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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수업중 들이닥친 경찰에 끌려 간 선생님, 이유는?

저는 첫째를 낳은 후 바로 일을 그만 두었지만 후배는 아이를 낳고 얼마 후 복직을 하여 여전히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얼마 전 이사를 가게 되고 육아에도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여 지난 11월을 마지막으로 일을 그만 두기로 하였지요. 정들었던 일터와 아이들...이제 그만두면 언제 복직하게 될지도 미지수였기에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더 열심히 수업을 하고 있었다 합니다.

한창 수업을 이어 나가는데 센터에 경찰 제복을 입은 남자 두명이 들이 닥쳤습니다. 경찰제복을 입은 그들의 정체는 물론 경찰이었구요. 평범한 주부이자 아이 엄마이자 유아 선생님인 후배가 수업 중에 끌려 간 혐의는...보이스피싱 사기 사건의 용의자. 

약 한 달 전쯤...후배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은행인데 카드에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몇 가지 확인이 필요하다구요. 단지 카드 계좌이체를 하는 통장 번호와 비밀 번호를 확인해 달라는 내용이었답니다. 카드 번호를 묻는 것이 아니었고 그 카드의 결제일에만 맞추어 결제대금을 입금해 두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계좌로 대부분은 비어 있는 계좌였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순순히 비밀번호까지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내가 뭐에 씌웠었지...비밀번호를 묻는데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그냥 잘 안쓰는 계좌니깐...무심결에...." 나중에 이리 말 하더군요. )

그리고 별 일이 없어 그대로 잊고 있다가 사건이 있기 전 날...쇼핑을 갔다가 2만원 약간 넘는 물품을 구입하고 이 통장의 체크 카드를 내밀었다고 합니다. 카드대금이 빠져나간 직후였기에 잔액이 아슬아슬하게 남았겠다 싶었는데...예상하는 잔액보다 10만원이 더 남아있어 잠시 의아한 생각을 하긴 했답니다. 그리 큰 금액도 아니고 계산을 잘못했었나 보다...공돈이 생긴 기분이 들어서 은근히 좋기까지 했다구요.

경찰서에 끌려가서 정황을 들어보니 후배의 계좌는 보이스 피싱 사기꾼들의 대포통장으로 이용되었다더군요. 실제로 그 통장으로 610만원이 입금 되었다가 600만원만 인출 된 기록이 있고 후배가 체크카드를 사용하게 되면서 경찰의 레이더망에 포착되게 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보이스 피싱 사기꾼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본인도 모르게 자신의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이용된 피해자였기에 무혐의로 곧 풀려났습니다.

혐의는 없었지만...일터에서의 마지막 날...아이들과의 수업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인사도 제대로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고 합니다. 갑자기 선생님이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본 아이들과 학부형들이 얼마나 놀랐을지를 생각하면 괜시리 미안해지구요. 무엇보다 본인도 얼마나 놀라고 겁이 났겠습니까....

저역시도 비슷한 일을 당할뻔 했기에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습니다. 아이들 보육료 지원을 받는 '아이사랑' 카드를 담당하게 되는 금융기관이 변경 된다고 합니다. 때문에 곧 은행을 방문하여 교체 발급을 받아야겠다..아이 데리고 은행에 가기 번거로운데...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을쯤....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거든요. 은행인데 새 카드를 전화로만 교체 발급을 해주겠다구요. 기존 카드 번호는 상관이 없고 그냥 새 카드를 이체 시킬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만 알려주면 된다더군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여 자주 사용하지 않는 계좌번호를 알려 주셨다가 나중에 시간 될 때 이체 계좌를 변경하라구요...순간 저도 혹해서 계좌번호를 부르고...비밀번호를 알려 주려다 주춤 했습니다. 아무리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은행에서 고객에게 비밀번호를 통째로 알려달라 하는 것이 미심쩍었거든요. 그저 은행에 직접 가지 않아도 해결해 준다니 그 편리함에 순간적으로 혹~할 뻔 했던 것이죠.


"아...아니에요...전 제가 직접 가서 교체 발급 받을게요..."

"아니...왜요...전화로 간단하게 받으시면 되는데...
아이들 데리고 은행을 이용하시기 위한 어머님들을 위한 특별 서비스 입니다."

"그래두요...그냥 제가 직접 가서 받는게 좋을 것 같아서요."
"카드 번호를 말해 주는 것도 아니고 통장도 잘 안 쓴다면서요. 그럼 뭐 문제가 생기겠어요...."
이쯤되니 갑자기 의심이 아닌 확신이 들더군요...뭔가 이상하다...말투도 전문 은행 상담원 같은 말투에서 그냥 아줌마의 말투로 변해 있었습니다.


아이들 키우는 엄마들이 아이들을 이끌고 은행을 찾아 카드 발급 절차를 밟고 기다리고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을 이용한 교묘한 수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순간적으로 혹~해서 잘 안쓰는 계좌이니 문제는 없겠지 싶어 무심결에 정보를 노출하는 사람들이 있을 법도 하구요. 대부분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내가 순간 뭐에 씌웠었나봐...잠깐 내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라는 말들을 하더군요. 그만큼 스스로도 이해 할 수 없을만큼 순간적이고 무심결에 당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보이스 피싱이 아닌가 싶어요. 걱정입니다. 도대체 내 정보는 세상의 어디까지 떠다니고 있을까요? '아이사랑'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명단이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어이없이 보이스피싱 사기 사건의 용의자가 되어 자신의 어린 제자들 앞에서 경찰에 끌려 가야했던 후배...그저 운이 안 좋았다...액땜 했다 생각하라는 상투적인 위로 밖에 생각이 안나더군요. 직접 금전적인 손해를 본 것은 아니지만...본의 아니게 자신의 통장이 범죄에 연류 된 사실을 알고 나니 기분이 묘하다 하더군요. 정신을 차려도 당하게 된다 하지만...그럴수록 할 수 있는 말은 더욱더 정신을 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