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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똘똘이 하랑이

신종플루, 앓고 나니 차라리 속 시원하다.



지난 여름부터 막연히 공포심을 키워오며 행여라도 23개월의 우리 하랑이가 걸릴까 노심초사 사람 많은 곳에 되도록 가지 않고, 외출도 삼가하고...조심한다고 했는데도 결국은 신종 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네요.

지난 수요일 새벽 4시경...잠결에 이불을 다 차버린  하랑이의 이불을 덮어주며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데 심상치 않은 열에 깜짝 놀랐습니다. 전 날 아침에 콧물 잠깐 흐른 것 빼고는 별다른 증상도 없이 내내 잘 놀다가 잠들었는데 갑작스러운 발열...
급히 체온을 재보니 39.6도.
평소 열감기에 잘 걸리지도 않고 그나마도 가장 열이 높게 났던게 38.3도 정도였는데 39.6도...급히 해열제를 먹이고 미온수로 몸을 닦아주었지만 쉽게 열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동네 소아과에 가느냐 아님 신종 플루 검사를 할 수 있는 종합 병원으로 가느냐를 두고 한참 고민을 하다 혹시...혹시 모르니 큰 병원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음...이유없는 고열에 해열제도 듣지 않는다면 일단 신종플루를 의심해 봐야겠네요. 일단 검사를 해 볼게요.
 한 가지는 10분 이내에 결과가 나오구요 RT-PCR검사의 결과는  2~3일 정도 걸립니다."
길다란 면봉 같은 것으로 하랑이 코를 쑤시며 점막을 떼어내는데 가뜩이나 힘들어 하던 하랑이 자지러지게 울어댑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해열제를 먹였는데도 계속 39도 이상의 고열로 힘들어 하는 하랑이를 달래며 1시간 같은 10분을 보내는데 "하랑이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라는 간호사의 소리가 들립니다.

제발...신종플루가 아니기를...
"1차 검사에서 신종플루 양성 반응이 나왔네요. 1차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는데 2차에서 양성 판정이 나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1차에서 양성이 나왔다면 신종플루일 확률이 90프로 이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눈 앞이 깜깜해 지면서 심장이 터질 것 같더군요. 남 일인 줄만 알았더니 우리딸이...
제 표정이 너무 절망적이었는지 의사선생님께서 이어서 말씀 하십니다.

"신종플루는 생각처럼 위험한 병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지금 하랑이 처럼 발병하자 마자 발견하여 타미플루 처방 받아 먹이면 길어야 3일 정도 앓고 나면 다 나아요. 병증이 빨리 나타나지 않고 어설프게 1차 검사 때 음성 나와서 치료가 늦어질 때 위험해 지는 수는 있어도 지금처럼 바로 알아내면 빨리 손을 쓰니 다행인거고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백신보다는 차라리 가볍게 신종플루를 앓고 지나가는 것이 훨씬 나을 수 있으니 잘 쉬게 해주시고 타미플루 5일동안 꼬박꼬박 먹여주세요."

하랑이 아빠에게 전화하는데 목소리가 떨립니다.
"오빠 하랑이가 신종 플루래."
평온하기만 하던 신랑의 목소리도 다급해 지더군요.
"어떻하다가...지금 갈까?"
잠시 생각해보니 여차 하면 몇 일이나 휴가를 내야 할 수도 있는데 급한 일 처리등은 하고 오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니야. 의사가 타미플루 먹고 몇 일 쉬면 나을거래. 열 나는 것 말고 큰 증상은 없으니까 일단 회사에는 말 하지 말고 혹시 모르니 급한 일 있으면 빨리 처리 하고 있어 봐. 무슨 일 있으면 다시 전화 할께."

