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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똘똘이 하랑이

5살 딸의 나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운 행동이 슬픈 이유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평소에도 분주한 아침...날씨가 궃으면 더 분주해집니다.

아이들 씻기고 밥먹이고 옷 입히고...가방챙기고...

유치원으로 옮기면서 나름 숙제도 생긴 딸내미...

간단한 그 숙제들도 어째 이리 부담스러운지...아침의 분주함을 한층 더 고조시킵니다.

 

 

이미 한가득 아이들의 가방과 준비물들을 들고 있건만

둘째는 들쳐업고 딸내미의 손잡고...그 와중에 우산까지 들어야 하니...

복잡하고 정신이 없습니다.

어쨌든  유치원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습니다.

삼일이 멀다하고 오는 비를 뿌려대는 가을장마를 원망하면서 말이죠.

 

 

 

 

 

오늘 딸내미는 핑크빛 레이스 우산  대신 흰색 바탕에 검정 강아지가 그려진 우산을 썼습니다.

딸이 사랑해 마지않는 핑크 레이스 우산은 얼마전 동생이 망가뜨렸거든요.

평소 갖고싶고 만지고 싶은 건 기어이 만지고 부셔버려야 속이 시원한 동생...

화사하고 쫙~ 펴지는 것이 신기한 누나의 우산을 가만 두었을리 만무합니다.

그렇게 단속을 했건만...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우산을 보관하는

신발장에서 꺼내어 순식간에 망가뜨렸습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딸은 취향에 맞지 않는 우산을 써야 했습니다.

별것 아닌 우산 하나에 마음이 상하게 다투고 싶지 않아 선수를 칩니다.

"이거 봐라...여기 호루라기도 있어...우와...운전하는 아저씨가 못 보시면

나 여기있어요...하고 호루라기를 불면 되겠다."

다행하게도 투박한 강아지 인형에는 딸의 이목을 끌만한 호루라기가 달려 있습니다.

역시나 딸은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어...진짜네...와...어떻게 이렇게 달려있지?"

"핑크색 우산보다 이게 훨씬 좋다...그지??? 불어봐..."

ㅎㅎ 사실 그 우산에 호루라기 달려있는 건 오늘 첨 알았네요.

동네 마트에서 개업 선물로 받은 걸...

그냥 신발장에 넣어둔 이후로 제대로 써본적이 없었거든요.

 

다행하게도 딸은 투박한 검정 무늬 우산을 투덜거리지 않고 쓰고 유치원 버스 정류장까지 갔습니다.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하나, 둘...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들이 나옵니다.

멀리서도 눈에 확~~띄는 핑크색 바탕에 레이스가 달린 우산을 쓴 여자친구들이 나옵니다.

딸이 좋아하는 공주 그림이 그려진 우산을 쓴 친구가 두 명 있었

귀여운 키티에 또 딸이 좋아하는 하트 무늬가 가득 그려진 우산을 쓴 친구도 있습니다.

 

사실 엄마의 눈에도 예쁜 레이스가 달린 우산을 쓴 친구들 사이에

흰색 바탕의 검정 강아지가 그려진 투박한 딸의 우산...조금 초라해 보이긴 했습니다.

물론...엄마의 취향에는 깔끔한 우산이 더 좋긴 합니다만 공주님들 시각이 어디 엄마 같겠습니까...

그걸 알기에 왠지 마음이 씁쓸해지던 참이었습니다.

 

"엄마...나 힘들다...우산 안쓸래..."

"응?? 우산 안 쓸거야? 힘들어?? 그래 엄마 우산 같이 쓰자..."

딸은 우산을 접고 엄마의 우산속으로 들어옵니다.

 

"엄마...나 우산 안 가져갈래..."

평소 유치원까지 우산을 가져가겠다고 떼쓰는 딸내미가

오늘은 스스로 우산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강아지 우산에 달린 호루라기 보면 신기해 할텐데..."

부러 명랑하게 딸이 가지고 있는 우산의 호루라기를 흔들어 보입니다.

엄마를 보면서 싫다고 고개를 젓는 딸의 눈에 눈물이 가득합니다.

"우리딸 괜찮아??"

생각지 못한 딸의 눈물에

갑자기 울컥 올라오는 목구멍에 힘을 주어 겨우 한 마디 물었습니다.

"응?? 나 괜찮아..."

고개를 끄덕이는 딸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톡 떨어집니다.

쓱...훔치고는, 웃으면서 딸은 손을 흔들고 유치원 버스를 탔습니다.

 

 

 

 

어린시절...직장생활로 바쁘신 엄마...참으로 세세한것을 많이 놓치시는 분이었습니다.

집안에 성한 우산이 하나도 없는데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우산을 쓰고 나갔습니다.

집을 나서자마자...휙 바람이 불었고 가뜩이나 망가진 우산은 더 형편없이 망가졌습니다.

그자리에서 우산을 접고 비를 맞고 학교에 갔습니다.

"왜?? 우산 안써??"

"응...그냥 비 맞고 싶어서..."

제손의 우산은 접혀있었기에 망가졌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은

그렇구나 생각하고 말았겠죠.

젖은 옷은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어도 채마르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젖은 옷의 불편함은 망가진 우산을 썼을때의 창피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기억력이 좋은편인가요? ^^;;

20년도 넘은 어린시절의 일이 이리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ㅋㅋ

 

물론...딸의 우산은 멀쩡했습니다.

비만 안 맞으면 되었지 풍족한 시대에 살아서 물건 아까운줄 모른다 생각하시는 분들 있으시겠지만...

말 그대로... 아이들은 제가 자라던 때와 또다른 세대잖아요.

 

화려한 친구들 사이에서 문득 초라함을 느꼈을 딸이 안쓰러운 마음??

이건 그냥 표면적인 부분이구요...

 

정말 중요한 건...우리딸은 이제 겨우 5살 이라는 것이죠.

5살밖에 안된 딸이 초라함을 느끼고 투박한 우산을 접는 심정도 왠지 마음이 쓰린데

울면서 안쓰겠다 떼쓰지 않는 딸의 행동이 가슴이 아픕니다.

눈물을 글썽~ 하면서도 억지로 웃으며 손을 흔들고 가는 딸의 철든 행동이 말이죠.

겨우 5살짜리 아이가 자기도 기분이 몹시 안 좋은 상황에서 엄마의 마음까지 생각해가며

억지로 참는 모습에...대견함보다 안쓰럽고 슬픈 마음이 더 컸습니다.

 

 

혼자였음 아직도 응석만 부릴 저 쬐끄만한 5살 꼬마 아이를

내가...애어른으로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납니다.

자꾸만 눈물 맺힌 눈으로, 웃으며 손 흔들고 차에 올라타는 딸이 아른거려서...

 

비가 잠시 소강상태네요.

오늘부터 내일까지 비가 또 많이 온다는데...

서둘러 시장에 가야겠습니다.

가장 화려하고 예쁜 핑크빛 우산을 사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