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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육아는 행복해

발음 안 좋은 엄마 영어 그림책 읽어주지 마라?


저는 일은 그만둔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동료들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1년 전인가? 아니 둘째를 임신하기도 전이었으니 한 1년 반쯤 전이었던 것 같네요.
마침 남편도 늦는다고 하고 오랜만에 친구와 저녁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저는 친구가 일하는 센터의 로비에서 친구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센터이다보니 재미있는 장난감과 책들이 비치되어 있기에
아이를 데리고 기다리기에 딱 좋은 장소이거든요.



그리고 그 장소는 수업들어간 언니 오빠들을 기다리는 동생들도 있고
 또 수업 들어 간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이 대기하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한 꼬맹이가 엄마에게 책을 들고 왔습니다.

영어 그림책 입니다. 아이 엄마는 영어 그림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서 있던 다른 아이 엄마가 그림책 읽어 주는 엄마를 나무랍니다.

'야야...넌 발음이 그게 뭐냐? 애한테...이만한 애들이 언어에 얼마나 민감한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런 발음으로 읽어죠?
차라리 씨디를 틀어줘라...R발음이 너무 아니잖아..."
순간 그 책을 읽어 주던 아이의 엄마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습니다.
마침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나왔고 책 읽어주던 엄마의 아이와 발음 트집잡아 나무라던 엄마의 아이가
입고 있는 원복이 똑 같은 걸 보니 같은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더군요.

뭐...친분도 있겠지요.
같은 유치원에 센터까지 함께 다닐 정도면...
워낙에 직설적인 성격의 엄마인가보다...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그래도 그렇지...
사람들도 많은데 앞에서 꾀 멀리 떨어진 제 귀에까지 그 엄마의 말이 똑똑히 들릴만큼
큰 목소리로
더군다나 엄마가 최고인 줄 아는 아이 앞에서,
한 번 보고 말 사람들도 아니고
매주 같은 시간에 함께 1시간~2시간 가량을
얼굴을 마주 보고 대기해야 하는 다른 엄마들 앞에서...
정말 저건 아니지 싶었습니다.


발음이 안 좋으면 아이들에게 영어 그림책 읽어 주면 안되나요?
그건 어느나라 법인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영어를 사용해도 미국에서 사용하는 게 다르고 영국에서 쓰는 발음이 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국에 오랫동안 유학 다녀온 친구에게 장난삼아
 '영어 한 번 해봐...' 이렇게 말했을때
"우리 나라는 너무 미국식 영어에 길들여져서
내가 영어 하면 유학까지 갔다왔으면서 발음 후지다고 놀려서 영어 쓰기가 싫어져..."
라고 말 하더군요.

그냥 적당히 발음 기호에 어긋나지 않게 말을 하면 그들도 다 알아 듣는데 너무 발음에 목숨건다구요.
그것도 미국식 발음에 집착한다구요



영어 그림책에 '영어' 라는 한 단어가 붙음으로 인하여
그림책이라는 본질이 사라지는 걸까요?

그림책은 그림책이니 아이나 엄마나 재미있게
발음 신경 안쓰고 그냥 읽어주면 안 되는 건지...

저도 발음은 콩글리쉬지만 그 발음이 항상 걸리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어줍니다.
그렇게 엄마와 익숙해진 후  CD로 노래도 듣고 구연도 들으니
알아서 묵음과 연음들을 가려서 발음
을 하더군요.


그림책은 다 똑같이 그 그림과 내용에 담긴 내용과 감성만 받아들이면 그 걸로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말로 된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한 문장 한 문장 발음에 신경써서
 아이가 그 문장들을 다 인지하길 바라면서 읽어주지는 않는 것처럼
 
영어로 된 그림책도 1차 목적은 아이가
그 속에 담긴 내용들을 음미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리고 아이에겐 발음 좋은 씨디 백 번 틀어주는 것 보다 
발음이 조금 어설프더라도 엄마의 음성으로 열 번 읽어주는 그림책이
훨씬 와 닿지 않을까 싶은 생각
이 드네요.


애 앞에서 '그런 발음으로 부끄럽게 책 읽어줘?' 라고 핀잔을 주는 그 엄마에게
 '그렇게 애 생각하는 사람이 남의 애 앞에서 엄마를 그렇게 부끄럽게 만드냐고,
발음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남의 애 책 읽어주는 거 신경쓰지말고 너나 잘하시라고'
오지랍 넓게 대신 따지고 싶었지만 정작 핀잔을
 들은
본인도 가만히 있는데 뭘 나대냐 싶어서 그만 두었습니다.

저도 그다지 좋은 발음이 아니라 더 발끈했는지도 모릅니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하는 남편 앞에서 혹은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왔을때
눈치도 없이 딸내미가 영어책을 들고 오면 참 난감했습니다.

부끄러운 발음으로 그 책을 읽어줘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요.
그런 의미에서 전 그 책을 읽어주는 엄마가 너무 보기 좋았거든요.
서로 점잔만 빼고 눈치만 보는 센터의 엄마들 사이에서
조금 좋지 않더라도 자신 있게 아이 앞에서 책을 읽어주는 모습
이 말이죠.

어린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줄 때의 가장 중요한 건 
엄마와 함께 즐거운 책읽기를 하며 얻어지는 교감과 행복, 재미가 아닐까요?
발음과 인지는 그 차후의 아주 작은 부수적인 문제일 뿐
책을 읽어주는 본질을 흐트려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누구도 내가 내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데 그런 작은 문제로 참견한다면 노 땡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오늘도 딸내미에게 콩글리쉬 발음의 영어 동화를...
하지만 읽어주는 저와 듣는 딸내미 둘 다 뒤집어지도록 흥분하면서 재미있게 읽어줍니다.
 
"좀 조용히 좀 읽어" 라는 남편의 경고쯤은 가뿐히 무시하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