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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자궁암에 걸린 엄마의 투병을 지켜보던 딸의 심정

오늘 둘째를 낳고 처음으로 자궁 경부암 검사를 받았습니다.
아이들 키우고 살림에 치이다 보니 언제나 제 건강은 뒷전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궁암 검사는 빼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유는...저희 친정 어머님때문입니다.
제 친정 어머니는 제 나이때 이미 자궁 적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이미 20대 중반에 세 아이의 엄마가 되신 친정 어머니.
빠듯한 살림에 먹고 살기 바쁘셨던 어머니가 어찌 본인의 건강을 챙기셨겠어요.
다 그러려니...이러다 말겠거니...
버티고 버티다 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으셨을때는 이미 자궁암 말기셨습니다.

그때 친정 엄마의 나이는 겨우 지금의 제 나이 정도 셨고 전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깐 10살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엄마는 저희를 붙들고 울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엄마가...아파서...한참 못 볼지도 몰라...그러니깐 아빠 말씀 잘 듣고 있어야 해..."
"넌 제일 큰 언니니깐...항상 엄마 대신이야. 만약에 엄마가 못 오더라도 항상 동생 잘 챙기고..."
말씀을 못 이으시고 울으시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뭣도 모르고 저희도 따라 엉엉 울기는 했습니다만...
아직 죽음. 혹은 아픔이라는 것에 대한 큰 의미를 알지 못할 때여서...그냥 그렇게 울다 곧 잠이 들었고...
몇 주간 입원하신 엄마를 기다렸던 것만 생각이 납니다.

한달 쯤 후...엄마가 왔습니다.
그렇게 기달리던 엄마는 많이 아파 집에서도 계속 누워만 계셨습니다.
홀쭉하고 날씬하던 엄마의 아랫배가 빵빵하게 부어 있었습니다.
또 얼마나 그렇게 누워 계셨던가요.
아마도 큰 수술 후 회복 기간이셨던 게지요.
그냥 어린 아이였던 저는 그런 건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기다리던 엄마가 오셨는데 여전히 놀아주지도 않고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하는
엄마와 어른들에 대한 원망만 쌓여갔습니다.

어느 날...항상 누워만 계시던 엄마가 대문 앞에 서 계셨습니다.
학교를 다녀오던 중...
파란 스웨터에 검정 벨벳 월남 치마를 입고
이웃 아주머니와 서서 이야기를 나누시는 엄마를 보는 순간....

어찌나 반갑던지....저도 모르게 달려가 엄마를 와락 안았습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으신 엄마는 깜짝 놀라시며 본능적으로 저를 밀쳐 내셨고
저는 그동안의 엄마를 못 보았던 서러움, 퇴원 후 우리를 돌보아 주시지 않은 엄마에 대한 원망...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고 밀쳐내는 엄마에 대한 섭섭함이 북받쳐 그 자리에서 목놓아 울었습니다.
아직 회복되지 않으신 몸에 대한 방어본능으로 밀쳐 내셨지만 엄마는 오죽 가슴이 아프셨겠습니까...
엄마 역시 그자리에서 저를 안고 엉엉~울으시더군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자궁적출 수술의 의미를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목숨을 걸고 수술을 하러 가시던 그 날 밤...
당신 보다도 혹시라도 자신이 잘못 되었을때 어린 자식들의 앞날을 더 걱정하셨던 엄마의 마음을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여자에게 30대 초중반의 나이는 여성으로써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도 있는 어린 나이임을요.

제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습니다.


엄마는 제 나이에 목숨을 건 큰 수술을 하셨고
목숨을 건진 댓가로 여성의 상징과도 같은 자궁을 다 긁어 내셔야 했던것을...
그 의미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조금만 무리를 해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아랫배와
찾아오는 통증과 재발의 공포와 싸워야 하면서도 오직 자식에 대한 걱정때문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서 꼭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엄마의 심정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힘드신데 저는 그런 엄마를 보며 원망만 가득했습니다.
남들 엄마들처럼 번쩍 안아주지도 못하고,
항상 피곤해 하고, 누워만 있었던 엄마...
운동회 날 다른 엄마들처럼 힘찬 달리기 한 번 못하는 엄마가 미웠습니다.

여성에게 자궁과 난소들을 다 들어낸다는 것이
신체적인 아픔만큼이나 정신적인 아픔이 더 컸을 수도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요.


제 아이들에게는 이런 제 어린시절의 아픔을 남겨주고 싶지 않습니다.
힘이 닿는데 까지 안아주고 할 수 있는 한 항상 곁에 있어 주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많이 아팠고 섭섭했고 힘들었기에 아이들에게는 그 아픔을 물려 주고 싶지 않습니다.


철이 든 지금...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누구나 그렇듯이 암은 남의 이야기셨답니다.
정말 특별한 사람만 걸리는 건 줄 알았답니다.
하지만 본인이 걸려 보니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고...
조금 오래 방치하면 그게 곧 중기가 되고 말기가 된다구요....
본인은 운이 좋아 자궁만을 드러내고 살았지만....
누군가는 그 병으로 인하여 죽었다구요....
때문에...너도 꼭 미리 검진 받고 병 키우지 말라고...신신당부 하십니다.

물론 지금 저희 친정 어머니는 완치 되셨습니다.
많이 어렸기에 꽤 길었던 그 투병기간이 전부 기억 나는 것은 아니지만...
띄엄띄엄 생각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속에는 그 시절의 아픔과 섭섭함이 뚜렸하게 뭍어 납니다.
엄마가 건강해야 하는 이유는...본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있지만...가족들의 행복과도 직결됩니다.
건강은 몸과 마음 모두가 해당 되는 것이겠지요.

하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부터도 가족 챙기느라 항상 제가 밀리긴 하지만 말입니다.

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여성암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갑자기 제 어린시절이 떠올라서...
오늘은 좀 감상적이 되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