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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육아는 행복해

수업시간에 울어버린 아이, 가슴 아픈 이유


그 반에는 5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6살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이야기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소담이는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더니 급기야는 책상에 업드려 버립니다. 아이들은 그 날 토론한 내용에 대해 그림으로 정리가 한창인데 소담이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애가 아닌데...정말 밝고 활발하여 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아이인데. 한참을 어르고 달래자 눈물을 그렁그렁 맺은채 겨우 입을 뗀 아이는 이렇게 말 합니다. "그림 그리면 엄마한테 혼나요."

'보고 배운게 중요하다?' 엄마들의 기막힌 수다

잠시 의아한 생각이 들다가 문득 지난 주 수업 후 브리핑 시간의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그 날의 수업 주제는 아빠였고 아이들은 아빠 하면 생각나는 것들,아빠가 하는 일, 아빠와 좋았던 일, 아빠한테 화났던 일, 아빠가 집에오면 어떤 모습인지,아빠와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고 아빠의 모습을 그리며 수업이 마무리가 되었엇지요. 소담이의 아빠는 분식집을 하셨고...소담이는 '우리 아빠 김밥 정말 맛있어요. 그리고 얼마나 빠른데요...'자랑을 하면서 아빠가 김밥 싸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브리핑 시간이 되어 엄마들이 들어와 그 날 수업 내용과 아이들의 반응에 대해 듣고 이야기 하는데...
아이들이 생각하는 아빠들의 이런저런 모습들에 폭소가 이어지는 화기애애한 브리핑 마무리로 아이들이 그린 아빠 그림들 보여주면서 이야기 하는데 소담이의 그림을 본 다른 아이 엄마가 "어머...세상에...이래서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니깐...소담이네도 소담이 생각해서 아빠가 다른 일을 찾아 보는게 어때?" 더 당황스러운건 이 말에 '말이 심하다'라고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없이 다른 엄마들도 맞장구를 치면서 웃더군요.

워낙에 그 센터가 좀 있는 집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었고 유난히도 그 반의 구성원 5명 중에 2명의 아빠 직업은 의사, 1명은 교수, 또 1명은 파일럿...때문에 아이들의 그림도 비행기 타는 아빠, 가르치는 아빠, 환자를 진찰하는 아빠  모습들을 그렸었거든요. 그렇다고 분식집을 하는게 부끄럽고 무시할만한 일은 아닌데 순식간에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했습니다. 순간 소담이 엄마의 얼굴은 붉어졌고 교실에서 나갈때까지 정말 표정이 너무 어두웠었던 것이 내내 걸려만 했었는데 집에가서 소담이를 많이 혼냈나 봅니다. 영문도 모르는 소담이는 또 얼마나 받아들이기 힘들었을까요. 그저 그림을 잘못 그려서 혼낸다고만 생각했고 아빠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소담이는 토론 수업 자체에서 입을 닫아 버린 것이었습니다.

'우리 소담이 잘 못이 아닌데...' 엄마의 자책

수업 시간에 참여하지 않은 소담이의 모습에 아이 엄마는 많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우리 소담이 잘못이 아닌데...정말 많이 혼냈어요. 제가 느낀 당황스러움을 애한테 풀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 저희 그만 둘게요. 그냥 좋은 프로그램 아이에게 접해주고 싶은 욕심에 다녔는데 다른 반에 가도 이런 갭을 느낄 것 같고...제 남편 어디가서도 무시당할 사람 아닌데...정말 성실하고 가족들 잘 챙겨주는 좋은 가장인데...그 상황에서 당당하지 못했고 또 못나게 아이한테까지 풀고...저 자신에 대해 모멸감이 느껴지네요. 정말 몇 일동안 잠도 못 자고 고민했어요."

그렇게 소담이는 그 센터를 그만 두었고 8년 가량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아이와 엄마가 가끔씩 생각이 납니다. 당시에는 저도 어렸고 아이를 키워 본 일도 없었으니 그저 브리핑 당시 엄마들의 기막힌 수다에 당황만 했습니다. 그냥 저 진땀나는 상황만 중요했지 소담이와 소담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대처하는 요령이 너무 미흡했었던 것 같습니다.

흔한 말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성숙된 사람은 밖에 나와서 절대로 그런식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과시하고 다른 사람을 깔아 뭉개지 않겠지요. 더군다나 순수한 아이들의 동심 앞에서 말이지요. 인격적으로 덜 된 사람들 때문에 상처 받았을 소담이의 가족들...무엇보다 그렇게 자랑스러워 하고 멋지게 생각했던 아빠를 그렸을 뿐인데...어린 소담이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요

물론 그 센터의 대부분의 반 분위기가 이런 것도 아니었고 가진 것이 더 많고 더 높은 지위에 있으신 학부형들 중에 정말 겸손하고 아이를 많이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가끔씩 정말 가끔씩 이런 반도 있었지만요.

이제 소담이는 중학교 1학년 쯤 되었겠군요.아직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잊혀졌다고 해도 그 아이의 잠재 의식속에는 그 상처들이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고개숙이고 울먹이던 6살 소담이의 모습이 아직도 가슴 아프고 미안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