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공지영
 펴낸곳: 창비
 펴낸날: 2009년 6월 30일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 묘사된 이미 해가 뜬 오전임에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좌욱한 무진시, 철길 위로 위태롭게 올라오는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12살짜리 소년, 무진시 한 복판에 서있는 오전 열시 주일예배를 드리는 영광제일교회에서는 파이프오르간에 맞추어 부르는 성가대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때 덜컹거리며 달려오는 기차에 소년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진다.

여기까지가 도가니의 첫 3페이지 내용이다. 처음엔 그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길래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공지영의 기존 작품들과 명성만 믿고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넷 주문하고  가벼운 기분으로 펼쳤는데 그 가벼운 기분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아 이 책이 그저 가볍게 보는 연애소설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저 잠깐잠깐 남는 시간에 읽어려 했었는데 책을 펼친순간 밤을 새어가며 단숨에 읽어버렸다.

사업이 실패하고 6개월간 실직상태에 있던 강인호는 아내의 주선으로 남쪽 도시 무진시에 있는 청각장애인학교 ‘자애학원’의 기간제교사 자리를 얻어 내려가게 된다. 한때 민주화운동의 메카였던 이 도시는 ‘무진’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늘 지독한 안개에 뒤덮이는 곳이다. 첫날부터 마주친 짙은 안개 속에서, 그리고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교사들이 다수인 무섭도록 고요한 학교 분위기에서 그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한 청각장애아(전영수)가 기차에 치여죽는 사고가 나도 이를 쉬쉬하는 교장, 행정실장, 교사들, 그리고 무진경찰서 형사 사이에서 강인호는 모종의 거래가 오고가고 있다는 것을 그 어떤 힘에 의해서 모두들 알면서도 암묵적인 합의하에 철저하게 지쳐지는 비밀이 있다는걸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출근 첫날부터 우연히 듣게 된 여자화장실의 비명소리를 신호탄으로 강인호는 점차 거대한 폭력의 실체를 알아가게 된다.

대부분이 청각장애에 지적장애까지 가진 이 시설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폭행, 학대, 그리고 성폭력...그리고 그 학대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한 아이들...(실상 그 아이들은 자살이 뭔지도 모르는 지적 장애아였다) 이 모든 일을 벌인사람은 다름 아닌 무진시에서도 크나큰 권력을 가진 학교장과 그의 쌍둥이 형제 행정실장,그리고 기숙사에서 아이들의 생활지도를 하는 박보현이다.

처음 그들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한 강인호와 그의 대학 선배인 무진 인권운동 쎈터 상근 간사로 근무하는 서유진. 그 어려운 시작을 보고 중반으로 넘어갈때 까지만해도 이 소설이 해피앤딩이겠거니...정의가 승리하겠거니 당연히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건 픽션이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 소설이기에 정의따위가 승리하는 일은 없었다.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된 것은 어느 신문기사 한줄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지막 선거공판이 있던 날의 법정 풍경을 그린 젋은 인턴기자의 스케치기사였다.

그 마지막 구절은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찼다" 였던것 같다.

그 순간 나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비명소리를 들은 듯 했고 가시에 찔린 듯 아파오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준비해오던 다른 소설을 더 써나갈 수가 없었다. 그 한줄의 글이 내 생의 1년, 혹은 그 이상을 그때 이미 점령했던 것이다.

 

작가의 말에 나온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결국 법과 정의는 힘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의 것이지 가난하고 힘없는 소시민의 것은 아니었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잠든 딸 아이의 얼굴을 보고 다리를 쓰다듬으며 이땅의 현실에 분노하고 가슴아파했다.

내 자식의 인권이 그렇게 유린되고 학대를 받고 성폭력에 시달린다면...소설속 유리의 할머니는 그 사실에 분노하고 분개하면서도 결국은 돈 앞에 무릎꿇고 고소를 취소한다는 합의서에 서명을 한다. 민수의 부모님은 학대와 성폭행에 시달리던 둘째 아들 영수를 잃었다는 사실도 잘 인지하지못하는 중증 지적장애이고 삼촌이 대신 합의서에 서명을 한다. 정작 다치고 상처받은 이는 아이들인데 그들의 의견과 생각은 반영되지 않는것이 현실이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배라고 한다. 가진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빼갓기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을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의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다.

 

분명 가진것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라 했던가...

그러나 가진것을 빼앗기지 않은 소수의 가진 자들에게 계란으로 바위치기인줄 알면서도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앞장서는 용기를 가진  서유진 강인호같은 인물들은 분명 우리 주변에 있고 또 그들처럼 용기있게 나서지는 못하지만 그들을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측은지심을 갖을 줄 아는 대다수의 소시민들이 있기에 세상살이가 그렇게까지 팍팍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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