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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이웃이 봉이냐? 불편한 이웃




처음에는 낯가림이 조금 있는 편이지만 막상 친해지면 오지랍 넓은 푼수떼기 변하는 하랑맘.
때문인지 자꾸만 의도하지 않은 구설수에 휘말리거나 잘 해주고도 마지막에는 욕먹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답니다.

결혼 후 신랑따라 아는 사람 하나없는 의정부로 이사 와서 산지 언 3년.
아이를 낳고도 그노무 낯가림은 사라지지 않아 친하게 지내는 이웃하나 없이 아이가 돌이 지나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며 또래 친구들에게 한참 관심을 갖을 월령이 되도록 변변한 친구 하나 만들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놀이터에서 알게 된 한 아기 엄마.
하랑이보다 5개월 빠른 여자 아이와 7살 짜리 언니 두 딸을 둔 아기 엄마였죠.
우리 아파트 같은 라인의 4층에 산다는 그 이웃.
붙임성 없는 하랑맘에게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며 말을 붙여주는 그 엄마가 고마워서 놀이터에서 만날 때마다 인사치례로 "언제 한 번 차 한잔 해요." 라는 말만 하다가 드디어 하랑이를 데리고 방문을 하던 날.
여름 장마가 시작되던 날이라 따뜻한 커피와 맛있는 쿠키를 먹으며 '비가 많이 온다, 화초를 참 잘 키웠다....'등등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간만에 친구를 만나 신나게 놀고 있는 하랑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때 같은 라인에 산다는 또 한 이웃이 방문을 했습니다.

그 이웃도 큰 아이는 초등학생 작은 아이는 38개월 정도 된 두 아들의 엄마였죠.
지금까지 직장에 다니다가 요즘에 잠시 육아휴직을 하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두 아들을 둔 그 이웃이 한 번 안면을 트고 나니 엘리베이터에서도 놀이터에서도, 길에서도....참 자주 만나지더라구요.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목요일에 문화센터를 끊었는데 작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걱정이라고 하시더군요.
생각해보니 그 애기 엄마가 장기적으로 아이를 맡길만한 곳을 찾기 전에 한 두번 그 아이를 봐 주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배우고 싶은 것 많고 하고 싶은 것 많고 아이 낳기 전까지 직장 생활을 했던 터라 갑자기 집에 있게 된 그 직장맘의 조금은 답답하고 뭐라도 하고 싶은 심정을 조금은 알겠기에 괜한 오지랍을 펼친 것이 화근이 될 줄은...

"저...00이 당장 맡기실 곳이 없으시면 저희 집에 일단 두고 가세요. 아이가 낯가리고 힘들어 하지 않는 다면요..."
"아이고...그러면 너무 좋지...고마워요...내일 전화 할게요."

이렇게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그 아이를 봐 주게 되었습니다.
처음 제 의도는 아이를 맡길 믿을만한 곳을 찾을 때까지 한 두 주 봐주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아이 엄마는 다른 곳을 찾는 기색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제 상식으로는 아이를 이웃에 맡겨 놓고 볼 일을 보고 온다면 그 일을 빨리 끝내고 아이를 찾아가는 것이 이웃에 대한 예의이고 아무리 잘 봐주어도 그렇게 자주 만나지 못하는 이웃이기에 아이도 낯 가림이 있고 눈치도 볼 것도 같기에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후다닥 달려 올텐데 그 분은 생각이 다르셨나봅니다.
10시 부터 12시 정도까지 봐주기로 한 시간을 훌쩍 넘어 1시는 예사요 1시 30분 에나 본인 집 청소 다 하고 샤워까지 한 젖은 머리로 아이를 데리러 오기 일쑤요 가끔은 장까지 봐 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정작 저희집은 두 아이가 어질러 놓은 상태로 엉망진창이고 전 아이들 보느라 머리조차 못 감고 있었고 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아 집앞 슈퍼도 못 가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가끔 목요일에 일이 생겨 아이를 못 봐주게라도 되는 날에는 불편한 기색까지 보이기도 하고 저 또한 공연히 미안하고 찝찝한 마음이 들어가며 문화센터 등록기간인 3개월이 흘렀습니다.


