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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육아는 행복해

책 읽기가 괴로운 아이들, 엄마는 감시자?



권장도서를 찾아 도서관 책들을 사재기 하는 엄마들의 모둠?


올해 딸내미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이웃에 사는 동생이 찾아 왔습니다.
"언니...나 부탁이 있어서요...혹시 도서관 카드 좀 빌릴 수 있어요?"
"있지...근데 왜?"
"아니 학교에서 권장 도서목록이라는 것을 보내줬는데 이것 때문에 엄마들이 모둠까지 만들어서
도서관들 돌면서 자기들끼리 사재기 해서 돌려보는데
나처럼 그런 모둠에 끼지 못한 엄마들은 책을 구 할 수가 없어서 못 보여줘요.
나름 구한다고 구해서 읽어줬는데 50권 중에 한 12권 읽혔나?
책을 구할 수가 없어요.
권장 도서목록 카드라는 것도 있어서 읽은 것들은 펜으로 쭉쭉 그어 나가는데
학교에서 검사도 하거니와 또 엄마들끼리도 서로 그 카드 돌려보면서 마치 내가 아이 교육에
관심 없는 엄마라도 되는 것 처럼 취급하는데 너무 기분 나쁘더라구요.
00 이름으로 만든 도서관 카드랑, 내 이름으로 만든 것 2장 있는데,
오늘 도서관이란 도서관들은  
다 돌아보며 뒤져보고 되는대로 빌려오려구요."

도서관 회원 카드 한 장당 3권씩 빌려 올 수 있으니
딸내미 이름으로 된 카드와 제 이름으로 된 카드를 빌려 주면
최대 12권까지는 어찌어찌 빌려다 볼 수 있겠네요.

권장도서는 그냥 말 그대로 권장 도서일 뿐 아이의 책을 고를 때 참고만 하면 되는 거지
무슨 책 찾기 대회도 아니고 엄마들끼리 모둠까지 만들어 도서관의 책들을 모아다가 자기들끼리만 
돌려 보고 있다는 것도 우습고요, 
그걸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카드까지 만들어 검사하는 학교는 더더욱 어이 없게 느껴집니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진정한 목적은 권장도서 목록을 지우기 위하여?
도서관에서 만난 엄마는 감시자.


문득 언젠가 딸내미와 찾은 어린이 도서관에서 보았던 모녀가 생각났습니다.
학교에서 나눠 준 권장도서 목록으로 보이는 쪽지를 손에 들고 있는 엄마가
초등학교 1~2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이 앞에 산더미 처럼 책을 쌓아 줍니다.
시무룩한 표정의 아이는 한 권, 한 권 책장을 넘기고 있고,
그런 아이를 감시하듯 서슬 퍼렇게 바라보고 있는 엄마는
아이가 책 한 권을 내려 놓을때마다 쪽지를 펜으로 쭉쭉 그어 대며
중간중간 지워져가는 목록들을 감상하듯이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럼 아이가 책을 읽는 동안 엄마도 자신의 책을 보시던지...

아이와 도서 목록만을 번갈아 가며 뚫어져라 보고 있는
그 엄마를 보고 있자니 제가 다 숨이 막히고 한숨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엄마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책을 읽는 그 아이에게서는 독서란 즐겁고 행복한 것이 아닌
그저 어려운 문제집을 반복해서 푸는 것처럼 지루하고 힘든 노동? 공부?라는 것의
연장선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는 즐거움과 재미


독서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와 즐거움 때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즐거움...
일상 생활에서 많이 쓰이지 않는 아름다운 표현들을 눈으로 짚어가는 즐거움...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따라가며 뒷 페이지의 내용을 상상하고 궁금해 하는 자연스러운 호기심에 따른 즐거움...
알고 있던 내용을 다시금 정리하고 지나간 일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즐거움...
어느 부분에서 즐거움을 찾든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기 때문에 자는 시간,
쉬는 시간을 쪼개어서 읽고 또 읽고 하는 것이겠지요.

도서관에서 만났던 그 아이의 인생에 있어서 과연 독서는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저 같으면 책에 질려서 엄마의 손길에서 벗어날 만큼 크는 순간 손에서 책을 놓아 버리겠습니다.
그렇게 강압적으로 마지 못해 읽은 책의 내용이 아무리 재미있다 해도 재미있게 느껴질리 만무하고
아무리 좋은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해도 맹목적으로 활자만 읽어 내려가기도 바쁜 상황에
책 속에 담긴 의미까지 음미하고 되새기긴 역부족으로 보여집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초등학생 권장도서?


올 해로 중학교 1학년이 된 사촌 동생의 책장에 꽂혀있는

"초등학생들이 꼭 읽어야 할 문학 전집" 대략 이런 명칭의 전집 셋트.
처음 이모가 그 전집을 들여 주었던 것이 4년 전이었으니 그 사촌동생이 3학년때 들인 전집이지요.
책 구성 대부분이 앞으로 배울 교과서에 나오게 되는 단편, 장편들로 구성된
초등학생 자식을 둔 교육열이 좀 있다는 부모들이라면 다 한 질씩 들여 놓을 정도로
꾀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국민 전집이었는데...

가관인것은 황순원의 소나기는 기본이요 김동인의 베따라기, 김유정의 감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등
이걸 과연 초등학생들이 이해나 할까 싶은 책들의 구성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까지 있더군요.

70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 그리고 가진 자들의 위선과 사치, 그들의 교묘한 억압 방법
그리고 소외된 노동자 빈민의 삶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그 책의 깊고 심오한 내용을
풍요로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제 갓 열 살 안 밖의 어린 아이들이 어디까지 이해하고
얼마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요?
적어도 조세희님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그 책을 집필하지는 않으셨겠지요.
책의 내용에 대한 시대적인 배경 지식도 없고 작가의 의도나 그 내용, 문장에 담긴 함축적인 뜻을 파악 하기엔
그 전집이 타겟으로 삼은 대상 연령이 너무 어린게 아닐까요. ㅠㅠ

사실 이모집에 놀러 갈때마다 심심할때면 저도 한 권씩 뽑아 보곤 하는데
그때 마다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봐도 어려운데 도대체 이게 왜 초등학생이 꼭 읽어야 할 전집일까?'

내 아이를 진정으로 위하는 독서 교육.


거듭 말씀드리지만 독서의 첫 번째 목표는 즐거움과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딸내미에게 일찌감치 그림책 육아를 시작한 이유는 더도 덜도 아니고 그냥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그 안에 얻어지는 재미와 행복을 빨리 알려주고 싶어서 입니다.
책도 기호에 따라 느껴지는 재미의 크기가 다른지라 베스트 셀러 추천 목록에 있는 책을 샀어도
도저히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책도 많습니다.
다 큰 어른인 저도 재미없는 책은 손도 가지 않고 읽혀지지도 않습니다.
하물며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권장도서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이전에 내 아이의 기호부터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권장도서목록?

그 속에 담긴 50권을 다 읽히려고 엄마들끼리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스트레스 받아가며
내 아이를 혹사 시켜 일찌감치 책들에 질리게 만드느니 아이가 좋아라 하는 책 한 권을
아이가 원하는 만큼 50번이고 100번이고 읽어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당장에 독서카드의 목록에 빨간줄을 그을 수 없더라도
평생 내 아이의 든든한 친구로 책이란 이름을 소개시켜 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