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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솔직한 사용기

가시고기 이야기, 영화 부산(父山)

 


ⓒ : 네이버 영화

영화가 끝난 후 커다랗게 제목이 쓰여지고...다시 흩어진다.
영화의 제목은 '부산'이 아닌 바로 '父山'이었다.

영화 부산(父山). 마땅히 시간대가 맞는 영화가 없어 관람하게 되었다. 제목, 그리고 영화 포스터 만으로도 부산에서 벌어지는 삼류 건달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삼류인생 속에 드리워진 작은 진리가 있었다. 그것은 가족이란 자체가 짐이 되는 건달이지만 그들도 결국 아버지 라는 것.  바로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산 같은 사랑' 이다.     

 

영화 부산(父山)에는 아버지 둘과 그 두 명의 아버지 사이에 공존하는 아들이 등장한다. 게으르고 험악하고 몰인정한 아버지(고창석). 그리고 이십여 년이 넘도록 기세 등등한 깡패 아버지(김영호). 그리고 그 두 명의 아버지 사이에 존재하는 자상하고 외로운 아들(유승호). 이 영화는 키워준 아버지와, 아들의 존재를 모르지만 자신의 핏줄임을 부인할 수 없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저 그런 삼류 깡패들과 폭력적인 아버지 그리고 그를 쫓는 사채업자들이 내뱉는 재미없는 말장난들이 아니다. 또한 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신흥세력에 의해 추락하는 깡패 아버지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런 뻔한 스토리는 그동안 우리는 너무 많이 접해왔다. 관객들은 이제 이러한 유치한 요소 속에서 재미나 감동을 느끼지 않는다. 출생의 비장한 비밀조차 이 영화에서는 상투적이다. 어떠한 공감대도 끌어내지 못한다.

단지, 내가 주목한 것은 한가지다. 영화를 보면서 누구나 한 번은 머릿속에 떠올렸을 아버지라는 존재다. 어머니라는 존재가 그 이름 만으로도 따듯하고 포근하고, 가슴 뭉클한 느낌이라면, 아버지라는 존재는 왠지 모를 고독함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고 그 가족의 중심이 되어 가족을 이끌어 가지만 흐르는 세월 속에 아버지는 가족들과 서서히 멀어진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티낼 수도 없는 초라한 존재다.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가 느끼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렇다. 나를 낳아줬고 나를 힘들게 부양한 존재임을 알지만 왠지 따듯하게 다가갈 수 없는, 그래서 영원히 떠나는 그 날까지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전할 수 없었던 그런 존재. 결코 우리는 모르고 있지 않다. 아버지의 외로움을 그리고 그의 삶의 무게를… 하지만 이게 이 시대가 만들어 놓은 '아버지'라는 존재의 자화상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물건들을 정리하던 중 수첩 사이에 접힌 신문 조각을 발견했다.
신문에서 오려낸 빛 바랜 아버지란 누구인가라는 글이었다
 

 

 

아버지란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은 때 헛기침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이 학교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직장)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상사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의 최고의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모르는 콤플렉스 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한다.

그 이유는 “아들, 딸 들이 나를 닳아 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닳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그때가 지금 몇 살이든지 아버지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 최종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의 인상은

 

4세 때 -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 때 _ 아빠는 아는 것이 정말 많다.

8세 때 _ 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 때 _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14세 때 _ 우리 아버지요? 세대 차이가 나요

25세 때 _ 아버지를 이해 하지만 기성세대는 갔습니다.

30세 때 _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 때 _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 때 _ 아버님은 훌륭한 분이셨어

60세 때 _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탠데...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아들, 딸 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채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 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를을 보고 간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 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다. 


미처 몰랐던 바로 내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 : 네이버 영화

영화 부산(父山)을 보면서 느낀 것은 삼류인생에 대한 연민도,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세대에 대한 동정도 아니다. 바로 가시고기 같은 삶을 사셨던 나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아버지가 되어서야 느낄 수 있었던 그런 감정들그리고 앞으로 내가 겪어 나가며 몸소 느껴야 할 나의 몫……

 

父山보고, 산처럼 거대한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다시 한 번 헤아려 본다.



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