'그래, 지난 분기야 뭐 등록해놓은 문화센터 였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맡길 곳 못 찾았으면 이 번 분기는 등록 안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왠걸요. 다시 목요일 반 재등록하고 이번에는 월요일까지 등록을 했다고 하더군요.
목요일은 우리집이고 월요일은 어떻게 하나 궁금했는데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4층 아이 엄마를 만나고서는 그 궁금증이 해결 되었습니다. 월요일은 바로 그 아이 엄마를 처음 만난 4층 집에 맡긴다는 것 이었습니다.
요즘은 도를 넘어서서 큰 아이 학교에 청소하러 가야 하는데...라며 맡기고, 모임 있는데 라며 맡기려 하고...
들어보면 충분히 아이를 데리고 갈 수도 있는 장소라고 생각이 드는데 '괜히 데려가면 정신없어서...'라는 말을 합니다.
이쯤되면 그 이웃이 정말 얄미워집니다. 누구는 배우고 싶은 것이 없어서 안 배우러 다니나요? 누구는 모임에 홀가분하게 나가고 싶지 않나요?
다만 그렇게 정기적으로 맡길 곳도 마땅치 않고 이웃이라도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 아이를 맡기는 것도 꺼림직하고 하다 못해 친 언니라도 매 주마다 본인 스케줄 조정해가면서 동생의 아이를 봐 준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일주일에 두 번이나 정기적으로 아이를 맡겨야 한다면 상식적으로 시간제 놀이방이라도 알아보아야 하는것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와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고 4층 아이 엄마도 저와 크게 다르지 않게 몇 번 왕래가 있었던 정도로 큰 친분을 과시 하는 사이도 아닌데 잘 모르는 이웃 보다는 조금 더 믿을 만한 곳을 찾는 것이 아이에게도 좋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실 4층 아이 엄마와도 한 번 차 마신 정도일뿐 따로 만나거나 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어서 서로의 고충을 이해는 하지만 괜히 남 뒷담화 하는 것 같아서 가끔 마주쳐도 간단한 인사 정도만 하고 눈치만 봤었죠.



그러던 지난 일요일 4층 아이 엄마에게 문자가 왔더군요.
'하랑엄마, 즐거운 주말 보내고 계세요? 전 내일 하루종일 00이 봐야 할 것 같아요. 00엄마 친정 아버지가 아프시다네요.큰 아이 유치원에 신종플루가 돌아서 아이들 둘 다 집에 있고 중간에 큰 아이 학원도 데려다 주고 데려다 주고 데려와야 하는데 00까지 셋 데리고 아침 일찍 부터 밤까지 봐줘야 한다니 걱정이네요. 날씨도 갑자기 추워진다는데...'

참...납득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요. 백번 양보해 두 세시간 정도 아이 봐주는 거 내 남는 시간에 봐준다면 그럴 수 있다고 칩니다. 하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봐 달라는 부탁을 하려면 주변 친지에게 부탁함이 맞지 않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시댁도 한 정류장 거리에 있고 큰집도 의정부 내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요.

'큰 아이가 플루때문에 유치원 쉬는데 학원도 데리고 다녀야 하고 추운 날씨에 좀 무리일 것 같다라는 이야기 해 보셨어요?' 이런 제 답장에 문자로는 답답했는지 전화 벨이 울립니다.

"하랑 엄마, 제가 좀 답답해서요. 통화 가능하세요?"
"네...말씀하세요. 상황 이야기 해 보시지 그러세요."

4층 아이엄마의 요점은 처음에 교회가는 시간이라 대답을 제대로 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게 받았다가 나중에 생각해보니 안 되겠어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고 하더라구요.

"00엄마, 큰 아이 유치원에 신종플루 확진 받은 아이가 나와서 꺼림직 해서 큰 아이도 유치원 쉬게 되었어요.
물론 우리 아이가 걸린 건 아니지만 혹시 찜찜하실 수도 있어서 미리 말씀드려요."

"그래? 그럼 좀 그렇지. 그러면 내가 신랑이랑 시댁 식구들이랑 상의해 보고 다시 전화 해줄게."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 "00야, 신랑이랑 상의했는데 큰 아이가 플루에 걸린 것도 아니고 맡겨도 된다고 그러네."

"......"

아이를 맡아주는 건 4층 아이 엄마인데 그걸 왜 자기들끼리 허락하고 허락받고 하는지...

또 사돈 어른이 중대한 수술을 받으신다는데 시댁 식구들 전에 들었을때 일하시는 것도 아니던데 손주 한 번을 못 봐주시는지 귀한 손주를 두 세 시간도 아니고  아침 일찍부터 밤 중까지 얼굴도 모르는 남의 집에 맡기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지...
그 아빠도 남의 집에 민폐라는 생각은 전혀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는 자체도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우리 신랑은 처음에 제가 거절했을때 끝난 이야기인줄 아는데 또 다시 전화 와서 이런식으로 이야기 했다는 거 알면 또 저한테 똑부러지게 못한다고 화 낼거구 내일 울 신랑 퇴근했을 때까지도 찾아갈지 말지라는데 집에 와서 그 아이 하루종일 봐 준거 알면 그 집에 쫓아가서 따지기라도 할 것 같아요. 하루종일 애 셋 데리고 있을 것도 막막하고, 내일이 바쁜 날이기도 한데 말이에요."

"그럼 사정이 그런데 다시 전화해서 못 봐주겠다고 하세요. 봐주실 상황은 못 되시는 것 같은데요."

"그래야겠죠? 아무래도 다시 문자를 보내야겠어요. 정말 속상해요. 저도 나름대로 한다고 했고 아이 봐줄만큼 봐줬는데 자꾸 아무렇지도 않게 이러시니 저도 난감하고 또 거절하게 되면 괜시리 미안해지고..."

