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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똘똘이 하랑이

아파도 아프다 못 하는 4살 딸이 가슴 아픈 이유


아까부터 딸내미의 몸이 안 좋아 보입니다.
자꾸만 눈꺼풀도 무거워 보이고 눈도 충열 되었습니다.
평소와 비슷한 실내 온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춥다고 합니다.
보다보다 힘들어 보이기에 열을 재어 보려 하는데 절대로 안 재보겠다고 버팁니다.
"엄마...나 하나도 안 아파요. 정말로 안 아퍼요....열 안나요..."
정말 열이 나는지 안 나는지는 엄마가 재보면 알 것을 공연히 펄쩍 뛰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내일은 엄마와 딸이 모처럼 데이트 약속을 했습니다.
어린이집은 땡땡이 치기로 했습니다.
동생이 태어나기 직전부터 둘만의 외출을 하기 못하기 시작했으니 약 1년 반 조금 안 된 기간의 일입니다.
동생이 태어난 이후로 아빠와 둘이는 자주 외출을 했지만
엄마와 둘만의 외출은 처음이니 딸이 설레일만도 합니다.

"엄마...내일 어린이집 안 가면 선생님이 궁금해 하겠다...
빨리 전화해서 하랑이는 내일 엄마랑 놀아야 되서 못 간다고 이야기 해..."

"응...문자 보냈어...하랑이 못 간다고..."
"엄마...내일 엄마랑 목욕탕도 가야 하고 영화도 보러 가야되서 못 간다는 것도 말 했어?"
"아니...그건 하랑이가 직접 말해..."
"엄마가 해줘...선생님이 하랑이가 왜 안오나...궁금해 할 거 아냐..."
실은 엄마와의 나들이를 자랑하고 싶은 이유겠지요.


별 것을 하기로 한 것도 아니고 엄마와 목욕탕에 가서 물놀이 하고
 근처 극장에서 어린이 영화 한 편 보기로 하는 정도로

반 나절 정도 걸리려나?
딸은 무척 좋아 하면서 함께 데려가지 않기로 한 동생에게 미안한지
더 잘 해주겠다면서 평소보다 나긋나긋 하게 대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갑자기 열이 오르기 시작하며 눈 뜨고 앉아 있기 조차 힘이 들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안 아프다고 우깁니다.

"괜찮아요...나 졸려서 그래...그냥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하랑아...열을 재야지...아프면 빨리 약 먹고 나아야지 내일 엄마랑 놀러 가지..."
한참을 설득한 끝에 열을 잴 수가 있었습니다.
39.7도...다른 한 쪽은 39.5도 였습니다.
손과 발이 차고 이마도 많이 뜨겁지 않아 미열정도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 정도 열이 올랐으면 아이가 얼마나 힘이 들고 아팠을까요.
그런데도 혹시라도 내일 엄마와의 데이트가 취소 될까 걱정이 된 딸은 꾸역꾸역 아픔을 참고 있었습니다.

해열제를 먹이고 물도 많이 먹이고...눕혔습니다.
여전히 눈동자에는 힘이 없건만 딸은 내내 아무렇지도 않다고 합니다.
"엄마...나 약을 먹었더니 하나도 안 아프네...
내일 한결이 놔두고 엄마랑 둘이 목욕탕도 가고 영화도 볼 수 있겠다..."

혹시라도 자기 아픈 것 때문에 엄마가 안 논다고 할까봐 억지로 목소리에 힘들 주는 딸이 너무 안 쓰럽습니다.

"하랑아..참...우리 저녁 먹고 비타민 안 먹었다..."
갑자기 딸아이가 좋아하는 비타민이 생각이 났습니다.
왠지 비타민을 잊어서 열이 오른 것 같습니다.
딸은 웃으며 말 합니다.
"엄마...내가 비타민을 안 먹어서 아픈건 가봐..."
그렇게 비타민 하나를 딸에게 주는데 철없는 동생이 가운데서 휙~~ 낚아 챕니다.
"으앙...이거 내꺼야 저리가...."
딸은 울상을 지으며 동생에게 화를 냅니다.
"장.한.결...이거 누나꺼잖아...뺏어가면 어떻하니..."
딸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오.....엄마가 왠일이야??"
당황스럽습니다.
"응?? 뭐가 왠일이야?"
"아니 왠일로 한결이를 혼내냐고...나 징징 거리는데도 뭐라고 하지도 않고..."


웃고 넘어 갈 수 있는 딸의 한 마디가 비수처럼 마음에 꽂히며 눈물이 핑~~돕니다.
딸이 왜 그렇게까지 아픈데도 참는지 알 것 같습니다.
동생이 태어난 이후로 엄마는 대부분 동생편 입니다.
어리다...힘이 없다...돌봐주어야 한다...양보해라...
 아직 4살 너무 어리기만 한데... 자꾸만 누나가 되라고 강요만 했습니다.
어쩌다 엄마 혼자 주말에 외출을 나갈때면
어리고 엄마와 잘 떨어지지 않는 다는 이유로 동생만 데리고 나갔습니다.

아빠와 죽고 못 사는 딸내미이니 그래도 괜찮은 줄 알았습니다.
"엄마...나도 가면 안돼??"
"안돼...둘 다 같이 나가면 챙겨주지도 못하고 하랑이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어...
엄마가 마이구미 사올게..."

현관에서 순순히 손을 흔들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줄 알았습니다.
엄마가 안돼...라고 말을 한 순간 다시 번복하지 않을 것을 아는 딸아이의 체념인 줄도 몰랐고...
동생만 데리고 나가는 엄마의 뒷 모습을 보는 딸의 표정은 제대로 보아 주지도 않았습니다.

"하랑아...왜 니가 징징 우니....그럼 그거 동생 주고 엄마한테 새로 주세요...하면 되잖아..."
딸에겐 이게 당연하고 익숙한 엄마의 반응 이었을까요...
내가 그렇게 딸아이의 편을 안 들어주었나...싶은 마음에 미안해지고 뭉클해집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무조건 큰 아이 편만 들거라고...사람들에게 호언 장담을 했습니다.
주변에 아이 둘을 키우는 선배 언니들이 큰 아이만 잡는 것을 보면서 왜 그렇게 키우냐 나무랐습니다.
전 책에 나오는 좋은 엄마들 처럼 큰 아이와 둘째 아이를 공평하게 키울 자신이 있었습니다.
"오...엄마가 왠일로, 한결이를 혼내???"
안 그러려고 했지만 결국 딸의 눈에 엄마는 항상 동생편이었던 게지요. ㅠㅠ

열이 조금 내려갔지만...38.7도...
여전히 딸은 내일 엄마와의 데이트 때문에 노심초사 입니다.
"엄마...나 약 먹었더니 싹~~나았어요...진짜루요...
일찍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하나도 안 아플거에요.

한결이 놔두고 엄마랑 목욕도 가고 영화도 볼 거에요..."
저녁 내내 열 번도 더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문장속에 내내 강조 되는 "한결이 놔두고..."


이 글을 쓰는 시간 새벽 2시 27분...

갑자기 딸이 춥다 하여 열을 재는데 몇 초마다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래도 해열제는 잘 들어서 다행입니다.
약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네요.
딸이 저렇게 기대를 하는데...  
한결이 놔두고 안 놔두고를 떠나서 나갈수나 있으련지...걱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