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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클릭도 할 줄 모르는 친정 아버지 컴맹 탈출기.



충남 논산에 있는 친정...
하랑이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꼬박 세시간 반을 달려야 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버스나 전철 타고 용산이나 영등포역에서 기차를 타고 오면 다섯 시간 정도?
만만치 않은 거리이기에 한 번 올 때면 벼르고 벼르다 큰 맘 먹고 오게 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논산에서도 깡촌 중에 깡촌에 있는 친정에 새로운 물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바로 요 컴퓨터지요.
처음 부모님께서 컴퓨터를 사신다고 하실 때,
"엄마, 아빠가 컴퓨터를 어디가 쓰게? 할 줄도 모르면서...괜히 인터넷 비용만 다달이 나가게 되지..."
라며 공연한 일 벌인다는 듯이 핀잔을 주고 말았었지요.

막상 친정에 컴이 있으니 좋긴 합니다.
엄마가 컴 앞에 앉기만 해도 제가 하겠다면 쪼르르 달려드는 하랑양 덕분에 블로깅은 꿈도 못꾸고
그나마 하랑양 잘 때 잠깐잠깐 눈치 보면서 인터넷 검색 몇 가지 하는게 전부였던 하랑맘
딸내미가 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랑 노는 동안 이렇게 포스팅까지 할 수 있으니 말 입니다. ㅋㅋ

"야, 이리 와 봐라...이거 어떻게 하는거냐?
 왜 아무것도 안나오냐?"

아침 먹고 티브를 보며 뒹굴거리는 하랑맘을 아버지께서 부르십니다.
달려와 보니 윈도우창을 열어 놓은 아버지가
"켜진 것 같기는 한데 왜 아무것도 안보이는지 모르겄다. 니가 볼때는 글씨도 많고 사진도 있고 그러더만..."
"응...일단 인터넷창을 열어야지. 거기 인터넷 표시 클릭해봐."
별 것 아리라는 듯한 제 대꾸에 아빠는 물끄러미 빈 윈도우 창을 바라보시며 마우스만 이리저리 흔들어 대십니다.
참...아빠는 컴맹이지. 인터넷 표시가 뭔지도 모르고, 클릭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아빠...여기를 누르면 인터넷이 들어가지는 거야. 거기다 마우스 대고 눌러봐."
"어디? 이거 누르냐? 이거 누르냐?"
맙소사...우클릭, 좌클릭도 모르십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클릭하는 법부터 알려 드렸습니다.
"화살표를 여기에 대고, 이걸 두 번 누르면 들어가져."
따닥...빨리 더블클릭을 해야하는데...따~아 딱~!!!
"아이고, 난 잘 안들어가진다."
"아빠...빨리 눌러야지...따닥...다시 해봐..."
이번에는 빨리 누르기는 했는데 파란 화면에 대고 더블클릭 하십니다.
"아빠...여기에 화살표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 다음에 빠르게 두번 누르라고."
드디어 겨우겨우 인터넷 창을 열었습니다.
검색하는 법을 알려 드리고,스크롤바 사용하는 법 알려드리고...
검정 글씨가 아닌 링크 된 파란 글씨를 클릭해야 정보들을 볼 수 있네, 엑스를 누르면 창을 닫을 수있네 등등...


하나에서 열까지 한 시간 가량을 설명해 드렸습니다.

십 수 년간 험하고 단순한 농사일만 하시던 아버지...
더듬더듬 한참을 컴퓨터와 씨름을 하시더니
이젠 제법 국방대 이전, 농산물공판장 등을 검색하시며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가끔 언니나 동생의 싸이에 가서 사진을 보여주는 정도 만으로도 너무 신기해 하고 즐거워 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도 그 분들이 직접 검색해서 손주들도 보고 자식들도 볼 수 있도록 
인터넷 검색하는 방법을 알려드릴 생각까지는 미처 못했습니다.


어렸을 적 제 눈에 비친 아버지는
세상에 모르는것도 없고,

세상에서 가장 힘도 세고,
최고로 잘생기고 멋진 분이셨는데...

변해가는 세월에 적응하느라 뒤 늦게나마 익숙치 않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이젠 사진속의 부모님의 나이가 된 딸내미의

잔소리를 들어가면 열심히 클릭을 하고 계십니다.

컴퓨터 덕분에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 손을 원없이 잡아 보았네요.
사실 엄하셨던 아버지가 무서워 손 한 번 제대로 잡아 본 기억이 없던 어린시절 이었거든요...ㅋㅋ

오늘 저녁에는 싸이월드에 아버지 미니 홈피 하나 만들어 드려야겠습니다.
물론 우리 삼남매와 일촌 신청도 해 드리고 말이죠. ^________^*
네이트온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으시길래 채팅 시범을 보여 드렸더니 마냥 신나 하시는데
내친김에 네이트온 친구도 맺어야겠네요.
혹시 압니까? 조만간 아버지와 채팅이라도 할 수 있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