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랑이네 엿보기/육아는 행복해

황새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 뱁새 엄마의 좌절



5살 여자 아이 세 명으로 구성 된 반이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외가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준재벌급의 재력가였고 또 한 아이의 아버지는 의사였습니다. 나머지 한 아이의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수업을 받는 동안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세 엄마들...일부러 그러려던 것은 아니겠지만 자연스레 경제적인 수준이 높은 두 명의 엄마들끼리 어울리고 다른 한 엄마는 혼자 조용히 책을 읽으며 대기를 하곤 했습니다.

엄마들 사이의 이질감은 그렇다 쳐도 아이들 사이에도 위화감이 존재 했습니다. 명절이 지나고 오면 받은 세배돈의 0이 더 붙는 액수, 타이즈까지 명품으로 신고, 들고 오는 먹거리나 장난감 또한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휴가철도 아닌데 수시로 해외 여행을 다녀오는 두 아이들....그 비싼 수업을 아무렇지도 않게 빼먹고 여행도 자주 갑니다. 언젠가는 한 친구가 한 달 가량 하와이의 호텔을 전세 내어 다녀 왔습니다.

"선생님 아빠가요 돌고래에게 먹이 주다가 손가락을 물렸어요..."
"선생님...000호텔은요...."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도 질세라...
"선생님...우리 아빠는 사이판 갔을때요 코끼리 탔어요. 저는 무서워서 안 탔구요..."
"선생님은 일본 가봤어요? 거기가면요 원숭이가..."
어른인 저도 생소하고 다른 세계의 이야기들 처럼 들리는데 해외 여행은 커녕 제주도 가는 비행기 한 번 못 타보았다는 아이에게는 그 갭이 더 크게 느껴졌나 봅니다. 보통은 국내 여행이라도 한 번 가려면 많이 계획 하고 큰 마음 먹고 떠나기 마련인데 이웃집 마실가는 것 만큼이나 자주 해외를 다녀와 자랑하는 친구들에게 이질감을 느꼈던건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일주일 후...아이 엄마가 그만 두겠다고 합니다. 지난 수업을 마치고 아이가 집에가서 울면서 하와이에 가자고 했다나요. 처음 센터에 다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때는 수업료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이 시기에 꼭 한 번 접해주고 싶은 좋은 프로그램이니 감수 하겠다...조금만 허리띠를 졸라메자...라는 마음으로 등록을 했다구요.

막상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른 여유로운 엄마들을 만나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공연히 자신의 생활과 비교를 하면서 남편과 본인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기 시작했다구요. 크게 여유롭지는 않아도 알콩달콩 아껴가며 반질반질 윤이 나게 살림 하고 아이들 건강하게 잘 크는 모습에서 행복을 찾았는데 센터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 소중했던 삶이 너덜해졌다구요. 아무렇지도 않게 명품 카달로그 들고와서 몇 백만원짜리 가방을 동네 슈퍼에서 껌 사듯 쉽게 사는 엄마들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주눅들지 않으려고 노력 했었다구요. 하지만...본인이 느꼈던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는 경제적인 차이를...아이가 무의식적으로 나마 느끼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구요.

그때는 선생님 입장이었으니 그저 안타깝다...이 마음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제가 그 평범한 가정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프로그램이 너무 좋았습니다. 내 아이에게도 꼭 접해주고 싶었습니다. 막상 등록하고 보니 그때 그 아이 엄마가 왜 그만두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매일 비슷한 프로그램을 한 가지 이상씩 일주일 내내 하고 좋다는 영어 유치원, 놀이 학교를 다니는 그 아이들의 한달 평균 교육비는 150~200만원 정도입니다. 수업이 끝나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며 까페에 가서 밥을 먹고 백화점으로 쇼핑을 갑니다. 그런 기관들에서 일을 했었기에 영어 유치원, 놀이학교 크게 좋은 점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릴적부터 너무 많은 프로그램들을 돌리며 혹사 시키는 건 역효과가 난다고 느꼈으면서도 아이를 너무 방치해 두나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나곤 합니다.


한 엄마에게 작은 도움을 주었는데 고맙다며 2만원 가량의 선물을 받았을때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준 도움은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알아다 준 것 뿐이었는데...괜찮다고....아니라는 데도 굳이 제 딸의 머리에 그 핀을 꽂아 주었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구요...정 그리 고마웠다면 작은 과자 한 봉지 정도면 될 것을...제가 준 도움에 비해 과한 선물을 받으니 민망해졌습니다. 그러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 아이 엄마에게 2만원의 가치는 내가 느끼는 1천원, 2천원의 가치이지 않을까...그리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 하면 같은 고급 외제차들이 들어 옵니다. 그리고 제 눈 앞에서 주차를 합니다. 지금은 차량을 교체 했지만 처음 센터를 갈 당시 10년 넘은 낡은 차량을 이용했던 터라 또 왠지 주눅이 들었습니다. 딸아이와 같은 교실에서 수업 받는 친구가 벤츠에서 내리는 것을 보면서 바로 차에서 내리지 못했습니다. "엄마 왜 안내려?"..."응...조금만 있다가 내리자...차 다시 반듯하게 대려고..."
그런 제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저도 모르게 그리 했습니다.

아직 그 센터에서 선생님으로 일을 하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이리 속물인지 몰랐다고...소중했던 내 삶이 갑자기 너덜하게 느껴진다고...내가 가르쳤던 엄마가 이야기 했던 말을 제가 다시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의외로 너처럼 평범한 가정에 생활비 쪼개서 오는 엄마들이 같은 말 하면서 힘들어 하다가 그만 두고는 하더라. 뱁새가 황새 쫓아 가려다 현실을 보았다구...그래도 넌 일하면서 많이 보아서 중심을 잡을 것 같은데 막상 그 상황이 되니 또 느낌이 다른가부지.." 잠시 망설이던 친구는 말합니다. "그냥 태생이 다르다고 생각해라...왠지 나중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함께 일했던 후배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언니..가르치면서는 당연하게 보았던 모든 것들...난 우리 00 못 해줄것 같아...그래도 언니는 센터 등록은 했네...난 갈 엄두도 안나는데...다른 사람 신경 안쓰는 스타일이면 몰라도...보이고 느껴지는데 무신경하게 넘기진 못 할 거 같긴해...어떤 기분이었는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내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주고 싶었습니다. 수, 한글, 영어...보편적인 공부를 시키는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 하니깐...내가 가르쳤던 수많은 아이들 처럼...엄마는 해주기 어려운 재미있는 놀이를 딸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 단순한 이유 하나로 학부모가 되어 다시 찾은 센터에서 느끼는 위화감은 선생님일때 느꼈던 것과 다른 의미로 다가오더군요. " 그 곳에서 일할 당시 "우리 반에서 선생님이 제일 가난하잖아..." 동료들과는 이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쿨 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엄마고 자식이 생기게 되니 쿨~해지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