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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육아는 행복해

아이들의 상처를 후벼 판 결식 아동 돕기 행사


언젠가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레크리에이션을 전공 했습니다.전공이 그렇다 보니 흔하게는 어린 아이들 소풍이나 체육대회 부터 청소년들 극기 훈련, 각종 공연, 기업 연수 같은 이벤트 행사들도 많이 했고, 때로는 여러 봉사 활동에도 참여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결식 아동 돕기 행사장에서 소녀 가장이 울었던 이유


언젠가 학교 동기들과 서울시 00구에서 주관하는 결식 아동돕기 행사에 봉사 활동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요즘에도 굶고 사는 아이들이 있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급식을 먹을 수 없는 방학이 되면 끼니를 걱정하는 아이들이 꽤  많다고 합니다. 대부분 소년소녀 가장들인 어려운 아이들을 초대하여 재미있는 공연도 보여주고, 함께 눈썰매도 타고, 맛있는 음식들도 제공해 주며 희망을 줄 수 있는 게임이 가미 된 레크리에이션까지...프로그램 자체 만으로는 힘든 아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좋은 행사였습니다.


삐에로 분장을 한 아저씨가 불어주는 요술 풍선에 신이 난 아이들, 흥겨운 음악에 춤도 추고 신나는 눈썰매에 푹~ 빠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과는 달리 고학년 아이들의 표정은 눈에 띄게 풀이 죽어 있습니다. 바로 행사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찍는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옷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보고 한 여자아이의 이름을 호명하며 "00이는 왜 안 먹어? 우리 저기 가서 선물 받아 올까?" 말을 걸었더니 금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해 집니다. 자꾸만 그 아이가 신경이 쓰여서 계속 옆에서 챙겨주고 말을 걸었더니 조금씩 속 이야기를 합니다. 아버지는 아프셔서 일을 못 하시고 2학년 남동생과 정부 보조금으르 근근히 살고 있다는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 이었습니다. "동사무소 아주머니가 이 행사에 오라고 했을때 진짜 오기 싫었는데요 동생때문에 왔어요. 친구들은 내가 이렇게 가난한 줄 모르는데 사진 찍히는게 창피해서 진짜 오기 싫었는데..." 울먹이던 그 아이의 표정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을 배려하는 선행이 많이 이루어지길!

혈기 왕성하던 때였기에 함께 간 후배와 교수님께 항의 했습니다. "교수님...꼭 사진 찍어야 되요? 아이들이 울잖아요. 그냥 재미있게 놀다 가라고 하면 안되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행사 한 두번 와본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돕겠다는 취지도 있지만 순수하게 그 것 뿐은 아니라는 것을요. 대외적인 홍보용, 이미지 관리용등 그 외의 이유들이 더 크다는 것을요. 때문에 증거로 남길 촬영은 필수요 규모가 큰 행사일때는 기자들까지 따라 붙는 다는 것을요.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부끄럽게 여겨 질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그런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열어 보이며 당당해지기는 쉽지 않을 것 입니다. 때문에 조금 철이 든 아이들은 아무리 좋은 취지의 행사가 있어도 잘 참여를 하지 않더군요. 간혹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참여하는 아이들도 카메라에 민감하게 반응하구요.

그나마 그 행사의 아이들은 조용히 구석에 있는 것으로 자신의 수치심을 표현 했지만 다른 행사장에서는 심하게 욕을 하며 반항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XX  사진 찍지 말라구요, 내가 이래서 안 올려고 했는데 아줌마가 인원이 부족하다고 난리쳐서 왔더니만...아, 사진 안찍는다면서요..." 차라리 굶고 말지 자신의 가난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들...행사가 있다고 해도 잘 참여하지 않자 아이들의 머릿수를 채우려고 감언이설로 아이들을 꼬셔서 데리고 왔었나 봅니다. 가뜩이나 상처 많은 아이들에게 세상은 참 잔인하게 그 아이들의 가난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선행을 교묘하게 광고 했습니다.


TV나 신문, 잡지 등에서 봉사 활동을 취재하며 아이들의 모습을 찍어 올리는 것을 보면 문득문득 옛 행사들이 떠 올라 안타까워 지곤 합니다. 그렇게라도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이 좋은 거겠죠? 그렇게 어려운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기부라도 받고...뭐 그래야 하는 걸까요? 제가 꼬여서 좋은 취지의 봉사들을 곡해 하는 것이겠지요. 유달리 저만 그런 행사들을 갔던 것이겠지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의도에서든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겠지요. 그런 도움의 손길은 많아져야 마땅하구요. 하지만 그 도움의 손길을 보낼 때 받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해 보고 그 사람이 최대한 상처 받지 않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군다나 그 상대가 이제 세상을 알아가는 아이들이라면...세상의 치사함 보다는 따뜻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해 주는 그런 도움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