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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장모님의 산타클로스는 사위?



오후 4시...

겨우겨우 아이들 낮잠을 재워 놓았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은 공감 하시겠지만 낮잠 시간에 울리는 전화벨은 저희 가족의 공공의 적입니다.
하지만 기왕에 울리는 바에야 빨리 받는 게 상책입니다.

"여보세요..." 소곤소곤 전화를 받았습니다.
딸내미의 불안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뜩 흥분하신 친정 엄마는 큰 소리로 말합니다.
"야...장서방이 뭘 보냈다...아이고...말도 없이 이런걸 보냈다냐..."
금시초문입니다.
"장서방이 뭘 보냈다고? 뭐?? 에이 우리 돈도 없는데... 비싼거 사 보냈어?"

딸년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더니 친정에서 받아 먹을때는 좋다고 다 퍼나르면서

이렇게 말 한마디 곱게 안나옵니다.

"그러게 말이다. 애도 둘 되었고 생활도 더 빠듯해졌을텐데 뭘 나까지 이렇게 신경쓴데...
안 그래도 영양크림이랑 로션이랑 다 떨어졌는데...어쩌면 그때마다 딱 마춰서 보내 줄까나...
내가 이러니 장서방을 안 이뻐 할 수가 없다..."


저한테는 그리 싹싹하지 않은 남편이지만 어른들께는 참으로 싹싹하고
말도 이쁘게 하는 남편은 친정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형부가 섭섭해 하실 만큼이요.
처음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시골 친정 나들이를 했을때 달랑달랑 떨어져 가는 친정 엄마의 로션을 보면서...

"이제부터 장모님 화장품은 제가 다 대드릴게요.
전 형님처럼 벌이가 많이 않아 처가 살림에 많은 보탬은 되어 드릴 수 없지만
다른 건 못해도 장모님 화장품 떨어지지 않게 제때 보내드릴게요.
지금도 워낙에 고우시지만 여자는 고울때 가꿔야 한다잖아요."

이렇게 말하는 둘째 사위...어찌 안 이뻐하겠습니까...
저 역시도 이런 남편에게 홀딱 반했었습니다.
그 뒤로 4년 결혼 생활기간 동안 남편은 때때로 친정 엄마께 화장품 셋트를 보내드립니다.
정말로 딱 화장품이 떨어질 때쯤...귀신같이 보내 줍니다.



대학 졸업하자 마자 바로 은행에 취업하여 꾀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형부는
처음 귀농을 하여 많은 실패를 거듭하던 친정의 살림의 거의 돌보다 시피 했었습니다.
지금은 자리를 잡아 형부의 도움이 필요할 일이 별로 없지만 
가끔 재해로 농사가 잘 안 될때면 형부가 물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곤 합니다.

하지만 저와 결혼 할 당시까지 대학원에 다니고 그만큼 취업도 늦었던 남편은
그저 저희 살림 꾸리기에 바빠 물질적인 도움은 많이 드리지 못합니다.
결혼하자 마자 아이가 생겨 내내 외벌이를 하고 있는 남편의 주머니 사정을 빤히 알고 있으니
많이도 부담스럽고 힘들 법도 하련만 그래도 자신의 빠듯한 용돈을 쪼개어 때때마다 시골 장모님께
화장품을 보내드리는 남편의 정성에 참 감탄 하곤합니다.
돈을 떠나서 잊지 않고 시기 적절하게 신경을 써주는 마음과 정성에 감사하는 거죠.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집에 뭐 보냈어? 엄마한테 전화 왔더라..."

"글쎄...난 보낸거 없는데. 뭐가 왔데?"

"화장품 보냈다며? 엄마 무지 좋아라 하더라..."

"아...맞다...내가 그랬지? 장모님이 전화 하셨더라구.
'장서방...나 화장품 떨어졌네...빨리 부치게나.'
무서워서 얼른 보내드렸지....ㅋㅋㅋ"


항상 장난끼 많은 남편은 그냥 가벼운 농담을 하며 넘겨버립니다.

"내 화장품이나 사줘라.
우리 엄마 화장품 신경쓰지말고..."


감동받은 마음에 공연히 퉁을 놓아 보았습니다.

"넌 아직 젊으니깐 아무거나 사서 써도 되지만
어른들은 화장품 좋은 거 써야하는거야. 더군다나 매일 햇볕 아래에서 일하시는 분이시고
누군가 안 챙겨드리면 시골은 특별히 나가지 않고는 이런 거 사기도 힘들고..."



친정에 가면 장식장에 남편의 카드들이 붙어 있습니다.
간혹 하랑이와 저 그리고 남편이 함께 찍은 사진으로 만든 카드도 있습니다.
딸인 저도 모르게 장모님, 장인 어른께 사위가 써서 보내 준 것들이지요.
사위가 보낸 작은 쪽지들 조차 버리지 못하고 장식장에 붙여둔 친정 부모님들...
몇 달에 한 번씩 친정에 가면 전 그때서야 그 카드를 발견하고

"이건 또 언제 보냈어?"

생전 부모님께 편지 한 번 안 써본 딸내미인 저 대신 사위가 편지도 카드도 써서 보내주곤 합니다.
참 고맙습니다.
남편에게 직접 말해 본 적은 없지만...

사위가 때 맞춰 보내 준 깜짝 선물에 오늘도 장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전화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들어있어야...내 산타는 바로 우리 장서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