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길을 헤매는 할머니 모르는 척 하는 각박한 인심

지난 8월 초...남편이 설악으로 일주일 간 출장을 갔습니다.
무슨 용기와 힘이 나서 그러겠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기왕에 남편이 설악에 있으니
일이 끝날때에 맞추어 저도 아이들을 데리고 설악으로 가겠다 했습니다.
겸사겸사 여름 휴가 보내고 오자구요...ㅋㅋ
짐 보따리 바리바리 들고, 아이 하나 들쳐 메고, 또 아이 하나 손 잡고...
유모차까지 들고 집 근처의 터미널 까지 갔습니다.


집에서 10분 거리의 시외버스 터미널에는 속초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그럼 속초 터미널로 남편이 마중나올 것이니 어찌어찌 버스만 타면 된다고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큰 짐들을 들고 아이 둘 데리고 터미널까지 가는 것도 장난이 아니더군요.
제가 지나가자 사람들이 다 쳐다 봤던 것을 보면...많이 힘들어 보였었나봅니다. ㅋㅋ
어쨌든 터미널에 도착했고...10분 정도 후면 저희가 타야 할 차량이 올 것입니다.


무료함을 달래고자 딸내미와 사진도 찍고 버스들 보면서
'이 버스는 어디가네...저 버스는 어디가네...'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때였습니다.
한 할머니께서 사람들에게 "저기...당진가는 버스는 워디서 타유??" 큰 소리로 물어 보았습니다.
휴가철이라 터미널은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아무도 그 할머니께 승강장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 앞으로 가서 묻습니다.
"쩌기...당진 가는 버스 워디서 타면 되유?"
스마트 폰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던 청년은 고개도 들지 않고 짜증스럽게 대답합니다.
"아...저기 써있잖아요. 당진이라고 써 있는데 가서 타면 되죠..."


표지판을 보고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리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도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에 그 청년이 얄밉더군요.

할머니는 퉁명스러운 청년 옆에 있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에게 또 묻습니다.
"하이고...차 시간 다 되얐다는디...당진 가는 버스가 워디있어유?"
그런데 말이죠...그 많은 사람들이 아무도 대답을 해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휴대폰을 보거나 딴청을 하고 있었습니다.

짐이 많고 아이들을 데리고 있다는 이유로 보고만 있었는데...어쩔 수 없는 오지랍이 또 발동합니다.
버스 승강장이 따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일직선으로 쭉~서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이었고 눈만 돌리면
행선지가 적혀져 있는 표지판이 매달려 있는데 그거 알려주는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아무도 대답을 안해주는 건지...
"하랑아...잠깐만 움직이지 말고 앉아 있어봐..." 딸내미 단속을 시키고...

"할머니 이쪽으로 오세요...아 저 버스 타면 되겠네요."
다행하게도 당진 가는 버스는 제가 탈 버스 두칸 옆에 있었습니다.
"하이고...고마워유 애기 엄마...!! 너무 고마워유..."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버스에 오르시더군요.

정말 차가 떠나기 직전이었는지 할머니가 타시자 마자 버스는 바로 출발 했습니다.

그 날 유난히 무덥기는 했습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터미널,
매연과 뚫려있는 흡연실의 담배 연기로 가만히 있어도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상황이긴 했습니다.
하지만...어려운 일도 아니고 몰라서 헤메고 계시는 할머니께
바로 옆에 있는 버스에 안내해 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요즘 할머니들을 이용한 범죄가 많아져서...
그래서 냉정해 질 수 밖에 없는건지...참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정말 길을 모르거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박한 시골 할머니들은 어쩔 수 없는 피해자가 되는 거겠죠.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대부분 덥고 귀찮으니 모르는 척들 했겠지만 말이지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