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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똘똘이 하랑이

대를 잇는 어른들의 최악의 장난-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제가 7살 때쯤에 가출(?)을 한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바로 친엄마를 찾기 위해서였지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할아버지, 그리고 삼촌, 아빠는 저에게 자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비 오는 날 할아버지께서 다리 위를 지나가시는데
왠 거지가 아이를 잘 키워 달라며 할아버지께 드렸다구요.

그래서 아빠에게 아기를 드렸고 아빠는 그런 저를 거두어 키웠다구요.
이젠 너도 클만큼 컸으니 다리 밑에 있는 친엄마를 찾아가구요.

처음에는 장난이겠거니 했는데...맨날...볼 때마다 웃으면서 놀리시는데...
엄마라도 아니라고 부정해주시길 바랐는데...옆에서 빙글빙글 웃으실 뿐 별다른 말씀이 없으시고...
같은 이야기도 계속 듣다보니 정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느 날 밤 엉엉...달을 보고 울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 무작정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었는데...
뭐...어린 걸음이 멀리는 못 갔고 곧 엄마가 찾아서 데리고 집으로 가셨습니다.
'장난과 진짜도 구분하지 못한다'라고 나무라시면서 말이지요.
암튼...지금도 그때 상황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당시 저는 얼마나 심각했던지요.


그런데요...세상에나 그 장난을 울 남편이 딸에게 치는 것입니다.
"하랑이 다리밑에서 주워왔어. 이제 너도 많이 컸으니 엄마 찾아가..." 라고 말이지요.
더 웃긴건...처음에는 애 놀란다고 장난치지 말라고 하다가
어느순간 빙글빙글 웃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 하게 된 것 입니다.
문득문득 생각 날 때마다 수시로 딸내미를 놀리곤 하던 남편...또 심심했는지 딸을 놀립니다.

"하랑아...이제 니네 엄마 찾아가...너희 진짜 엄마는 이 엄마가 아니라니깐..."
"그럼 한결이는요?"
"한결이는 엄마가 낳았잖아...너도 병원 가서 봤으면서 뭘..."
"맞아요. 나도 한결이 나오는 거 봤어요. 근데 엄마가 나도 그렇게 낳았다고 그랬는데..."
"아니야...엄마가 거짓말 한거야...하랑이가 갓난 애기때 다리 밑에서 울고 있는거 아빠가 주워왔다.
하랑이가 몰랐구나?"

블럭놀이를 하던 딸내미가 고개를 들고 아빠에게 대꾸합니다.
"그래요? 근데...난 앉아 있었어요? 누워 있었어요?"
딸의 엉뚱한 질문에 남편은 그만 빵~터져버렸습니다.
정말 딱 4살 아이 다운 질문이며 천진한 궁금증 입니다.
"응...당연히 누워있었지...갓난 애긴데...한결이도 애기때는 누워만 있었잖아..."
"아...맞아요. 한결이는 누워만 있었어요...그렇구나...난 누워있었구나.."

"이제 가자.."
"어딜요?"
"너 주워 온 다리밑에...너도 이제 많이 컸으니깐 진짜 엄마 찾아가야지..."
이 놈의 레파토리는 제가 어렸을때나 딸이 어렸을때나 변함이 없네요.ㅋㅋ
"다리밑에 가면 니네 진짜 아빠도 있고 동생도 있어...아빠가 데려다 줄게...갈래?"
두 눈만 끔뻑끔뻑 아빠의 이야기를 듣던 딸내미는 대답합니다.
"여기가 내집인데 내가 가긴 어딜가요. 엄마는 내 엄마고 아빠가 내 아빤데..."
딸의 순진무구한 반응에 남편은 더이상의 장난을 칠 의욕을 잃고 웃어버리더군요.
전 진짜 맨날 엉엉~울어 버리곤 했는데 말이지요.
하긴 4살 짜리가 뭘 알아서 아빠의 이런 장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울고불고 하겠습니까...
암튼 울 딸내미 정말 쿨~하네요. ㅋㅋㅋ

 


애들이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고...
제가 '다리밑에서 주워 왔다'는 어른들의 장난에 심하게 가슴이 뛰며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있는지라...
남편에게도 이런 장난 치지 못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딸아이가 어리니 이 장난의 의미를 모르고 쿨~해 질수 있지만...
조금 더 크면 어린 날의 제가 그랬던 것 처럼 딸내미도 심각해질 수도 있으니깐 말이지요.
부모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고있는 아직 어린 아이에게...
내가 니 친부모가 아니다...는 얼마나 큰 충격이며 상처겠어요.

어른들 재미있자고...
잠시나마 아이에게 이런 고민거리를 주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매번 장난의 희생자였기에 그 고민의 깊이를 너무 잘 알지요.

그나저나...궁금한 건 왜....하필 다리 밑일까요?
차라리 대문 앞에 버려져 있었다...가 더 현실적이지 않나?
도대체 다리밑에 무슨 비밀이 있기에 이렇게
 엄마 세대에 이어 딸내미까지 대를 이어 이런 장난의 대상이 될까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