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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육아는 행복해

잘 나간다는 어린이집들의 행사, 그 뒤에 숨은 건?


엊그제...딸내미 담임 선생님과 급히 통화 할 일이 있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간단하게 통화를 하고 끊으려는데 옆에 다른 선생님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문득 시계를 보니 9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어머...선생님...아직 퇴근 안하셨어요?
난 선생님 집에서 쉬실 시간에 괜히 전화를 해서 미안해 하고 있었는데..."

"네...할 일이 좀 많아서요...다음주에 있을 행사 준비때문에..."
"무슨 행사요? 혹시 할로윈 데이?"
"네...그래서 교실도 꾸며야 하고 미리 챙겨야 할 준비물들도 있구요..."
"아니...그래도 그렇지 몇 시인데...."
"그래도 할 일이 많아서요....아직 멀은 것 같아요..."
"내일 견학도 간다면서요. 일찍 가셔서 쉬어도 부족할 판에..."

또 하랑맘의 어이없는 오지랍 발동하여 공연히 하나마나한 참견을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일찍 퇴근 시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요.

문득...놀이학교에 근무 하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대부분 완제품인 교구들을 사용하여 프로그램을 진행 하던 곳이라  그나마 기존 어린이집 보다는 잡무가 없는 곳들 이었습니다. 하지만...매주 금요일마다 하는 특별 활동을 했습니다. 토마토 데이라고 해서 생 토마토를 던지며 노는 퍼포먼스, 재활용 데이라 하여 각종 재활용품으로 만든 장식과 옷들로 꾸미고...그 곳들도 할로윈 데이 활동을 거하게 했기에 행사 몇 주 전부터 선생님들은 분주하게 꾸미고 만들 건 만들고 말이지요...아이들은 2~3시간 놀이를 하지만 그 놀이를 위하여 선생들은 몇 주동안 준비를 해야했고 또 아이들이 집에 간 후에는 하루종일 정리하고 청소를 해야했지요.


그나마 이런 놀이들은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기 위한 수고로움이었으니...기꺼이 감수 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모 참여 수업, 체육대회, 모자 혹은 부자 캠프등...부모님들이 원에 방문하는 행사를 앞두고는 더욱더 긴장하여 몇 날 , 몇 일 집에도 못가고 준비를 하곤 했습니다.

다니고 있는 원생들을 대상으로 일 년에 두 번씩 학부모 방문 상담도 했어야 했습니다. 그 어머님들과 아이들의 원의 전반적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좋지만...원에서는 어머님들이 가져가실 아이들에 대한 자료와 통계를 만들어 내라 합니다. 엄마들이 왔으니 뭔가를 들려 보내야 할 것이니 아이들의 사진들을 넣어 아이 개개인마다 작은 앨범들을 만들라 합니다. 엄마들에게는 내 아이 하나지만...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개인 사진들을 찾고 꾸미고...만들고...열 개 가까이 만들다 보니 주말에도 그 앨범 꾸러미들을 집까지 들고와 주말까지도 밤새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재롱잔치를 연습때는 그런 전쟁이 없습니다. 엄마들에게 보다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서 아이들을 훈련 시키고 준비하고 꾸미고...누구를 위한 재롱잔치인지 모르겠을 때도 있습니다. 엄연히 아이들의 잔치가 되어야 할 재롱 잔치가 언제부터인가 화려한 반짝이 의상을 입고 잘나가는 댄스 가요들에 맞추어 춤만 추다가 끝나곤 하지요. 물론 그 과정에 재미있는 일도 있지만...꾀나 고된 훈련기간이 필요 합니다. 재롱잔치 끝난 후에 이어지던 재원 상담 준비도 또 해야 합니다. 엄마들을 상담하기 위해 또 아이들에 대한 데이터를 만들고 보여 줄 거리를 만들고...

당장에 생각나는 것들만 몇 가지 정리 해보았지만...대부분 학부모를 의식한 여러 자료와 행사 준비에 많은 진을 빼야 했었던 것이 생각이 나네요. 물론 이건 원장님의 스타일과 학부형들의 분위기에 따라 많이 다르지만...행사 하나에 원의 이미지가 그려질 수도 있는 거고 엄마들의 평판에 원생들의 재원과 신입생 모집이 달려 있기에 의식을 아니 할 수가 없었지요. 놀이학교 아이 하나하나가 내는 고가의 원비 때문이었는지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은 더 컸었던 것 같구요.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의 생활을 엿 볼 수 있고 아이의 재롱을 볼 수 있는 원의 행사가 많으면 좋겠지요. 또 아이의 모습들을 담아 보내는 사진이나 여러 평가, 글 등...서비스가 많으면 또 좋구요...하지만 그 뒤에 숨은 선생님들의 노고는 잘 보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요구 사항이 많을수록 선생님들의 퇴근 시간은 늦어지고 때로는 황금같은 주말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요...

