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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똘똘이 하랑이

수수하지만 초라하지 않았던 진짜 아이들의 잔치



언제부턴가 재롱잔치 하면 화려한 의상들을 대여하여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군무 잔치가 되어버렸습니다.

재롱잔치 시즌이 되면 학부모들은 의상 대여비로 몇 만원씩 내야 하지요.

제가 일할때도 그랬고 작년 하랑이가 잠깐 다녔던 어린이집에서도 그랬고...
이번에도 의례히 그럴 것 같았는데 재롱잔치 날이 잡히고 한참 연습을 하는 듯 하건만
어린이집에서는 의상비를 보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쩌려고 그러시나...궁금하긴 했지만
 뭐...돈 내라고 안하면 좋은 건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12월 24일...크리스마스 이브에 열린 재롱잔치에 특이하게 한복을 입혀 보내랍니다.
"이 추운데 한복 입혀보내? 설날도 아니고...독특하네"
작년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아이들의 재롱잔치만 보았던
하랑아빠는 한복을 입고 어린이집에 가는 딸내미의 모습이 의아합니다.



아이들의 잔치에 초대된 부모님들을 위한 공간은 따로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축제에 방해되지 않게 창 밖에서 사진도 찍고 구경하다가 가라는 원장님의 엄명이십니다.

멀리서 줌 당겨 찍는 것도 부족해 유리창까지 가리고 있으니 딸의 활약을 찍기에는 장벽이 너무 많습니다.


가장 어린 토끼반의 첫 공연...
옥색 저고리에 핑크 치마를 입은 다소곳한 우리 딸내미.
친구들과 함께 '울면 안돼'를 부릅니다.
물론 관객들에게 인사는 기본이구요.


언니, 오빠들의 난타, 노래,태권무,독창까지 멋진 공연들이 펼쳐집니다.
화려한 의상도 없고 신나는 음악들은 없지만 아이들은 즐겁기만 합니다.

'
맞아...진짜 재롱잔치 이랬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화려한 의상과 음악들이 등장하며 보여주기 위한 재롱잔치가 되어버렸어..."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우리딸 너무 기특하게도 다들 딴짓하는데 혼자만 얌전하게 관람하고 있습니다.
그럼요...내 공연이 소중한 만큼 다른 친구들의 공연도 열심히 보아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ㅋㅋㅋ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양의 동극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엄마가 시장 간 사이에 늑대가 와서 아기양들을 잡아먹고,
혼자 살아남은 아기양과 엄마들이 친구들을 구하는 내용이지요.
우리 하랑이는 주인공인 "아기양" 역할입니다. ㅋㅋㅋ

선생님들께서 직접 만드신 것으로 보이는 머리띠와 치마를 입은 아기양들,
부직포 옷을 입은 엄마들, 역시 부직포 망또와 헤어벤드를 한 늑대들....
제법 그럴듯 합니다. ㅋㅋ


이번에는 "숲 속 작은집 창가에..."로 시작하는 동요로 만든 동극입니다.
또 주인공인 '작은 아이' 역할입니다.
엄마로써 완전 기분 좋습니다.
우리딸은 주인공만 하는군요 ㅋㅋㅋ
의상은 아까 아기양의 엄마들이 입었던 부직포 앞치마와 왕관을 써서 변신했군요.


헉...원장님께서 아이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딸내미에게 딱 걸렸습니다.
주책바가지 엄마, 아빠...잘 숨었어야 하는데...ㅠㅠ


마지막 하이라이트...
3살 꼬맹이 둘의 발레 공연을 앞두고 함께 공연하는 친구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갑작스런 상황에 급 당황한 하랑이...
숫기없는 녀석이 혼자 남아 공연을 무사히 마칠지 걱정이 됩니다.



쭈뼛쭈뼛~ 어쩔 줄 모르던 딸내미가 '둥글게 둥글게' 노래에 맞추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듀엣 공연이었는데 급 솔로 공연이 된 무대를 채우려는 작은 몸짓에 엄마, 아빠는 자꾸 웃음만 났습니다.


중간중간 엄마,아빠 그리고 동생 한결이도 열심히 기념 촬영을 했지요.
하랑이 보다 우리가 더 신나 보이지요? ㅋㅋㅋ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라는 원장님의 엄명이 있으셔서
재롱잔치가 끝나자 마자 하랑이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나왔습니다.
중간에 한 번 들키긴 했지만요...ㅋㅋㅋ


하랑이네 어린이집 재롱잔치에는 화려한 의상도 없었고 신나는 음악도 없었습니다.
엄마, 아빠를 위한 공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더불어 함께 즐기는 아이들이 있었고
섭섭할 정도로 부모들에게는 무심하되 아이들만 열심히 챙기는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수수하지만 초라하지 않고

조용하지만 결코 쳐지지는 않았던 진짜 아이들만의 재롱잔치는
그렇게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