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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피곤에 찌든 부부의 싸움을 해결한 진실된 문자 한통


10월부터 남편은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 6시 30분에 집에서 나가 학원에서 수업을 받고 오면 밤 11시가 넘습니다. 월,수,금...일주일에 세 번...학원을 갑니다.말이 세 번이지 주 중 회식이라도 있거나 회사에서 야근이라도 있고 하면...평일에는 거의 저도 남편의 얼굴을 보기 힘이 들지요. 말 그대로 집에서는 눈만 잠시 붙이고 가는 진정한 하숙생 입니다.

평일에는 아빠가 거의 부재중이니 양육은 전적으로 엄마의 몫 입니다. 덕분에 항상 바쁘고 정신 없지만 어제는 유난히도 바빴습니다. 하루종일 아들과 씨름하면서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하고, 시장을 보아야 했고, 감기 기운이 있는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 왔습니다. 보건소에 데려가 예방 접종도 했습니다. 어느새 오전 시간이 다 갔고 어린이집에 다녀 온 딸을 데리고 브레인 스쿨에 갔습니다. 딸이 수업 받는 동안 내내 쓰레기통 뒤지고, 다른 교실들 다 뒤집고 다니는 아들을 잡으러 다니다 보니 1시간 만에 녹초가 될 지경이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행사를 한다기에 그 행사 준비물을 사러도 가야 했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이리저리 물어물어 다니며 준비물을 챙기고 나니 어느새 8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아이들 목욕 시키고 9시에 잠자리에 눕혔는데 하루종일 바쁜 엄마를 따라다미며 너무 피곤했는지 11시가 다 되었는데도 아들은 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몹시 피곤한데...잠이 안와 징징 거리는 아들 때문에 또 다시 진이 빠지려고 합니다.

그러던 찰라...낮에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안 되었던 친구가 뒤늦게 부재중 전화를 발견하고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그렇게 전화 통화를 하는데 남편이 들어왔습니다. 평소에는 남편이 퇴근하면 인사하고 출출한지 여부를 살펴 간단한 먹거리라도 챙겨 주는데...어제는 뭐 그리 중요한 전화를 한다고 퇴근하는 남편을 맞이하러 나가 보지도 않고 남편의 뭔가 묻는데 미처 못 알아들어 대꾸도 못 했습니다.

샤워를 하고 나온 남편이 여전히 징징 거리며 다니는 아들에게 버럭~ 합니다. 그리고는 굳은 표정으로 등을 돌리고 자더군요.

처음 남편이 아들에게 버럭 했을땐 이유를 떠나서 갑자기 화가 나더군요. "왜 애한테 그래? 누군 안 힘든 줄 알아? 나도 피곤하고 힘들었다고...애가 잠도 안자고 징징 대서 더 힘든 건 나거든..." 따지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입밖에 내지 못 했던건...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지요. 남편이 왜 버럭했는지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버럭의 대상이 아들이 아닌 무신경하고 무관심한 아내를 향한 것입을 알기 때문이지요.

남편들이 가장 기운이 빠질때의 1위가 퇴근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 왔는데 가족들이 무관심과 무신경으로 맞이 할때라고 하더군요. 어떤 기분일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면서도 제가 그렇게 한 것이지요. 주 중반... 쌓인 피로에 더욱 예민해졌으니 평소보다 과민반응이 나오는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침부터 고민이 됩니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전화를 걸까...문자를 보낼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딴 소리를 할까??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사과를 하기로 했습니다. 문구를 써 놓고 한참을 망설여 집니다. 보냈는데 답장이 없거나 보면 마음 상할 답장이 돌아오면 어쩌지??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도 한참 심난합니다. 괜히 보냈나? 싶기도 합니다.


잠시 후...남편에게 답장이 왔습니다. 아들에게 화를 낸 것에 대한 반성과 어제의 기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짐작대로 저의 무신경과 무관심이 남편의 예민해진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갑자기 더욱 미안해집니다. 내가 힘들고 피곤한 하루를 보냈던 것처럼...남편도 밖에서 긴장되고 바쁜 하루를 보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남편 또한 하루종일 육아와 살림에 시달렸을 아내의 애로 사항을 모를만큼 무신경한 사람도 아닙니다. 이렇게 서로 힘들고 피곤했던 만큼 가족들의 웃는 낯과 격려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참 그것을 표현하고 순간의 무신경으로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어제 그리 화를 내고 나서 남편도 아침 내내 찜찜 했을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무신경한 아내에게 내심 많이 섭섭한 마음 또한 풀리질 않았을 것 입니다. 하지만 간단하게나마 줄줄이 쏟아 놓은 남편의 심경이 담긴 답장을 보니 남편의 마음이 풀린 것이 느껴집니다.

시 무신경하게 남편을 섭섭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빨리 남편의 심경을 헤아려 솔직한 사과 문자를 보낸 일 정말 잘 한 것 같습니다. 안 그랬으면 하루종일 신경 쓰이고 마음이 무거웠겠지요. 모르긴 몰라도 남편의 하루도 어딘가 찜찜 했을 것이구요. 의미없는 신경전과 짜증으로 하루를 소비할 상황이이었을 것입니다.

크고 작은 다툼이 많을때마다 저희 부부가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은..."지금이 우리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기일 것 이다' 입니다. 지금만 잘 넘기자고...서로 핡퀴고 힘들어 하지 말자고...왠만하면 이해하자고...이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존재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위로를 반복합니다.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일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더 큰 고민에 휩싸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지금만 버티자...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네요. 둘다 소심해서 먼저 잘못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직접 미안하다고 말도 못하고 문자로 "이런이런점 미안했 다.." 라고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진심을 알기에 오늘도 기꺼이 화해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