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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똘똘이 하랑이

고운 원피스 입고 냄새작렬 거름 150푸대 뿌리다

충남 논산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친정 부모님...

늘~~어린 손주들을 보고싶어 하시지만...

막상 시골을 찾아도 딱히 손주들과 함께 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봄철 농번기에는 정말이지 잠시의 짬도 내실 틈이 없으시죠...

 

 

평소 듣도보도 못한 풀꽃들과 흙놀이

나비,거미 심지어는 지렁이까지 신기한 아이들에겐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직접 놀아주시지 못해도

시골이라는 그 이름 자체가 신나고 즐거운 놀이터 입니다.

 

 

오늘은 외갓집 고추밭에 거름을 뿌리는 날...

구수한?? 구린??? 암튼 폴폴 냄새를 풍기시며

할머니 할아버지는 분주한 손길을 이어가시고...

아이들은 자연을 벗삼아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트렉터를 타고 거름 푸대를 나르시는 외할아버지...!!!!

지금은 바빠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고 계시지만 마음은 온통

밭두렁에서 놀고 있는 손주들에게 쏠려 계실겁니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즐거워 합니다.

방실방실...엄마...이것좀 보세요...

이거 봐봐요....!!!!

내내 엄마를 불러대는 아이도 있고...

 

 

혼자 조용히 이것저것 만지고 구경하며 또 다른 세상을 배우는 아이도 있습니다.

다만...왜 눈과 촉감으로만 배우지 않고...

자꾸 미각마저 배우려 하는지...ㅡㅡ;;;

무조건 입으로 가져가는 아들 말리는 것도

심하게 바쁘고 중요한 일중의 일이 었습니다.

 

 

처음에는 신나게 놀던 아이들도 시간이 한시간...두시간...흘러가자 지루해지기 시작합니다.

 

 

집에 언제 가냐고...빨리 집에 가자고...슬슬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는 딸내미...

"이럴거면...시골에 오지마..." 라는 말도 서슴치 않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왜 맨날 바빠??" 라며 투덜댑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늘 해피하고 궁금한 것 많은 한결군은 여전히 탐색 중입니다.

다만...손가락으로 땅을 파고 겁도 없이 벌을 만지려 하고...

흙이든 개미든 닥치는대로 주워 먹고...

못하게 하면 칭얼 거리고...뻗대고...

아들과의 씨름에 엄마도 녹초가 될 지경입니다.

 

 

거의 10초마다 시계를 보았을까요.

일은 어찌나 더디고 또 그 더딘 속도만큼 시간도 어찌나 느리게 흐르는지...

 

 

일이 손에 안잡히시긴 할머니도 마찬가지십니다.

틈이 날때마다 밭에서 밭두렁으로 오가시며 아이들을 보십니다.

이번에는 과자를 까주고 계시네요.

 

 

그렇게 지루하다고 찡얼대던 아이들...

숨도 안쉬고 과자 봉지만 뚫어져라 보고 있습니다. ㅋ

참 먹을때는 유난히도 진지해지는 아이들이죠. ㅋ

 

그나저나 할머니가 올라오시니 좀 편안해 집니다.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평소 아이들을 볼 시간이 없으신 할머니에게 아이들과 놀아 주라 하고

내가 거름을 뿌리자...!!!

 

 

 

방금 친정에 도착하여 옷 갈아입을 사이도 없이 밭으로 따라온 관계로

저의 차림은 고운 꽃무늬 원피스 차림이었습니다.

왠지...친정에 갈때는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써서 최대한 잘 차려입고 갑니다.

늘 주관적이신 친정 부모님은 몸무게가 늘었음에도 얼굴이 말랐다는 말도 안되는 말씀을 하시고

귀찮아서 편안하고 조금은 초라한 복장으로 찾으면 형편이 어려운지 부터 살피시기에...

그 생활이 그 생활이라 딱히 어려워질 것도 없건만...자식을 보면 부러 걱정부터 하시는지...

 

"아서...옷 버려...이게 뭐 쉬운 줄 알아??"

"냄새 밴다니깐...그런 옷 입고 무슨 거름을 뿌려..."

 

물론 엄마는 딸의 고집을 꺽지 못합니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뭐...굳이 말릴 필요도 없겠지요.

거름 두 푸대 밖에 안 뿌렸는데 허리가 휘청~~합니다.

완전...무겁구요...진짜 냄새...작렬...많이 힘들었습니다.

한 50푸대를 풀었을 즈음에는 하늘이 노래 집니다.

 

자꾸만 말리시는 친정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리고 땀이 송글송글 맺혔습니다.

그만할까 싶다가도 까르르~~아이들과 친정 엄마의 웃음소리에...

다시 힘이 불끈 솟습니다.

 

딸내미가 팔을 걷어 붙이고 하니

약간 한량 스타일의 느림의 미덕을 갖추신 친정 아빠의 손길이 왠일로 빨라 집니다. ㅋ

그렇게 할머니가 엄마 대신 아이들과 놀고 엄마는 할머니 대신 150푸대의 거름을 다 뿌렸습니다.

저 밭의 거뭇거뭇 한 것들 보이시나요?

제가 다 뿌렸습니다.

약간의 오바를 더하면...힘들어 죽을 뻔 했습니다. ㅋㅋㅋ

 

그래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늘 함께 있다보니 건성건성 놀아주는 엄마와는 달리

손주들 웃는 모습 한 번 더 보려고 성심성의껏 놀아주는 할머니가 더 재미있는지

아이들의 얼굴에 칭얼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다음 날 팔도 들지 못할 만큼 심하게 알이 배겼습니다.

거름 냄새는 어찌나 향긋하게 배었는지...ㅡㅡ;;

씻어도 한참동안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이 날 신었던 탐스화는 결국 버렸습니다. ㅠㅠ

 

온 몸이 다 쑤시고 피곤하더군요.

젊고 혈기 창창한 저도 이리 힘든데

낼 모레 환갑이신 부모님께서 매일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신다 생각하니

새삼 마음이 짠~~해져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