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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누나가 준 수능 초콜릿 한 시간만에 니 여친 주니?


ⓒ : flickr

앞의 글에서 언급한 바 있는 고모집의 방문.

제 주변에 수능을 볼 수험생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모의 둘째 아들, 그러니 제 사촌동생이 바로 오늘 수능을 보더라구요.
미처 몰랐던 저는 부랴부랴 제과점에 가서 합격 기원 선물을 마련했지요.
수능 전날이라 대부분의 물건들은 다 빠져나갔고 가격을 떠나서 크게 고를 만큼 많은 상품들이 준비되어 있지는 않더군요.


고모는 아들의 합격 기원 엿을 사고 전 예전에 즐겨먹던 길X언 초컬릿을 준비했지요.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는지 몇 년전에 비해 가격이 많이 올랐더군요.
어쨌든 큰 초코렛 상자와 작은 상자 중에서 고민하다가 '그래, 누나가 되어가지고 기왕 사주는거 좀 더 쓰고 큰거 사줘야지.' 라는 생각으로 배로 더 비싸고 큰 초코렛을 골랐지요.

고모집으로 돌아가 보니 수능 예비소집에 갔던 사촌 동생이 돌아와 있습니다.
"ㅇㅇ야, 시험 잘 봐라. 너무 긴장하지 말고..."
"어...누나도 주는거야? 완전 고마워..."
제 선물에 생각보다 훨씬 반색하며 좋아하는 사촌 동생을 보니 저도 괜시리 뿌듯한 마음마저 들었지요.
그런데 고모가 준 엿 셋트는 그 자리에서 뜯어 먹은 사촌동생이 제가 준 초코렛은 포장도 뜯지 않고 만지작 거리고만 있네요.

고모와 중요한 시험을 앞둔 사촌동생을 위한 보신용 닭계장에 넣을 닭을 손질하고 있는데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던 사촌 동생이 쭈뼛쭈뼛 다가옵니다.
"엄마, 저 잠깐 학교 가야겠어요. 학교에 영어책을 두고 온 거 있죠?"
엥?? 자식...핑계도 그럴 듯 한걸 대야지...수능 전날 저녁에 학교에 영어책을 두고 왔다고 굳이 가야 한다니...
참 눈에 뻔히 보이는 핑계이지만 고모와 전 그냥 속아 주었지요.
"그래...조심히 갔다오구 빨리 들어와서 쉬어야지."

급하게 밖으로 나가는 사촌동생의 가방의 열린 틈으로 포장이 곱게 된 제 초코렛 상자가 보입니다.
친구들과 나눠 먹으려고 그러나?
그냥 심상치 않게 넘어갔으나 약 1시간 가량을 외출했다 돌아온 사촌동생이 샤워를 하는데
동생의 핸드폰이 띠리링 울립니다.

'ㅇㅇ야, 초코렛 정말 고마워...잘 먹고 시험 잘 볼게...너도 시험 잘 봐...'
참...타이밍 절묘하게 마침 동생의 핸드폰이 제 앞에 있었고 전 주책맞게 그 문자를 보게 되었지요.

요...녀석...누나가 준 초코렛을 보니 자기 여친이 생각이 났다 봅니다.
그래도 그렇지...누나가 준지 1시간 만에 쏠랑 나가서 주고 오니...
섭섭한 마음보다는 깜찍한 사촌동생의 행동에 피식~웃음이 납니다.
물론 모르는척 "ㅇㅇ야, 방금 문자왔는데 하랑이가 버튼을 눌렀네, 확인해봐." 해주었구요
당연히 고모에게도 말하지도 않았지요.
이로써 아무도 모르는 저만의 재미있는 비밀만 하나 생긴거지요. ^^
그냥 전 동생의 합격을 기원해줬고 동생은 그 마음만 받고 또 다른 누군가의 선전을 기원해 준 것이죠.

당돌한 녀석~그래...그렇게 긴장하지 말고 시험 잘 봐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