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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똘똘이 하랑이

뽀통령도 극복할 수 없는 여자의 본능


몇 일 전...딸내미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에 집 근처의 재래시장을 찾았습니다.
비도 주룩주룩 내리는 장마에 어린 아들까지 메고 왜 거기에 갔느냐 물으시면...
시장 안에 있는 3마리에 만 원 하는 닭 사러 갔다고 대답하겠습니다. ㅡㅡ;;

재래시장 가까워서 좋다...함 구경 가야겠다...맨날 말만 하면서 1년 만에 처음 갔습니다.

아무튼 시장은 참 구경할 것도 많고 물건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싸고 좋은 먹거리와 푸근한 인심들이 있었습니다.

비도 오고...부쩍 커버린 아들도 떠메고 있었기에
사진을 찍을 엄두도 못내었고 많은 물건을 사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구경만 하고 나오려는데...우산 가게가 보입니다.
얼마 전 마트에서 사다 준 핑크색 우산은 이쁘긴 한데
너무 커서 어린 딸내미가 뒤뚱뒤뚱 힘들어 하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몰랐는데 요즘은 어린 아이들도 쉽게 들수 있게 미니 우산들도 너무 이쁘게 잘 나왔더군요.
마침 그 우산 가게에도 뽀로로 미니 우산이 있었습니다.
핑크와 파랑이 있었는데...고민 할 것도 없이 딸이 좋아하는 핑크색 우산을 샀습니다.

우산을 보고 좋아 할 딸내미의 모습을 생각하니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무거운 닭 세마리가 든 봉지와 비를 가릴 우산, 그리고 딸에게 줄 우산
들쳐메고 있는 아들내미...기저귀 가방...바리바리 들었음에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집 차에서 내리는 딸내미를 반갑게 맞으면서 자랑스레 말했습니다.
"하랑아...엄마가...우리 하랑이 주려고 우산 사놨다. 이 우산은 커서 하랑이가 들기 무겁고 힘들었잖아.
그래서...엄마가 작고 귀여운 핑크색 우산 사놨다.."
수다스럽게 자랑을 늘어 놓았습니다.
'뽀로로' 라는 말은 일부러 안했습니다.
직접 보고 더 기뻐 하라고 말이지요.
"그래? 엄마가 어떤 우산을 사놨을까?? ㅋㅋ"
싱글벙글...딸내미는 기분 좋게 앞장 서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현관 앞에 걸어 놓은 우산을 먼저 발견한 건 딸내미 입니다.
'엄마...이거가 내꺼야?"
"응...한 번 펼쳐봐..."
촤락~~자동 우산이 펼쳐집니다.
"이쁘지? 귀엽지?"
기대에 찬 엄마의 표정과는 달리 딸은 약간 시큰둥 합니다.
"응...뽀로로네..."
뭥미?? 그게 다인감??
"왜?? 마음에 안들어?"
"아니...이쁘네...뽀로로잖아..."
팔짝팔짝 뛰며 좋아 할 줄 알았던 딸내미의 기운 빠진 반응...이 의아합니다.

잠시 후 딸내미가 말합니다.
"엄마...난 뽀로로도 귀엽긴 한데 사실은 공주님 우산 갖고 싶었는데...
지윤이 언니꺼랑 같은거... 신데렐라랑 백설공주 그려진 우산 있잖아...그게 좋은데..."
"그래? 엄마는 몰랐네...하랑이는 뽀로로를 제일 좋아 하지 않았어?"
"아닌데...엄마가 몰랐구나?"
"응...몰랐네...그럼 뽀로로 우산 아줌마한테 다시 가져다 줄까? 그런데...공주님 우산은 안 팔던데..."
"아니야. 괜찮아...뽀로로 그냥 쓰지 뭐..."

그렇게 딸내미는 핑크색 뽀로로 우산을 써 주셨습니다.
기꺼이 쓴 것이 아니라 바꾸러 가는 엄마의 수고를 덜어 주고자 인심 써서 써 주셨습니다. ㅡㅡ;;

 


엄마보다 동생보다 아빠보다 뽀로로가 좋다던 딸내미가 언제 뽀로로를 배신하게 되었을까요?
하긴...생각해보니 요즘은 스티커를 사도 뽀로로가 아닌 공주님이었고 EBS에서 뽀로로가 해도
꺼버리고 공주님 책을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오히려 공주를 멀리 하게 하려면 했지 공주를 가까이 하게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 딸은 뽀로로 보다도 공주를 좋아하게 되었나 봅니다.

다시 한번 본능적으로 공주에게 끌리는 여자의 본능을 새삼 발견하는 순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