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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듣는 사람이 더 민망해지는 충청도 양반의 반어법


흔히들 충청도 하면 양반을 떠올리시지요? 맞아요. 양반은 맞습니다.
느긋하고, 왠만하면 안 놀라고, '다~잘 되겠쥬...' 라는 긍정적인 마인드까지...
호들갑스럽고 빠르고 과민하고...와는 거리가 정말 멉니다.


얼마전 친정에 다녀왔습니다.
한결이가 아파서 잠시 읍내에 있는 병원에 갔습니다.
물론 시골길을 운전하기 무서워 친정 아버지와 함께 갔지요.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시골 답게 9시도 안 되었는데
병원에는 꾀 많은 어르신들이 대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광산 김씨 씨족 사회를 이루고 있는 동네 사람들...
좁은 시골 사회에서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같은 성씨에 같은 돌림을 쓰는 

따지고 보면 먼 친척분들이 되시니...
뼛 속부터 충청도 양반의 피가 흐르는 아버지는 당연히 그 분들과 친분이 있습니다.


"워디가 아파서 오셨어유?"
아버지가 대기실 벤치에 앉으시며 옆에 앉은 아저씨께 인사 대신 건낸 말입니다.
"잉~접때 일하다 미끄러져 넘어 졌는디 당췌 낫지를 않네..."
아저씨의 대답도 길지도 않습니다. 
"아이구...그저 늙으면 죽어야쥬..."
너무 진지한 표정의 아빠...ㅠㅠ
컥...큰일 날뻔 하셨네요, 빨이 나으셔야죠, 조심하셔야죠...적절한 리액션이 얼마나 많은데...
늙으면 죽어야 한다니 ㅡㅡ;;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데...웃긴 건 또 진지한 아저씨의 반응입니다.
"긍께 늙으면 죽어야지...요 손꼬락도 자꾸 부서싸서 이래 잠잠~도 안댜~..."
아저씨는 손을 오무렸다, 폈다 잼잼을 해 보이십니다.
"그러니께 쉬엄쉬엄 일 해야지 병신 되면 워떡할텨?"
"병신 되면 뭐 있어...그냥 손꾸락 팍~짤라버리야지..."

옆에서 듣기에 더 민망하고 당황스러운 대화를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하게 아버지와 이웃 아저씨...
더 웃긴건...옆에 대기하고 계시던 다른 어르신들의 끄덕끄덕...
이해 한 다는 듯한 동조하는 리액션들이었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혼자 킥킥 대는데...눈치도 없이 하랑이가 묻습니다.
"엄마...왜 웃어?"
그제야 사람들은 우리가 눈에 들어 온 건지...
"좋겄어...손주 새끼들이 왔구먼..." 라며 알은체를 하십니다.
"좋기는유 뭘...내내 귀찮기만 하지...안아주면 달구 뛰어싸쿠... 팔 떨어져유~"
시크하신 아버지의 대답이십니다.
외할아버지의 품에만 가면 팔짝팔짝 뜀뛰기를 하는 통에 쬐끔 힘들어 하시긴 하거든요. ㅋ

양반들은 원래 직접 표현을 안하고 반어법을 즐겨 쓰는가 봅니다.
철이 들면서 그 내용들이 정말 우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네들은 그게 생활이니 웃긴 줄도 모릅니다.

그저 저같은 서울 촌년이나 계속 킥킥 대고 앉아 있지요.
그렇다고 그렇게 킥킥 대는 저에게 누가 별로 알은체도 안하시구요.



애교 없는 딸내미...그래도 가끔은 아버지와 통화 할때...

"아빠...나 안 보고 싶어?" 라는 질문에..
"빌어먹을 년, 쓰잘데기 없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라며 웃으시곤 하시는 아버지가

언젠가...같은 질문에 "그랴~" 라는 대답을 듣고

갑자기 너무 낯설고 이젠 아버지도 늙으신 것 같아 눈물이 핑~돌았던 적이 있습니다.

언제 들어도 정겨운 배꼽 빠지는 반어법,
어렸을때는 그 속 뜻을 못 읽고 울기도 했는데...
자라서 철이 드니 아버지의 직설법이 더 낯설고 기운 빠지게 느껴집니다.
민망해도 좋고 웃음 참기 힘들어도 좋으니 그냥 오래오래
힘찬 아버지의 반어법이 계속 듣고 싶습니다.







지난 5월 31일
이벤트 당첨자 발표
합니다.
 
처음에는 세 분께 당첨의 기회를
드리려 했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두 분 늘려서 총 다섯분께
당첨의 행운(?)을 드렸습니다. ㅋ

당첨되신 베베님, 멀티앱님,

Garden0817님, 하하맘님,
화랑이님
모두모두 축하드리구요
비밀 댓글로 주소와
연락처 부탁 드립니다 ^^
모두모두 행복한 주말 되시실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