한참을 하소연 하던 4층 아이 엄마는 문자를 보낸다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설마 나한테 애 봐달라고는 안하겠지? 친척들도 있고 친정 아버지가 입원하신 곳도 친정 근처라니 하다 못해 언니한테라도 맡기겠지.'라는 생각으로 설마 설마 했습니다.

하랑이와 한참을 놀다가 전화기를 보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더군요. 한참전에 온 전화인데 진동으로 되어있어 몰랐나봐요.
'00맘'
엥? 00엄마한테 전화 왔었네. 라는 생각을 하는데 다시 전화가 부르르 떨립니다.
'00맘'
받을까 말까 순간 망설이다가 다른 급한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받았습니다.

"하랑아, 바쁘니?"
"아니요, 안 바빠요, 주말에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다른게 아니라 내일 시간 있어?"
설마 했는데 저에게 아이를 봐 달라고 부탁하는 전화 였습니다. 순간 기분이 확 상하더라구요.
"아니요, 저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요. "
"친정 아버지가 입원하셔서 내가 수속도 해야 하고 왔다갔다 하는데 재혁이 데리고 다니기도 힘들 것 같고 중요한 약속이야?"
뭡니까...중요한 약속 아니면 취소하고 아이라도 봐달라는 소리입니까?
"네...한참 전부터 약속 한 일이라 취소하기가 좀 그렇네요."
"그래...할 수 없지 뭐....알았어."
전화를 끊는데 자꾸만 기분이 찜찜합니다.
그 분 입장에서는 친정 아버지가 아프시다는데 이웃들이 너무 야멸차게 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것도 같습니다.


물론 급한 일이고 다른 일도 아니고 부모님이 아프시다는데 이웃에 살면서 그정도는 도와 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종일 봐 줘야 하는 일이라면 친지들에게 먼저 알아보고 정말정말 봐 줄 사람이 없어서 부탁을 했을 때 일이 아닐까요? 그동안에 그 분이 해왔던 일들도 있고 저 나름 쌓인 감정도 있고 하니 쉽사리 해주겠다는 말이 나오질 않더군요.
그래 놓고 지금까지도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인가? 내가 너무 못 되게 굴었나?'내내 마음 한 구석이 안 좋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이를 맡기는 문제 말고도 당황스런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봐주는 목요일 전날인 수요일날 전화 안 받으면 목요일날 7시 밖에 안 되었는데 전화 하는 날도 있습니다.
아침 8시도 안 되었는데 큰 아이 숙제를 급하게 프린트를 해야한다며 프린트 좀 써도 되냐는 전화로 잠자는 하랑이를 깨우기도 하고, 간장, 소금, 설탕등의 양념을 빌려 달라는 부탁들도 자주 하고, 밤 10시 가까이가 다 된 시간에 갑작스럽게 의사놀이 장난감이 큰 아이 준비물이라며 있으면 전화를 하기도 합니다.
(사실 아기 키우는 입장에서 아기의 잠을 깨우는 불청객이 있다면 심히 불쾌하고 신경쓰이는 일 입니다.)
우리집에서 놀던 그 집 아이가 하랑이 장난감을 가지고 간다고 떼를 쓰면 "하랑이한테 빌려 달라고 말해봐." 라고 말을 합니다. 하랑이는 자기꺼라고 울고불고 하지만 또 그렇게 말하는데 차마 안 빌려 줄 수도 없습니다.
책장에 꼽혀있는 책들을 보며 "재밌겠다. 하랑아 나 이거 빌려 보면 안돼?"
차마 안 빌려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석 달 전에 빌려간 책을 아직도 돌려 받지 못했네요.
공연히 달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래서 그 책이 꼽혀있던 허전한 책장 구석만 바라봅니다.
차라리 친한 친구면 장난스레 "야...너때문에 하랑이 깼잖아." 라는 말이나 "책 다 봤으면 줘야지." 등등 스스럼 없이 말할텐데 친한 사이가 아니기에 말도 못하겠습니다.

좋게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일들이긴 하지만 감정이 안 좋아지다 보니 모든게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차라리 멀리 있는 친척이라면 자주 안 만나면 그만이지만 위 아래층 살면서 수시로 마주치는데 행여나 상대가 섭섭하게 느껴서 공연히 어색해질까봐 함부로도 못하겠구요.
당장에 지난 일요일의 일이 마음에 걸려 혹시라도 마주치면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
목요일에 또 아이 봐달라는 연락이 오면 정기적으로 맡길 곳을 잘 찾아보시라고 권해주고 싶어도 막상 입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피하기도 눈치 보이고...마음은 계속 무겁고 불편하고...

문득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매 번 거짓말을 하다 보니 정작 급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때는 이웃들이 등을 돌리지요. 그 분이 이웃들에게 거짓말 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본인만 편하려고 하다 보니 정작 필요할 때 이웃들이 그 분에거 선뜻 도움의 손길을 보낼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요?


안 보겠다고 안 볼 수 있는 사이도 아닌 지척에 사는 가까운 이웃일수록 더 배려 하고 적당한 예의는 지켜야 할텐데...
이럴 땐 "멀리 있는 친척이 가까이 사는 이웃 사촌보다 낫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