 즉흥적이고 무대뽀로 여행을 다녔었죠.
    부산에서 10시간 배타고 성산포로 들어가 시외버스 타고 제주도 한바퀴.. 잠은 여관방에서..
    그래도 전 시외버스에 여관방이었으니 하랑아빠님보단 럭셔리한 여행을 했네요. ^^

    2009.10.12 10:2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17. 고현정

    처\\]]]]















    창배는 어디서 무얼하면서 살고있는지 장가느갔는지 궁금하다..

    2009.11.01 12: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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