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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똘똘이 하랑이

한글 읽겠다는 딸내미, 읽지 못하게 말리는 엄마

올해 4살인 딸내미.
동생 핑계로 엄마가 잘 놀아 주지도 않고 학습 비스무리한 모든 것에 손을 놓은 상태입니다.
물론 바쁘기도 하고 어린 동생이 많이 훼방을 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꼭 무언가를 시켜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동생 잘 때....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뭐라도 시키겠지요.

시간이 없다기 보다는 시키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지금은 그냥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겨우겨우 하루 몇 권의 책만을 읽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려 하는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딸내미는 항상 학습의욕이 넘칩니다.
시키지 않아도 한글을 읽으려 하고 수를 세려 하고...
그림 그리라고 주는 스케치북에는 온통 삐뚤빼뚤한 수와 한글로 도배를 시키며 놉니다.

언젠가 딸내미와 둘이 슈퍼를 갈때는
"엄마...우리집에 4명이 있었잖아요. 아빠, 엄마, 나, 그리고 한결이...
그런데 우리 둘이 나왔으니깐 집에는 몇 명이 남았지요?"
"글쎄...몇 명이 남아있지??"
"두 명이잖아요. 아빠랑 한결이랑..."
"그럼...우리가 다시 돌아가면???"
"그럼 네 명 되는거죠."

"엄마...친구들이랑 나눠 먹게 캬라멜 가져갈래요."
뭐든 퍼주기 좋아하는 딸내미는 아침마다 이리 요구 합니다.
"그래...그럼 00랑, 00랑, 00랑 그리고 하랑이꺼...네개만 가져 가자..."
"안 돼요...차에 세 명 더 있구요 선생님도 있어요. 그러니깐 7개 가져가야 되요."
이런식으로 10자리 안의 덧셈과 뺄셈의 개념까지 혼자 터득했습니다.


원투쓰리...텐까지 세더니 그다음을 물어 보더군요.
그냥 물어보길래 대답해 주었습니다.
일레븐...투엘븐...투에니....!!!!! 까지 알려 주었죠.
기억할 것이다...의미를 알 것이다...기대는 전혀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모할머니네 꽂혀 있는 백과사전의 번호...
차례대로 꽂혀 있는 것도 아니고 번호가 들쑥날쑥 꽂혀 있는데

그걸 순서대로 찾아가며 20까지 영어로 세면서 노는 것을 본
이모 할머니네 가족은 천재 났다고 난리가 나더군요.
할머니 할아버지 눈에는 아직 나이 어린 조카 손녀가 눈치 안보고
제대로 발음 굴려가며 수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4살 꼬맹이가 신기하셨나봐요.

투에니...다음에 뭐냐고 묻길래...
그 다음부터는 한글로 이십일...이십이...
 세는 것처럼 투에니 원...이렇게 다시 알려 주었더니

혼자 투에니 나인...까지 응용해서 하더군요.
다만...마지막에 투에니 텐....!!! 이것 빼고는요...ㅋㅋㅋ

딸 똑똑 하다고 자랑하려 글을 쓰는 글이냐구요?
솔직히 시키지 않고 붙잡고 가르치지 않아도
관심 갖고 응용까지하는 딸내미를 보면 참 기특하고 재미있습니다.

다만...여기까지...한글은 좀 늦게 가르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꽤 커서 한글을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을때까지...
엄마는 직접 책을 읽어 주려 계획하고 있습니다.
귀찮고 목이 아프지만...엄마와 정을 쌓고 아이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연스레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휘가 아무리 좋아도 아이가 소화하고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문맥이나 단어들도 쉽게 풀어 설명해주고

무엇보다 활자를 읽어 내려가느라 그림속에 담긴 
또다른 의미와 이야기들을 놓쳐 버리는 것이 아쉬워서 입니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동안 아이는 그림들을 보면서 상상을 하고
또 어른들은 쉽게 지나치는 작은 부분들까지 찾아내어

함께 웃고 이야기 하는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한글에 관심을 갖길래 책 제목 짚어 가며 읽어주고
생각날때 낱말 카드로 놀아 준게 전부인데

딸은 어느새 꽤 많은 글자를 알아버렸더군요.
조금씩 알아갈 수록 글자에 관심도 더 많이 생기고 자꾸 이건 무슨 글씨냐고 물어보고...


문제는 이런 문자에 대한 관심이 딸의 독서에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림보다는 활자를 보며
"엄마...우유라고 써있다...엄마...토끼토끼...엄마...장한결할때 '한'이라고 써있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책 읽기의 맥도 자주 끊기고 책을 읽는 동안 그림을 보며 감성도 키우고
상상도 많이 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는 딸이 속상합니다.
"하랑아...글씨는 다 읽고 엄마랑 같이 아는 글자 찾아보자...
여기 데굴데굴 굴러가는 토끼 좀 봐...진짜 웃긴다..."

"엄마...여기 토끼 글씨가 세 개나 있어요.
봐요...여기도 토끼...아래도 토끼...또 그 아래도 토끼..."

"그래...토끼가 하는 행동을 이야기 해주려니 토끼 글씨가 많이 들어가나봐...
이제 글씨는 그만 보고...."

또 책읽기를 이어가려는데 딸은 또 다른 글씨를 찾아냅니다.
"엄마...오...오리할때 오...오토바이 할때 오...."
몇 번 반복을 하니 딸이 한글을 한글자, 한글자 알아가는게 싫어지기까지 합니다.

장애가 있지 않는 이상 어느정도 자라면 다 말을 할 수 있게 되듯이
정규교육 과정을 거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것이 한글인데
평생 쓸 한글 한 두해 늦춰 가르쳐도 상관없지 않을까 싶은 마음입니다.
때문에 딸의 생각을 방해하는 한글 읽기가 달갑지 않은 것이구요.
어짜피 때되면 다 읽게 되는 한글 대신 생각하고, 상상하고, 관찰하는데
그 에너지를 쏟았으면 하는 욕심 때문이겠지요.


"하랑아...글자는 엄마가 읽어 줄게...하랑이는 그림을 읽어 보자..."
결국 오늘도 엄마는 글자에 집착하는 딸을 말립니다.


P.s 친정에 왔는데 날씨 문제로 아직 집에 돌아가질 못했네요.
 낮동안 딸내미가 쓰며 놀았던 숫자며 글씨들을 아이폰으로 찍어 놓고 전송하려는데
비바람 때문에 전파 상태도 좋지 않은지 메일로 발송이 안되네요.
카메라로 찍을 걸...ㅠㅠ
예약 발송이라 검색 이미지와 예전 포스팅에 사용했던 딸내미 사진으로 대체 합니다.
내일은 정말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사진 수정도 못할텐데 ㅡㅡ;;
날씨가 무섭기까지 하네요. 여기는...충남 논산 11시 39분...

모두 행복한 12월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