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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육아는 행복해

미국에서 사는 사람에게도 어렵다는 유아 영어


고등학교때 미국에 가서 17년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가 놀러 왔습니다.
워낙에 단짝이었어서 가끔 한국에 들어 올때면 잊지 않고 꼭 만나게 되는 친구입니다.
유달리 아이를 좋아하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물론 아이도 없습니다.
때문에 딱 두 번 본 우리 딸내미...물고빨고...그렇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딸내미도 잠깐의 낯설음을 떨치고 이모이모...하며 열심히 따라 다닙니다.

미국 가기 전부터 영어를 정말 잘하고 발음도 좋아
 수업시간에 공포의(?) 지문 읽기를 도맡아 하던 친구였습니다.

딸내미에게도 자상하게 영어 그림책도 읽어주는 모습을 보며 내심 뿌듯했습니다.
엄마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발음으로 책 못 읽어 줍니다.

잠시 책을 읽어 주던 친구가 멈칫 합니다.
"이건...저 뭐냐..."
군데군데 자꾸만 막힙니다.
"아...애들 책이 뭐 이렇게 어려워...내가 지금까지 미국 살면서도 이런 말 한 번도 안 써봤구만..."

물론 아이들 동화이다 보니 흉내말 (의성어 의태어)들도 많고 
영어판 유아어들이 많이 있기에
어른들이 쓰는 회화와는 많은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요.
그러려니...그림과 함께 쓱~~읽고 넘어가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집니다.



하지만 그 불필요하게 많은 단어들을  일일이 익혀야만하는
우리나라 유아 영어이기에 참으로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평소 자주 보는 곤충이나 동물, 색깔, 도형...뭐 이정도는 함께 재미로 배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왜 어른들도 보기 힘든 정십이면체까지 영어 단어로 배워야 하고
우리나라에 있지도 않은 외국의 다리 많은 곤충들을 배워야 하는지...

실제로 예전에 가르쳤던 영어 유치원 아이들의 엄마들이
가장 어렵고 힘든일이
다음 날 있을 영어 단어 테스트를 준비 시킬때라 합니다.
수 십만 단어가 실린 전자 사전에도 없고
두께가 10센티 넘는 영어 전공자용 사전에도 없답니다.

네이버, 다음, 야후, 구글...각종 사이트에 검색하고 겨우 얻은 답들은
'거북이 등껍질의 비늘' '00사막에 사는 낙타의 혹' '00바다에 사는 연체 동물의 다리...'
등등...한국 말로도 생소한 수준의 단어들이 많습니다.
'대강 의역만 하면 되잖아요? 꼭 이렇게 까지 찾아봐야 되는거에요?' 
물어보면 그 속의 단어들과 숙어들을 테스트 하기 때문에 하나도 빠짐 없이 외워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한국말로나마 아이들이 이해하고 있을지 싶은 단어들 이었습니다.



그때는 영어 유치원 보내는 엄마들이 선생님 앞에서 공연히 엄살 떠는 것이겠지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나 이웃 맘들을 보니 실제로 그렇더라구요.
아이가 가져온 그림책을 보면 말이 그림책이지
고등학교 교과서에나 볼 법한 긴 지문들...이 가득 쓰여 있고 그림도 별로 없습니다.
한글책이라도 그렇게 빽빽하면 읽다 질릴 것 같은 수준입니다.

영어유치원 3년차인 7살 아이가 읽어가야 하는 숙제로 가지고 온 원서였습니다.
 책을 가져 온 날 밤은 두 부부가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날입니다.
하다하다 안되면 주변의 영어 좀 한다는 친구들에게 전화 걸어 물어 봅니다.
실제로 저도 몇 번이나 전화를 받고 남편에게 묻기도 하고 찾기도 해서 알려 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한 마디 했지요...
"야...초등학교도 아니고 유치원 영어를 이렇게 까지 해야하니?"

들인 밑천이 아까워서 그만 둘 수가 없답니다. ㅠㅠ

얼마 전 이웃 맘이 영어 학원 알아 본다고 함께 가달라 하기에 따라가봤습니다.
이웃맘과의 상담을 마치고 저의 자녀에 대해 묻더군요.
4살이면 충분하다고 저까지 부추기며 교재를 보여 주었습니다.
파닉스 교재였습니다.
그림 그리고 놀이를 하면서 하는 파닉스이기에 아이에게도 무리가 없다고 설득 하더군요.

그림 그리고 놀이를 하면서 배우면 파닉스가 파닉스가 아닌게 되나요.
ㄱ,ㄴ,ㄷ 같은 한글도 아직은 아이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기호에 불과할 것 같아 굳이 가르치지 않고 있는데...
a,b,c의 발음을 왜 가르쳐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니 뭘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시더군요.
몇 일 전 이웃인 '늦둥이맘'님의 포스팅에서는 그 반대의 양심적인 영어 학원 원장님을 만나셨던데...ㅠㅠ
그런분은 많지 않으신가봐요.


친구는 이야기 합니다.
"내가 미국가서 한국 영어가 정말 어렵다는 거 실감했잖아.
교과서 나온 영어들 실제로 쓰지도 않는 표현들 정말 많고...
내가 그것들을 머리 싸매고 공부했다니...억울했지...
근데 애들 영어 숙제 물어 본다고 국제 전화까지 걸어가며 사촌언니가 하는 질문들 보면 한숨 나오더라니깐.
오히려 내가 배워...아...그런 단어도 있구나 하고..."

"천천히 시켜...천천히...그리고 다 외우게 하지도 마...
진짜 우리나라처럼 무식하게 영어 공부 시키는데도 없어...미국 애들도 영어 그렇게 공부 안해..."

원어민들처럼 생활에 영어를 쓰는 나라가 아니니 그들처럼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할 수는 없겠죠.
기왕에 하는 영어 남들보다 조금 더 잘 했으면 좋겠고 발음도 더 좋았으면....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 시키고 싶은 엄마들의 교육열...자식 키우다 보니 이해 할 것 같습니다.
다 좋은데 미국에서 십 수년을 산 사람도 처음들어 보는 표현들을
왜 우리나라에 사는 우리 아이들...
그것도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이 외워야 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