계속되는 고열에 축 늘어져 잠만 자는 하랑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타미플루와 해열제를 먹이고 미온수로 몸을 닦아줍니다. "엄마...티원해요...(시원해요)." 라며 살짝 미소를 지어주는 하랑이가 갑자기 몸을 사시 나무 떨듯이 떱니다.
얼굴과 손 발이 차가워지며 새까맣게 변했고 눈 동자가 위로 넘어가며 경기를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 1분 가량 되는 시간 이었던것 같은데 저에게는 너무나 길고 무서운 시간이었습니다. 잠시 후 축 늘어져 잠에 빠져든 하랑이의 열을 재어보니 무려 42도 가까이 열이 올랐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일반 감기 처방하는 듯 약 먹고 쉬면 좋아질 것이라고 했지만 말로만 듣던 열경기를 하는 하랑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또 겪어 내야 할 까봐 무섭습니다.
아까 전화 했을때 하랑 아빠 빨리 오라고 할 걸...때 늦은 후회도 했습니다.
병원으로 운전하고 가는 사이에 또 발작이라도 할까 걱정되어 택시를 부르고 서둘러 대강 짐을 챙기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계속 되는 고열과 1차 결과 양성,열경기까지...
결국 하랑이는 신종플루 의심 환자들만 모여있는 응급병동에 입원을 했습니다.

길고 길기만 하루...계속되는 항생제와 해열제 투여에도 불구하고 38.5~39도 정도의 열은 하루 간 계속 되었습니다.
그래도 40도 이상의 고열은 더 이상 없었고 열경기를 일으키는 일도 더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꼬박 만 24시간 정도 계속되던 고열이 수그러 든 것은 다음 날 새벽 4시경...열은 차츰 내리기 시작했고
그 다음날 부터는 해열제 없이도 정상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고 축 늘어져 있던 하랑이도 서서히 활발한 제 모습을 찾기 시작했지요.

'신종플루가 아니라 독감이었나? 타미플루를 빨리 먹어서 그랬나? 생각보다 싱겁네. 금방 좋아질 걸 괜히 호들갑 떨며 입원했나?'
잘 놀고 있는 하랑이를 보며 어느 새 그 전날의 공포를 까맣게 잊은 하랑맘은 오히려 이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오후에 하랑맘의 전화가 울립니다.
하랑이의 신종플루 확진 검사에 대한 결과를 통보하기 위해 의사선생님 께서 전화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랑이 어머님이세요? 하랑이 2차 검사결과도 양성 반응이네요. 신종플루 확진입니다.
타미플루 잘 먹이셨으면 지금쯤은 열이 내렸을텐데 어때요?"
"네...어제 오후에 너무 열이 많이 나고 열경기를 일으켜서 성모 병원에 입원했어요. 지금은 열 다내리고 괜찮네요."
"아이고...그러셨군요. 많이 놀라셨겠어요. 그래도 이제 위험한 고비는 넘기신거구요 그쪽 병원에서 잘 해주시겠지만 다 나았어도 5일간 꾸준히 타미플루 다 먹이셔야 항체가 생깁니다. 참...하랑이는 백신 접종 안하셔도 되구요."
라며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진짜 신종플루였구나...

간호사실로 가서 먼저 검사한 병원에서 신종플루 확진판정 나왔다고 전했더니 신종플루 확진 환자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옮겨 주더군요. 
그 아이들의 증상도 감기를 앓고 있는 정도로 보일 뿐 생사를 넘나들 정도의 중증의 모습을 보인 아이는 한 명도 없었어요.
10일 가까이 장기 입원한 아이들 대부분은 동네 병원에서 가벼운 감기정도라는 말만 믿고 몇 일간 방치 되어있다가 폐렴등의 합병증으로 뒤늦게 신종플루 검사를 했을때 확진이 나와 그제서야 타미플루를 처방 받았던 것이 원인이더군요.
그나마 조기 발견과 빠른 처방을 받은 하랑이는 발열 이외의 다른 증세 없이 제일 늦게 입원했다가 제일 빨리 퇴원한 바람직한 환자 케이스로 남았지요. 


저를 비롯한 함께 입원했던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들과 각자 겪었던 증상에 대해 이야기 하며 내렸던 결론은 말 많고 맞히기도 걱정되고 안 맞히기도 찝찝한 신종플루 백신때문에 내심 고민이 많았는데 이 정도면  신종플루 한 번 앓고 넘어갈만 하고(물론 24시간 동안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냈지만...) 차라리 앓고 나니 백신 걱정없어속이 시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도 안 아프고 마냥 건강해 주면 더 좋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