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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똘똘이 하랑이

계절 모르고 핀 민들레에 엄마가 두려워진 이유

친정집에서 친정 부모님이 일하고 계신 밭으로 가는 길...
약 10분 남짓 걸리는 이 거리를 걸음 느린 딸을 데리고 가면...30분이 걸립니다.
궁금한 것 많고 참견거리 많아서 수 십번은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눠야 하거든요.


계절이 거꾸로 돌아가는지...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에 길 곳곳에 노란 민들레가 피었습니다.
오늘의 딸내미의 큰 관심사는 바로 이 민들레 입니다.


"엄마...이거 바바요...여기 민들레 있어요...."
"그러게...여기 민들레가 있네...겨울인데 얘들은 봄인줄 아나봐...!!"


"엄마...이거 봐봐요...여기 또 있어요..."
두 걸음도 떼기 전에 또 민들레가 있습니다.
이 계절에 왠 민들레가 이리 많은지...
민들레 하나 발견할 때마다 몇 분씩 구경하는 딸내미때문에 오늘은 더 오래 걸립니다.


"엄마...나 이거 하나 따도 되요?"
"그런데...꽃은 눈으로 보는거지...이쁘다고 꺾으면 꽃이 아플텐데..."
잠시 생각했습니다.
몇 일 따뜻해 민들레가 피었지만 또 갑자기 추워지면 얘들이 얼어 죽겠다 싶어서...
"그래...그럼 하나만 꺾어보자..."


"근데...봄도 아닌데 민들레가 왜 이렇게 많지???"
딸은 엄마가 아까 했던 말을 따라해 봅니다.
"음...우리가 사는 이 땅이 뜨거워져서 그런데..."
"땅 안 뜨거운데...차가운데..."
의심많은 딸은 땅을 만져봅니다. ㅡㅡ;;

당연히 그 땅은 차갑지...ㅡㅡ;;
"응....우리가 지구라는 땅에 살고 있는데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려서 지구가 뜨거워져서...
그래서 겨울인데도 안 춥고 따뜻해서 민들레가 봄이라고 착각했나봐..."
아직 지구라는 말은 4살 딸에게 생소하겠지만...
또 어찌 더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생각하는데...
"아...선생님이 그러는데 사람들이 나무도 많이 없애서 그러는 거래요..."
"그래...맞아...우리 하랑이가 어떻게 알았지???"


한 송이의 민들레를 귀에 꽂고 딸은 신이 났습니다.
"엄마...근데 사실은요...땅이 뜨거워져서 민들레가 핀 거 아니에요."
"그래?"
"네...민들레가 '하랑이가 시골에 왔구나...내가 나가서 하랑이랑 놀아줘야겠다...' 이러고 나온거에요."
도대체 이건 상상력이 좋은건지...공주병이 심한건지...
착각도 가지가지 입니다.

하지만 맞장구 쳐주지 않으면 섭섭할까봐...
엄마는 또 애써 맞장구를 칩니다.
"아...그렇구나...엄마는 그런 생각은 못했네..."
"엄마는 민들레가 하랑이 보러 나온 줄 몰랐지요?"
"그러게...엄마는 정말 몰랐네..."


화이애애한 대화와는 달리...왠지 계절 모르고 핀 민들레가 무섭습니다.
지금은 어려서 노란 민들레가 마냥 신기하고 이쁘기만한 이 아이가 자랄즈음...
이 지구는 더 뜨거워져서 더 많은 재난이 일어날텐데...
더 덥고...더 춥고...더 비도 많이 오고...더 가뭄도 많고...!!!
지구가 아프데요...북극곰이 죽는데요...우리 아이들이 살기 힘들어져요...!!!

날이 다시 추워지기 전에 오늘 내복 사러 가야겠습니다.
아이들 말고 남편과 제 내복 사러요.
저부터라도 실내 온도를 1도 만이라도 낮춰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