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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육아는 행복해

과민한 엄마 때문에 스스로 왕따가 된 아이

아이들이 좋아 하는 동극 수업을 하는 날 이었습니다.
동극이라 하여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냥 아이들과 동화를 읽고 그 자리에서 배역을 정한 다음 그 동화내용을 토대로 즉석에서 연극을 하는 수업이지요. 서로 배역을 정하는 과정에서 은근히 으르렁 거리는 두 아이가 있습니다. 한 배역을 두고 벌어진 두 아이의 신경전... 언제나 처럼 일단 두 아이에게 양보 할 의향은 전혀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저 의향을 물어 본 것 뿐인데 약간 고집 센 한 예슬이는(비슷한 이름의 가명 입니다) 울먹이며 자기는 꼭 그 역할이 아니면 안된다고 합니다.안그러면 동극을 안하겠다고..

그러자 다른 아이가...!!! "얘들아...우리 그럼 얘 혼자 그 역할 하라고 하고 우리끼리 놀자...!" 휙~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런말 하면 안 된다고 아이를 나무랐고 두 아이가 싸우던 배역은 다른 아이에게 맡겼습니다.서로 양보를 안하니 어느 한 쪽을 시키기 어려워 내린 결론이었지요. 물론 잠시의 다툼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함께 어울렸습니다. 그냥 그렇게 동극은 시작되었고 무사히 수업은 마쳤습니다.

퇴근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전화 벨이 울립니다. 아까 동극시간에 싸웠던 예슬이 엄마입니다.

"선생님 내가 너무 가슴이 떨려서...말을 할  수가 없네요.오늘 동극시간에 00가 우리 00를 왕따시켰다면서요?"

"네? 아니 한 배역을 가지고 잠시 다툼이 있었지만 다른 아이가 하기로 하고 기분좋게 동극했는데요."

"00가 애들을 선동해서 우리 00랑 놀지 말라고 했다면서요...안 놀려면 자기만 안 놀면 되었지 어딜 친구들까지 선동을 하는 못 되먹은 아이가 있데요? 뫟ㅁ횜ㅎ밓"

잔뜩 흥분한 목소리의 예슬이 엄마는 한참을 이야기 했습니다.


"어머님...그런데 어머님 생각처럼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아이들이 다툴 때 자기와 생각이 맞지 않는 친구에게 괜히 '너랑 안놀아...'라고 했다가 금방 또 화해하고 놀고 그러잖아요. 실제로 오늘도 그런말 했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이좋게 놀았었구요. 아이들도 다 생각이 있어서 누구 한 사람이 그런다고 해서 다른 아이들까지 그 아이들과 놀지 않고 그러지는 않아요. 아직 그런 집단 행동을 할 월령이 아니기도 하구요."

한참을 이야기 하여도 그 엄마의 흥분은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7시가 퇴근시간임에도 불구하고 8시를 훌쩍 넘겨서야 퇴근을 했습니다.

다음 날 이번에는 또 다른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저와 늦게까지 통화했던 그 아이 엄마가 다른 아이들 엄마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00가 집단 행동을 조장한다...그런 아이와 어울리게 할 수 없다...' 뭐 이런 말들을 했다는 것이지요.

다행하게도 1년 이상 함께 수업을 하던 아이들이기에 아이들의 성향도 서로 잘 알고, 어떤 상황 인지도 알겠다. 아이들 사이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은 드는데 밤 늦게까지 이 엄마 저 엄마에게 전화해 아이의 험담을 늘어놓고 그 아이를 반에서 퇴출 시키는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는데 차마 호응을 못 했다...뭐 이런 내용을 말씀 하시더라구요.