지난 여름...놀이학교에 근무하는 후배에게 뜬금 없이 문자가 왔더군요. "언니, 과학하고 수학 채점하고 코멘트 써주는 알바 좀 할래? 얼마면 되? 언니 그런거 잘 하잖아..." 라구요...전 또 그 친구 주변의 누군가가 일하는 학원에서 알바를 구하는 줄 알았더니 바로 주임인 그 친구가 원아들이 했던 활동들을 채점하고 코멘트를 달아야 하는데 휴가 내내 하여도 못 할 것 같아 답답한 마음에 개인적으로 돈을 써서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연락 해봤다 하더군요. ㅡㅡ;;; "니네 애들 니가 알지...내가 어찌 해주냐..." "알지...나도 그냥 해 본 소리야...에고 답답해..." 다분히 형식적이고 보여주기 위한 평가와 코멘트들 때문에 휴가때도 속 편하게 못 쉬는 후배를 보면서 또 옛날 생각나서 속이 상하더군요.

또 그런 행사도 부족해 무슨 정부 평가인증인가? 하는 제도까지도 생겨 선생님들 괴롭히더군요. 뭐...저희 아이가 다니는 원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 좋은게 좋은 것이니 아이들 빠지지 않고 등원 시켜 달라하셔서 그 정도만 도와주며 지켜 보았지요. 자세한 원 사정과 업무는 이제는 제가 직접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평가 인증을 앞 둔 몇 주간 선생님이 바쁘시고 정신 없어 하시는 건 느끼겠더군요. 학부모 입장에서 지켜 본 그 평가인증...딱...!!! 뭐라 할까요...그냥 그렇게 잠깐 보는 것으로 어찌 원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나...싶던데요...막말로 인증기간 동안 몇 일만 바짝 잘하면 통과하는 거 아닌가 말이지요. 그 몇 일 바짝 잘 하기 위해서 선생님들은 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어요 ㅡㅡ;;;사람들이 느끼는 건 비슷비슷한지...그 수박 겉 핡기 식의 평가인증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뉴스에서도 나오더군요.


요즘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폭력에 대한 문제가 또다시 대두되자 어린이집을 불신하는 목소리들도 들리는 반면 사랑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많은데 나쁜 교사들만 비추어주며 그들이 전부인양 몰아간다는 현역 선생님들의 목소리가도 높더군요. 다른 건 뭐...각자의 시각과 입장에 따라 다르지만...보육 보다 더 신경써야 할 잡무들이 많다는 말씀들에는 정말 공감이 가더라구요. 어린이집에서 보여주는 서비스(?)에 너무 연연해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것에 있구요. 원장님은 엄마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지만...그 뒤치닥거리는 다 교사들의 몫인 경우가 많거든요.

저희 딸아이 담임 선생님의 나이가 23인가??? 더 어릴 수도 있겠구요.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맡은 반이 저희 딸 아이의 반이라 했습니다. 참 한창 때지요. 아이들도 정말 예뻐하고 참 열심히 합니다. 원의 행사 때문에 9시 가까이 되도록 퇴근도 못하고 있지만 웃으면서 괜찮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제가 그 나이때 잡다한 여러 행사들로 퇴근도 못하고 주말도 없이 일 했던 생각이 나서 안타깝더군요. 애들 보기도 바쁘고 힘든데...때마다, 달마다 정말 많은 행사에 시달렸던 기억이 나서 공연히 또 열변을 토했네요.

어째...행사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많으며 (아니 정체 모를 행사들이 더 늘어난 것 같네요 ㅡㅡ;;) 수당 한 푼 안주는 야근은 그리 많은지...ㅡㅡ;;; 엄마나 아이들이 보는 행사는 단 몇 시간이지만...그 뒤에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이상 밤 낮으로 준비 했을 선생님의 노고가 숨어 있을 것 입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