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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똘똘이 하랑이

'너'를 '너'라고 부르지 못하는 엄마는 홍길동



언젠가 하랑이가 자꾸만 심통을 부렸습니다.

공연히 신경질 내고 씻지도 않고, 칭얼칭얼 거립니다.
처음에는 받아주고 달래주던 엄마도 슬슬 화가 납니다.
"너...진짜 자꾸 엄마 말 안듣고 찡찡 거리면 엄마 화낸다."

갑자기 하랑양 엉~엉 울음을 터뜨립니다.

혹시 어린이집에서 무슨일이 있었나 걱정이 되며 마음이 약해집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하랑이가 자꾸 엄마 말 안듣고 화내니까 엄마도 속상해서 화 내는거지..."

"엄마...엄마는 왜 자꾸 나한테 '너'라고해? 내 이름은 하랑인데...
나 진짜 '너'라고 하는 거 싫어."



생각해보면 '너'라는 말의 어감이 좀 날카로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이건 니가해' 이것과 '이건 하랑이가 해'
또는 '이건 니꺼지...' 와 '이건 하랑이꺼지...' ,
'니가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와 '하랑이가 이렇게 하면 안 되는것 같은데...'
왠지 '너'라는 말을 넣을때 보다는 '하랑'이라는 이름을 넣으면 좀 더 부드럽게 느껴지거나
조심스러운 뉘앙스의 말이 나오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은연중에
"너...진짜 엄마한테 혼난다, 너...자꾸 이럴래?"
이런 식으로 딸내미가 뭔가 지적하거나 혼낼 때
주로 딸 아이의 이름보다는 '너'라는 말을 자주 쓰는 저를 느꼈습니다.


이 미묘한 차이를 3살 꼬맹이가 느낀 걸까요?

아주 어렸을때부터 유난히도 '너'라고 말하는 것을 싫어라 하더군요.
"나...'너' 아니거든요...하랑이거든요..."
하랑맘의 무의식적인 말에 곧잘 이런 대답이 넘어 오곤 합니다.
그러게요...하랑이라는 이쁜 이름을 지어놓고 왜 자꾸 '너'라고 부르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침을 먹기도 전에 마이쭈 캬라멜 부터 먹겠다는 하랑양...
또 엄마에게 혼이 납니다.
"너...아침 안 먹고 캬라멜 먼저 먹으면 다시는 마이쭈 안사줄거야..."
"엄마...나 '너' 아니거든요. 그러니깐 '너'라고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 했는데 진짜..."
오늘도 아침부터 딸내미에게 한 소리 들었습니다.
"알았어...하랑아...아침 먹어..."
"네...엄마...앞으로는 '너'라고 하지 마세요. 엄마 착해..."
되로주고 말로 받은 하랑맘...어쨌든 하랑이에게 칭찬도 들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그'
'너'를 '너'라고 부를 수 없는 엄마인 저는 이 시대의 홍길동 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