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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차도녀, 아내를 꿈꾸는 남편의 곤란한 선물


퇴근길의 남편의 손에 낯선 쇼핑백이 들려 있습니다.
"이게 뭐야?"
"몰라...한 번 풀어봐..."
무심한듯 하지만 기대에 찬 남편의 표정...!!!

북실북실한 검정색 털 뭉치가 보입니다.
"목도린가? 와...따뜻하겠네..."
라며 펼쳤는데...따뜻해 보이는 털 스웨터입니다.

타이트한 티셔츠에 걸쳐입고 레깅스를 입으면 딱 '차도녀'라는 말이 생각 날
 스타일리쉬한 스웨터 였습니다.

하지만 옷을 보자마자 딱 그려지는 그림과는 달리
하랑맘은 차마 소화시킬 수 없는 작은 사이즈였습니다.


"응...이쁘네..."
"그지? 이쁘지? 이거 입고 부츠신으면 이쁠 거 같아서 샀어...입어봐..."
"어...나중에..."
"왜?? 지금 입어봐...잘 맞는지 어울리는지 봐야지..."

에혀...애를 둘이나 낳았건만 정녕 저 옷이 저에게 맞을것이라고 생각해서 사왔는지...
당연히 안 맞지요...
하지만 남편앞에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하랑맘...버럭 했습니다.

"아...나중에 입는다고...밥 차려야지..."

이쯤되면 좀 그만 포기하지...눈치없는 남편 자꾸만 재촉 합니다.

"입어봐...좀 사다주면 입어보고 좋아하는 척이라도 해야 다음에 또 사다 줄 맛이나지...
지금 입고 있는 그 위에 걸쳐라도 봐..."

                                                             <정녕 저는 이제 차도녀의 모습으로 거듭날 수 없을까요? ㅠㅠ>


혹시 모르잖아요 맞을지도...
하지만...역시나 였습니다.
허벅지까지 내려오게 디자인 된 그 옷은 하랑맘의 퉁퉁한 허리와 배에 딱 걸려서 더이상 내려오지 않습니다.
"앗...안 입는다고..그냥 나중에 천천히 다시 입어 볼게..."


하지만 눈치빠른 하랑아빠...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설마...그 옷이 지금 작아서 안 내려가서 그러는거야?"
좀 모르는 척 좀 해주면 덧나나요?
작은 약점이라도 잡으면 놀리기 일쑤인 남편 이런 좋은 먹잇감을 놓칠리가 없습니다.
"아...그렇구나...지금 옷이 작은 거 맞지?
아 진짜 넉넉해 보여서 사왔는데 이게 작아? 다시 입어봐..."

"싫다고...안 입는다고."
후다닥 옷을 벗어버리고는 부엌에서 저녁을 차리는데....

방에서 옷을 갈아입은 남편이 나옵니다.

"그래...너한테 작기도 하겠다...나한테 딱 맞네..."
늘씬한 체격의 남편 그 티셔츠를 입고 나오면서 빙글빙글 웃습니다.

어찌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나 둘째 낳은지 두 달 조금 넘었거든..."
옹색한 저의 변명에...
"알아...누가 뭐래? 그래...애 둘이나 낳았는데...이해하지...당연히...암튼 옷은 바꿔야겠네...
아...뭐라고 그러고 바꿔달라고 하냐...고민이네."

"그냥 애기들이 어린데 이 옷은 털 빠져서 못입겠다고 그랬다그래..."

갑자기 빤히 쳐다보던 남편이 피식 웃으면서 말합니다.
"왜? 난 거짓말 못하는 거 알잖아...와이프한테 작아서 못 입는다고 솔직하게 말해야지...
남자가 어떻게 거짓말을 해...쫌스럽게..."

저렇게 아내의 약점을 놀리는게 더 쫌스럽네...이 사람아...!!!
완전 얄밉습니다.

"아...애를 낳으면 그렇게 달라지나? 이런데서 파는 옷은 이제 못 입겠네?"
궁시렁궁시렁...매섭게 째려보는 제 눈과 마주친 남편은 또 뺀질뺀질 웃습니다.
"아니...난 정말 안타까워서 그러지..."


다음 날...
퇴근길의 남편의 손에는 어제 보았던 그 쇼핑백이 다시 들려있습니다.
"자...바꿔왔어...설마 이건 맞겠지..."

또 망신 당하는거 아닌가 싶어 떨립니다.
풀어보았더니 목에다 하는 워머 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불어난 아내의 몸매를 실감한 남편의 궁여지책 이었나봅니다.

폭신한 재질의 워머는 참 이쁘고 따뜻해 보이는데 그걸 보는 하랑맘은 왜 한숨이 날까요?
정말 이젠 백화점 숙녀복 코너에서 파는 옷은 못 입을까요? ㅠㅠ

마지막으로 이 글을 빌어 남편에게 한 마디 한다면...
선물은 물론 좋지만 짐작만으로 사오지 않으시길 바라구요
함께 가서 그 앞에서 이 사이즈 저 사이즈 입어보는 것도 서로 민망한 일이니
그냥 돈으로 주시면 제가 알아서 사 입겠습니다.
일단 마음은 감사했고 워머는 따뜻하게 잘 쓰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