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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똘똘이 하랑이

동생을 본 지 얼마 안 된 첫째가 살아남는 방법



하루의 해는 참 짧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나 싶으면 어느 새 저녁이 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됩니다.
딸내미를 어린이 집에 보낼 준비를 시키는 아침 시간과
아이들을 재우기 직전의 밤 시간은 엄마의 하루중에 가장 바쁜 시간입니다.

저녁 9시 무렵...
어느새 잠자리에 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자...하랑아...벌써 9시다. 얼른 먹고 있던 것 마저먹고, 쉬~ 하고, 치카치카 하고 와야
오늘도 동화 들을 수 있다. 10시 넘으면 자야하니까 책 못 읽는다."

잠자리에서 엄마가 읽어 주는 동화를 들을 욕심에 딸내미는 바빠집니다.

"아빠...엄마가 하랑이 쉬~ 하고 치카치카 하래요. 도와주세요."
아빠에게 달려가는 딸의 손에는 평소 즐거 가지고 노는 인형이 들려져 있습니다.
"하랑아...쉬~ 하려면 인형은 두고 와야지."
아빠가 그리 엄한 표정으로 말하지도 않았는데 화들짝 놀란 표정의 딸내미는 얼른 인형을 내려 놓습니다.
"내...내려 놓았어요. 이제 하랑이 이뻐요? 하랑이 말 잘 듣지요?"
오히려 남편이 더 당황스러워 합니다.
"하랑이가 왜 이렇게 눈치를 보지...나 무섭게 말한 것도 아닌데..."


앉은 자리 반복기도 지났는데 매일 같은책만 되풀이해서 읽어 달라고 조르는 딸내미,
글밥도 많아진 터라 매번 같은 내용의 책을 읽어주는 일 생각보다 많이 지루할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은 가져오는대로 읽어주는데 가끔 읽기 싫은 날은 다른 책 가져오라고 하죠.

"네...엄마...이책은 싫으세요? 그럼 다른 책을 볼까요?"
책장 앞에 서서 왔다갔다 하면서 중얼거립니다.
"공주책도 엄마가 싫어하는데...엄마가 보고 싶은 책은 뭐가 있을까?"
"하랑아...거기 책이 그렇게 많은데 뭘 그렇게 골라...하랑이가 보고싶은 거 가지고 와..."
"음...엄마가 보고싶은 책을 고르려고요, 엄마가 좋아하는 책이 어떤 책일지 모르겠어요.
빨리 골라야 한결이 울기전에 볼 수 있는데...책 고르기가 너무 어려워요..."


중얼중얼...거리는 딸의 말투에서 조급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엄마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하는 딸의 마음이 너무 절실하게 느껴져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직 어린 동생을 먼저 챙겨줘야 한다고 세뇌 당한 하랑이는 가끔씩 선심쓰듯 책을 읽어주거나 놀아주겠다는
엄마의 말에 항상 저렇게 종종 걸음을 칩니다.
동생이 울면 하던 것 다 멈추고 가 버리는 엄마의 패턴을 너무 잘 읽기 때문이죠.



좋아하는 초콜릿을 들고 한 시간째 만지작 거리고 있습니다.
치카치카 했으니 잠자리에 단 것을 먹으면 안 된다는 엄마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죠.
"난 이거 안먹고 싶다. 치카치카 했으니깐 내일 아침에 먹을거야."
잠시 후 또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난 초콜릿 내일 먹을거야. 엄마가 지금 먹으면 싫다고 했어..."
다른 아이들 같으면 그냥 까서 먹기도 하련만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은
안 하려 하는 딸은 그러질 않고 계속 주문을 외웁니다.

"난 안 먹고 싶다, 난 안먹고 싶다..."
너무 불쌍해서 "하랑아...그냥 먹어...괜찮아...이 다시 닦으면 되지..."
그러면 어찌나 화색이 도는지요...그래도 또 바로 먹지도 못하고
"정말 먹어도 되요?" 몇 번이나 확인합니다.

"엄마가 잠자리에 장난감 들고 오는 것 싫어해...내일 가지고 놀아야지."
"책 다 봤으면 제 자리에 가져다 두어야 해.
이렇게 두다가 책에 걸려 넘어지면 엄마가 속상해."

음식을 먹다가 흘리기라도 하면 동그란 눈을 뜨고 후다닥 휴지를 가져와 닦습니다.
쩔쩔 매면서 "엄마...미안해요. 내가 얼른 닦을게요..."


정작 그런 말들을 한 엄마는 언제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엄마는 생각도 안나는 규칙들을
딸은 전전긍긍하며 지키려 애를 씁니다.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자꾸만 엄마의 눈치를 보고 엄마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니 엄마 뿐 아니라 아빠의 눈 밖에 벗어나는 일을 안 하려고 하는 것이 너무 눈에 보여 마음이 아픕니다.
아직 3살이고 동생만 아니라면 아직도 한참 어리광을 부려야 할 나이인데...
그렇게라도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본인이 사랑받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나 착해요? 이뻐요? 귀여워요?
수시로 엄마의 칭찬을 바라며 수시로 질문을 하는 딸...

맞아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간혹 부리는 떼를 못 받아 줄 때도 많은데...

맨날 말 안듣고 떼 쓰고 하면 그냥 하루하루가 말 그대로 전쟁이겠지요.
마냥 재롱이 늘어가는 동생을 보며 웃는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기 위해 딸이 선택한 방법은 
그저 순종하고 말 잘듣는 아이가 되는 것이지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터득한 방법입니다.
그런데...그런 몸짓이 기특하면서도 너무 힘겨워 보일때가 많습니다.
이런 글을 보면 말 잘듣는 딸 뒀다고, 배부르는 소리 한다 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포스팅을 작성하는 내내 딸아이의 행동과 표정들이 생각이나서 계속 눈물이 나네요.

너무 말 잘 듣는 아이...
그래서 너무 가슴 아픈 3살배기 큰 딸...

그게 동생을 본 우리 하랑이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