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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육아는 행복해

아이에게 보여 주기엔 너무 잔인한 막장, 명작동화


선과 악이 극명하게 대립되고, 뚜렷한 권선징악으로 이루어진 구조때문에 명작 동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편 입니다. 아이가 소화해 내기엔 너무 긴 대부분의 명작 동화들은 단행본 으로라도 거의 사 주지 않았습니다. 하랑이 어렸을때 언니가 사준 내용이 많이 축약된 짧은 백설공주, 신데렐라등의 공주 나오는 동화 몇 권 있기는 했었죠.
그러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딸내미는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명작 동화 내용을 자주 이야기 하면서 선생님이 들려주신 이야기 책들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자꾸 졸라대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명작 전집을 들여주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딸내미가 이야기했던 명작 동화책들만 다섯 권 골라 사줬습니다. 물론 아이가 어리니 아주 많이 축약된 짧은 책으로 사 주었지요.



아기 돼지 삼형제, 빨간 모자, 개구리 왕자, 잠자는 숲속의 공주,늑대와 일곱 마리 아기양. 이렇게 다섯권이요. 그런데 엄마 입장에서 읽어주다 보니 이런게 보이는 건가요?
다섯 권의 책 중 두 권의 결론이 늑대의 배를 갈라 돌을 채워 넣으며 끝나고, 징그러운 개구리는 싫어하다가 잘생겨진 왕자를 보고 한 눈에 뻑~가는 공주님의 변덕은 뭐며, 개구리였던 순간에 못생기고 징그럽다고 던져 버린 공주에게 '귀여운 공주님 저와 결혼해 주세요' 라고 말하는 속도 없는 왕자님은 또 뭔데요 ㅡㅡ;; 부글부글 끓는 물에 늑대를 산채로 튀겨버리는 것 또한 아이에게 읽어주기에 너무 잔인했습니다.아기 공주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갓 태어난 아이에게 16살 생일에 죽어버린다는 저주를 퍼붓는 늙은 마녀는 어떻구요...실제로 딸내미가 '이 할머니 생일 초대 받지 못해서 화났나 보다, 근데 저주가 뭐야?' 라고 묻는데 대답하기 난감하더라구요. 으이구...그냥 조르게 놔 둘걸 괜히 사줬나보다 싶었습니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었는데 막상 딸에게 읽어주려니 한 번씩 읽어주고 다시는 읽어주고 싶지 않을만큼 정이 뚝 떨어지더군요.그런데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가 좋은 걸까요?  딸내미가 읽고 싶은 책이 있다고 들고다니는 책이 꼭 그 다섯 권입니다.

명작동화의 잔인함을 느끼고 나니 새삼 어렸을때 읽었던 명작 동화의 내용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이를 잡아 먹으려고 운동도 안시키고 살을 찌우는 마귀 할멈이 나오는 헨젤과 그레텔, 권선징악이라고는 하지만 어린 소녀가 그 마귀할멈을 가마솥에 집어 넣고 문을 잠궈버리는 그림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백설공주의 미모에 질투가 난 새 왕비가 사냥꾼을 불러 공주를 숲속에 데려가서 죽이라 명령을 하지요.그리고 증거로 공주의 간을 빼 오라고 말합니다.
사냥꾼은 차마 공주를 죽이지 못하고 공주는 놓아주고 대신 사슴을 잡아 그 간을 왕비에게 가져다 바칩니다.
그 간을 소금에 절여서 먹었다는 왕비의 모습 또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 왕비는 그게 공주 간 인줄 알고 요리해 먹은거잖아요 ㅡㅡ;;
이렇게 말을 하다보면 비슷비슷한 잔인한 명작동화의 내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나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들은 제 기억력이 좋은 것이라기 보다는 명작동화들이 그만큼 잔인하고 자극적이었기에, 당시에는 모르고 재미있다고 읽었지만 그 잔상이 오래도록... 이렇게 다 자라고 아이들이 생긴 어른이 되도록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잔인함 뿐입니까? 세상의 새 엄마와 새 언니들,오빠들은 왜 그렇게 사악한데요.
그렇게 자기 친 자식이 괴롭힘을 당하는데 아빠는 뭘 하고 있구요, 어쨌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그

들이 본처 자식들을 온 갖 잔인한 방벅으로 괴롭히는 모습들...막장도 그런 막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제목이 기억이 안나는데 언니와 결혼하기로 한 남자가 동생의 미모에 반하여 언니를 버리고 동생과 결혼하는 내용의 동화도 기억나네요. 왕자들은 어찌나 공주들의 외모에 그렇게 홀딱 반해들 주시는지...못 생긴 사람들 서러워서 못 살겠습니다.


'행복한 왕자' 였던가요? 반짝이는 보석으로 둘러 쌓여있던 왕자님이 가난한 동물들에게 자신의 모든 보석들을 나누어주고 초라해졌지만 그래도 나눌 수 있음이 행복해 하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 어린이집에 다녀 온 딸내미가 밑도 끝도 없이 왕자님이 너무 무서웠다고 합니다. 자세히 물어보니 까마귀가 왕자님의 보석 눈알을 빼가는 장면이 자꾸 생각이 난다구요. 비교적 아름답고 따뜻한 나눔의 행복을 그린 동화인데 생각해보면 동화속의 왕자님 동상은 의인화 되어있고 심장을 빼가고, 눈알을 빼가고 뭐...이런 표현들이 있었던게 생각이 나더라구요. 아직 어린 아이는 그 왕자님이 동상이라기 보다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비록 기꺼이 나누어 준 것이긴 하지만 산 채로 눈알이 빠지고 심장이 비어있는 흉물스러운 그림들에 적잖은 충격을 느꼈었나 봅니다. '엄마, 눈을 감아도 자꾸 왕자님이 생각나서 무서워요.' 라면서 몇 일동안 제 옷자락을 붙잡고 따라다녔거든요.

TV 만화 영화 폭력적이고 유해한 건 보이는데 정작 명작 동화의 잔혹함은 간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적기에 책을 들여다 준다며 아이가 어느정도 자라면 명작 동화 한 질을 떡~하니 들여주는 모습들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실제로 아이들 있는 집에 명작동화들 한 질씩 왠만하면 다 있는 것 같습니다...그리고 아이가 재미있게 잘 본다고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어린 아이들이 꼭 읽고 넘어가야 할 필독서처럼 여겨지지요. ㅡㅡ;;

명작동화를 생각하면 지금도 갈등이 됩니다. 다들 보는 것이니 나만 유난떨지 말고 보여줄까? 애 한테 책 편식 안 시키고 골고루 보여준다면서 엄마 생각만으로 책을 가려서 읽어주는게 맞는 걸까? 애가 저렇게 좋아하는데...그래도 어쩝니까...아주아주 짧은 내용으로 압축 시켜놓은 명작들을 읽어주다가도 늑대 배 갈라서 돌채워 넣는 부분만 보면 몸 서리쳐지게 읽어주기 싫고, 그렇게 증오하던 못생긴 개구리가 왕자님으로 변하자마자 밑도끝도 없이 사랑에 빠지는 공주님이 꼴 보기 싫어지는 것을...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