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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손님이 나갈때 마다 그 손님 욕하는 미용사



임신 10개월, 출산 후 40일...
일 년 가까이 살짝 다듬는 정도의 머리 손질을 제외하고 다른 손질을 못했던 하랑맘...
덕분에 1년 전에 했던 퍼머의 웨이브는 다 늘어지고, 앞 머리는 축~쳐지고,
무엇보다 숱이 많아 산발이 되고 무거워진 머리를 보다가 견딜 수 없어 찾아 간 미용실...
아직 어린 한결이가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2시간 동안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자준 덕분에 무사히 머리에 힘 좀 주고 나왔습니다.

멀리 갈 수가 없어서 아파트 단지 내에 새로 오픈한 작은 미용실을 찾았는데...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저 밖에 없었습니다.

조금은 수다스럽다 싶은 40대 초반의 미용사...

처음 자리에 앉자마자 중학교 3학년이라는 아들이 공부를 아주 잘 한다며 자랑을 시작하더군요.
그 미용사가 필리핀에 5년간 아이들을 데리고 어학 연수를 다녀온지 얼마 안 되었고,
그 곳에서 월 90만원의 전원빌라를 얻어서 살면서 미용사로 계속 일을 했었고,
하루 일당 7천원이면 가사 도우미를 쓸 수 있으며,
영어, 중국어, 불어에 능통한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머리에 퍼머뼈를 다 말기도 전이었죠.



제가 오기 직전에 80대 노인 한 분이 오셔서 이쑤시개 만큼 얇은 로또로 머리를 말고 가셨는데
귀가 어두우셔서 의사소통하는데 너무 힘들었었고 노인냄새가 심해서 코를 막고 머리를 해 드렸답니다.
지금은 잠시 집에 가셨고 12시쯤 다시 오시기로 했는데 할머니 머리 한 번 구경해보라고 하더군요.


뭐...여기까지는 시작이었습니다.

20분 후쯤...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머리 안하고 차만 마시고 가려고 들렀어요."
"아...네...그러셔요...날씨가 많이 춥죠?"
한 눈에도 꾀나 친한 듯이 보이는 미용사와 손님의 사이...
그 손님은 한참동안 이것저것 참견을 많이 하긴 하더라구요.
"앞머리 부분이 자꾸 죽어서 퍼머를 해야하나?"
"해 주면 좋겠지만 좀 두셔도 될 것 같아요..."
서로의 스타일에 대해서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던 차마시러 온 아주머니 손님은 곧 나갔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나가자마자...
"에휴...처음 오셨을때 머리가 어찌나 촌스럽던지...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말이 많아서
저 손님 머리 하는 2시간 동안
살이 3kg은 빠졌을거에요.
인사 삼아 오다가다 차 마시러 오라고 들렀더니 벌써 2번째 차마시러 온 거라니깐요...

내가 봤을때는 저 손님 머리 오늘은 해 줘야 하는데 미용사도 쉬고 귀찮아서 그냥 가라고 한거에요.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딸이 초등학교 1학년이야.
애 생각해서 머리 염색도 하고 그러라 해도 저렇게 허옇게 하고 다니네..."


이번에는 아주 잘 아는 친구로 보이는 여자 둘이 들어왔습니다.
간식이라며 빵 봉지를 두고 곧 자리를 뜬 두 여자분들...
나가자마자...
"내가 이 동네에 살기 시작 했을때부터 알기 시작했으니깐 안지 한 17년 되었나봐요.
저 검정 옷 입은 사람이 어제 생일이었거든...그래서 내가 10만원짜리 꽃이랑 3만원짜리 케잌을 사들고 갔지.
그런데 저기 빨간 치마 입은 여자 있잖아요, 왜 남의 생일에 와서 술 먹고 울어대?
그 여자 때문에 13만원 쓰고 밥도 못 먹고 왔어요. 완전 장애자야.
아니...저능아야, 저능아...근데 저능아의 정확한 뜻이 뭔지 알아요? 좀 이상한 사람한테 쓰는 거 맞지?"

"글쎄요. 지능이 부족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말하는 거 아니에요?"
필리핀 어학연수 가기 전에 우리말부터 공부하시지...뜻도 모르면서 욕하시나...
어느 순간부터 미용사의 말투는 짧아지고 있었습니다.



저 오기전에 머리를 말고 가셨다는 할머니는 약속시간인 12시가 지나서 1시가 넘도록 오시질 않고 있었습니다.
웃긴건  잠깐잠깐 들렀던 모든 사람들이
아침에 80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오셔서 이쑤시개만큼 얇은 로또로 머리를 말고 가셨고
시간이 지나도 오시질 않고 있으니 머리카락이 다 타버릴까 걱정이라는 것을 듣고 갔다는 것이죠.

말로는 걱정하는 척 하면서 계속 그 할머니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더군요.

남자 손님이 한명 들어왔습니다.
머리를 살짝 컷 하시고 나가는 남자손님...
10년 이상 단골이시라는 그 남자손님이 나가자마자 이번에는 그 사람의 여자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1시 30분 정도 되었을때 아침에 머리를 말고 가셨다는 바로 그 할머니가 오셨습니다.
저는 잡지를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용사가 와서 저를 쿡~ 찌르며 할머니를 가리킵니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라는 것이죠. ㅡㅡ;;

처음 본인의 자랑부터 시작하여 오는 사람들마다 살며시 씹어주시던 그 미용사때문에
점점 미용실에 있는 2시간이 불편해졌고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의미있는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를 가리키는
그 미용사의 태도에 갑자기 정이 확~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머리가 잘 되었는지 어떤지 살필 겨를도 없이 빨리 나가 그 미용사의 수다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머리를 다 하고 미용실을 나서는데 괜히 뒷꼭찌가 따갑습니다.

제가 나가고 나서는 뭐라고 할까요?
기분이 표정에 금방 나타나는 제 특징때문에 나이도 본인보다 한참 아래인 애가 드럽게 쌀쌀맞다고 했을까요?

아파트 단지내의 미용실인 만큼 대부분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동네 사람들일텐데...
이런식으로 손님 욕해가면서 장사를 하는 것을 보니 오픈한지 얼마 안 된 그 미용실 참 걱정이 되더군요.
필리핀에 간 5년의 공백기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0년 넘게 알고 지낸 단골들이 많은 걸 보니 근처에서 미용사 일도 오래 했었고
싸게 놀리는 입에 비해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가 봅니다.
뭐...남 참견하기 좋아하고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친해질 수도 있겠지만
전 그 미용실 다시는 찾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가까워서 아이들 데리고 오고가기 편하다고 해도 말입니다.


미용실이라 하면 기본적으로 머리를 잘 해야겠지만
오늘 갔던 그 미용실의 미용사는 머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개인의 인격수양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몇 시간씩 머물게 되는 공간에 있는 만큼 더더욱 입조심을 해야 할 듯 한데...
지금까지 살면서 수 백번의 미용실을 가보았지만 오늘 갔던 미용실에선
최고의 손을 가진 미용사도 아니고 최고의 입을 가진 미용사를 만났던 것 같습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