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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여행을 떠나요

백마역의 마지막 낭만과 추억을 지키다, 숲속의 섬

 한때는 낭만과 풍류...그리고 사랑을 찾는 이들이 많이 찾았던 백마역.

 

제가 지금 일산에 터를 잡기전부터 지명만은 익숙했던 곳입니다.

여고시절 재미나게 읽던 소설의 배경이기도 했고

감수성을 자극하던 시의 한 구절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일산 맛집이 밀집한 풍동 먹자골목??

뭐 이정도의 명칭으로 더 유명한가요?

 

 

 

 

이젠 백마역...아니 일산 풍동 먹자골목 어느곳에 가도 옛 정취는 찾을수가 없습니다.

일산 신도시에 걸맞는

화려한 네온사인, 커다랗고 세련된 새 건물에 너도나도 내 걸어 놓은 맛집 타이틀...

 

그런 풍동 초입에 있는듯 없는듯, 작은 간판을 내 걸은 '숲속의 섬'이 있었습니다.

 

 

 

 

햇살 좋은 가을볕을 쬐며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들...

이 고양이들의 낮잠 시간처럼....'숲속의 섬'의 시간도 그대로 멈춘듯 했습니다.

 

 

 

 

 

저 문 안으로 들어가면 바쁘고 복잡한 디지털 세계에서...

잠시의 일탈을 경험하게 됩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턴 테이블속에서 흘러 나오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이 가을의 추억과 낭만속으로 푹~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백년 묵은 피아노....!!!!

어떻게 알았냐구요?

저 피아노에 그렇게 쪽지가 붙어 있습니다. ㅡㅡ;;

 

아무렇게나 마구 만지고 두드리는 사람들에 대한 귀여운 경고문이요.

소중히 보아주시고 소중히 다루어 주시라는...ㅋㅋㅋ

 

 

 

 

 

"인테리어가 너무 좋아요. 직접 다 꾸미신거에요"

 

"인테리어가 어딨어요. 그런걸 누가 해준다고...그냥 집에 있는 것들 하나씩...둘씩...

가져다 놓고 걸고 가끔 선물도 받고..."

 

처음 들어서면서 느꼈던 정겨움과 가슴 뭉클한 감동의 원천을 찾은 듯 했습니다.

꾸미지 않은 세월의 흔적...!!!

 

 

 

 

 

 

제 아무리 인테리어 감각이 뛰어나고 고풍스럽게 꾸민다 하여도

 

 

 

 

자연스러운 세월의 흔적까지 꾸며낼 수는 없으리라...!!!

 

 

 

 

 

겨울이면 늘 활활 타오른다는 벽난로...

후각을 자극하던 그리운 내음의 시작은 또 여기였구요.

 

시각적으로만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면 덜했을 그리움이

후각으로 그리고 음악으로...피부로....느끼며...

지금 이 순간만은 시간이 멈춘듯 느껴졌습니다.

 

 

 

 

상업적인 느낌, 속세에 찌든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굳건히 자리를 지켰지만...어느 순간...때타고 사라져버릴까...

 

자꾸만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십수년 전...딸내미가 유학을 갈 때 들고 갔던 가방이라 합니다.

아이들이 읽었던 책...자라며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사진, 소품... 차마 버릴수 없는

추억들을 차곡차곡 '숲속의 섬'에 쟁여두었을 주인장님의 섬세함...

 

 

 

 

 

경기도 고양시 마두리 261-3 번지였던 이곳이 1989년 신도시 개발이후 행정구역이

경기도 풍동 1121번지 7동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철길 건너편 마을들이 변하기 시작했고 논, 산, 밭 그리고 축사 모두들 사라지는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흙 내음을 잃게 되어 다소 슬픈일 입니다.

그나마 숲속의 섬은 꿋꿋하게 서있을 것입니다.

1980년 이후

 

투박하고 낡은 메뉴판 첫 장의 인삿말입니다.

 

 

 

 

해마다 가장 좋은 계절에 가장 좋은 재료로 직접 담그신다는 유기농 차들...

 

저는 모과차와 유자차를 골랐습니다.

 

 

 

 

예전에는 메뉴도 더 다양하고 맛난 식사도 있었다는데...

지금은...미리 예약한 가족들 홈파티 준비만 가끔 해주실뿐...

평소에는 간단한 차 종류와 호박죽, 조각 케잌 정도만 맛 볼 수 있다고 하네요. ㅜㅜ

 

 

 

 

유자청...마트에서 사 먹는 아이들과 땟깔이 다릅니다. ㅋ

 

 

 

 

 

이 날 사진을 찍는 내내...감동이었습니다.

사진의 ㅅ도 모르는 내가...아무렇게나 셧터를 눌러대어도

고풍스러운 작품이 나오니 마냥 신나지 않았겠어요? ㅋㅋ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의 힘이었겠죠.

 

 

 

 

 

한켠에 쌓인 양초 조각들...

테이블에 두었던 것을 창틀에 모아둔 것 뿐인데...

이 조차도 어찌 이리 엣지있어 보이는지요. ㅋㅋ

 

 

 

 

 

 

무슨 이름들이냐구요??

테이블 번호 입니다.

일괄적으로 매겨진 의미없는 숫자들이 아니라

하나하나...주인장님의 추억과 사연이 있는 단어들로 매겨진 테이블 번호...!!!

 

역시나...낭만가득...센스 한아름...!!!!

 

 

 

 

아주 크진 않지만 적은 규모도 아닌 숲속의 섬...

이 유기농 차만 판매하여 유지가 될까 싶어 여쭤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지금껏 지켜 온 것을 이익이 덜 하다고 닫을 수는 없잖아요.

추억이 그리워 찾아오시는 손님들 헛걸음 하게 만들 수도 없구요.

이렇게 따뜻한 차라도 대접해드려야죠."

'숲속의 섬'과 꼭 어울리는 인상 좋은 주인 이모님의 따뜻한 말씀 입니다.

 

 

 

"삼 십년 가까운 세월...지켜온 자부심이죠.

 숲속의 섬과 함께 나도 늙어버리고 힘이 빠져서 많은 일을 벌일 수가 없어요.

이 분위기와 정취가 탐난다고 넘기라는 사람들도 적잖이 있지만...믿을수가 없잖아요.

돈이 들어가면 욕심을 부리기 마련인데...

그런 사람들 손에 숲속의 섬을 망가지게 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껏...아이들 키우고 공부 시키고 부족함 없이 살게 해 주었던 이 공간을

이익이 조금 덜하다고 버릴수는 없잖아요.

어울리지도 않는 반짝이는 간판들 가져다 붙이고 싶지도 않고...상업적이지 않은 공간 이대로...

내가 힘이 닿는 한 지키고 싶습니다."

 

그러게요...저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종로의 피맛골, 대학 근처의 주점 골목, 정겨움 가득한 재래시장...

너무 많은 추억의 자취들이 사라져 버리고 있기에...

작은 이 공간 하나라도...지키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옛날처럼 기차를 타고 한 번 와 보세요.'

시선 끄는 반짝이 전구 하나 안달린 간판에 써 있듯이...

조만간 아그들이랑 기차타고 함 가보려구요.

비록...옛날의 간이역...백마역도 아니고 옛날의 덜컹대는 기차도 아니고

옛날의 백마역 까페촌도 없지만...

 

마지막 남은 낭만과 추억을 자취를 찾으러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