어쨌든 시간은 흘러 그 다음 주 수업 시간이 되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일주일 간 자신의 엄마가 선생님께 전화하고 친구들 엄마에게 전화하고 혹은 예슬이 아빠와 이야기 하는 내용에서 자신 스스로를 가련하게 여기고 정말 큰 피해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게 된 예슬이에게 생겼습니다.  아주 활발했던 예슬이는 부쩍 소심해 졌으며 계속 제 치마 자락만 붙들고 친구들과 어울리지를 못했습니다. 분명히 지난주 브리핑 시간까지도 수업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친구들과 뛰어 노는 모습을 보았었는데 일주일 사이에 정말 큰 왕따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돌아 왔습니다. 친구들이 말을 걸어도 공연히 움찔움찔 합니다.


"쟤랑 놀지 말자..." 혹은 "너랑 안 놀아..."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들 쓰는 말입니다. 심지어는 제 딸 아이도 저에게 자주 쓰는 말입니다. "엄마랑 안 놀아..아빠 우리끼리 놀자...!"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아이의 성격에 크게 문제가 있지 않는 한 나와 뜻이 맞지 않을때는 토라졌다가도 금방 언제 그랬다는 듯 다시 어울리고 놉니다. 이 번에도 그렇게 끝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딱 한 마디에만 포커스를 맞추어 일을 크게 만들었고 그 과정을 아이에게 다 들려 주었습니다. 아이가 안쓰럽고 속상하고...뭐...이런 이야기들을 했겠지요. 자신을 안쓰럽게 여겨주는 엄마의 말을 자꾸 듣다 보니 아이도 자연스럽게 '아...내가 큰 일을 당한 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나 봅니다. 그렇게 아이는 결국 반을 옮겼고...또 그 반에서는 다른 이유로 적응을 못하고 센터를 그만 두었습니다. 악담 아니구요 진심으로 예슬이 엄마가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예민하고 과장 된 반응을 버리지 못하면 예슬이는 어느 곳에 가서도 친구들 사이에서 잘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뛰다가 넘어진 아이는 엄마의 반응에 따라 울거나 벌떡 일어나 툭툭 털고 다시 뛰어 가거나로 나뉩니다. 4살 딸내미도 가끔 "우리 하랑이...요즘 엄마가 잘 안아주지도 못하고..." 무의식적으 엄마의 미안한 속마음을 보여 줄 때면 정말 잘 놀다가도 한 없이 슬픈 표정으로 저에게 기대며 가만히 안겨 있곤 합니다. 같은 상황 같은 일도 엄마의 반응에 따라 아무 일도 아닌게 되고 큰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물론 왕따...뭐 이런 사안은 저를 포함한 모든 엄마들에게 민감하고 걱정 되는 일이긴 하지만 누가 봐도 걱정 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학부모가 된 입장에서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든 생각은 어쩌면 그 엄마는 딸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그렇게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소재 삼아 대화를 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정말 중요한 한 가지를 망각 하셨습니다. 그건 바로 아이가 듣는 곳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했던 것 이었지요. '전혀 의식하지 못했는데...엄마가 사람들과 하는 대화를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엄마가 내가 불쌍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난 불쌍한 아이였습니다. ' 그렇게 아이는 자기 스스로 왕따가 되었고 다음 주가 되어 친구들을 만났을때 혼자 어색해지고 잘 못 어울리게 된 것이지요.

아이를 키우면서 참 여러가지 걱정이 생깁니다. 말이 좀 늦다던지, 늦게 걷는 다던지...이가 늦게 난다 던지...기본 행동 발달부터 커 갈 수록 여러가지 걱정은 늘어만 갑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그 걱정들을 자연스레 공유 합니다. 아이들이 듣건 말건 상관 없습니다. 안타까운 건 조금 늦은 뿐인 아이인데...엄마가 다른 이에게 "얘는 이게 안돼..."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는 순간 아이들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했던 안 되는 부분에 대한 것을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글을 쓰는 저도 자주 하는 행동입니다. 가끔 하랑이는 말합니다. "내 얘기 좀 하지마!!!" 모르는 척 할 분이고 안 듣는 척 할 뿐이지 아이들도 다 듣고 있고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꼭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