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랑이네 엿보기/솔직한 사용기

딸에게 읽어주다 엄마가 울어버린 동화


유난히 나를 예뻐해주시던  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딱 그림책에서 처럼 손과 다리가 돌아갔고
잘 다물어지지도 벌려지지도 않는 입때문에 침을 많이 흘리셨다.

 


그래도 제가 시골에 가면 "우...이...가...아...지..." 정말 딱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가...최...고다..." 웃으시는 건지 우시는 건지...
잘 움직이지 않으시는 얼굴 근육 때문에 항상 잘 분간이 되질 않는 표정...

 

그렇게 8년을 누워계시다 돌아가셨을때 어찌나 가슴이 아팠던지...
돌아가시던 날 "내....이... 겨...오이...오....나??" 라고 말씀하셨다던데...

아닌게 아니라 그 다음날 쉬는 날 이었기에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기로 했었다.

 

 

 



여섯 살 윤영이는 할아버지와 살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많이 아프시거든.

딩동!
드디어 할아버지가 오셨고 윤영이는 주먹을 꼭 쥐고

쏜살같이 달려 나가 할아버지한테 안길 준비를 했다.
할아버지와 윤영이 사이에는 '우리끼리만 하는 인사' 가 있었으니까...
할아버지가 "우리 강아지!" 하고 두 팔을 벌리면
윤영이는 쪼르르 달려가 할아버지한테 안기는 인사...

그러면 할아버지가 윤영이를 번쩍 들어 목말을 태워 주곤 하셨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이상했다.
"우...,이...,가.아.지.."
윤영이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6살 윤영이는 너무 달라진 할아버지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제는 할아버지랑 같이 눈사람도 못 만들고, 달리기 시합도 못하겠네."
마음이 힘껏 꼬집힌 것처럼 아팠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화도 났어요. 나랑 놀아 줄 수 없는 할아버지가 미웠지요.

 


화도 나고, 밉기도 하고, 꼬집힌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는 어린 아이다운 표현에 더욱더 슬퍼졌다.



할아버지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는 아이...다시는 이때로 돌아 갈 수 없겠지.

하지만 할아버지의 마음은 더 아프다.
누구보다 손주와 잘 통했던 할아버지는 속상한 손주의 마음 역시 잘 느낄 수 있으니까.




어느 날 유지원 앞으로 찾아 온 할아버지가 미워 도망을 가던 윤영이는 길을 잃었다.

 


"유....여...아, 어이 가?"
등 뒤에서 할아버지가 소리쳤어요.
'내 이름은 윤영이인데, 왜 '유여아'라고 불러?
할아버지가 아기야?'

나는 화가 나서 걸음이 자꾸자꾸 빨라졌어요.



가도가도 모르는 길만 나오고 드디어 막다른 골목에 들어 섰을때
윤영이는 엉엉...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생전 처음 만났는데, 모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윤영이를 알고 계신다.
이름도 알고 나이도 알고 계신다.



바로 윤영이의 사진을 들고 
애타게 윤영이를 찾고 계신 할아버지를 먼저 만났던 덕분이었다.
'장윤영, 여섯 살, 찾아주세요.'

 

 



"할아버지...내가 혼자 가 버릴 줄 어떻게 알았어요?"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었어요.
"아..맞다, 할아버지는 내 마음을 다 알죠?"
나도 배시시 웃었어요.

"할아버지, 우리끼리만 하는 인사를 다시 만들어야겠어요."
"그....으래."

우리는 이제 바빠질거에요.
우리끼리만 하는 인사를 다시 만들어야 하거든요.

 


다행하게도 윤영이와 할아버지는 화해를 했다.
비록 몸은 아프시지만 윤영이를 사랑하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을 잘 아는 윤영이다.

 


하루만 더 살으셨어도 보고 싶은 손주를 만나보실 수 있었는데

바쁘게 세상을 떠나시느라 마지막 인사도 못 나눴다.
처음에는 할아버지 꿈도 많이 꿨었는데...
 그러고보니 요즘은 할아버지를 꿈에서도 만난지 오래 되었다.


 


딸아이의 책을 읽어주며 저도 모 르게 눈물이 났다.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 본다.
"엄마...울어??"
"아니...책이 너무 재미있다...우리 다른 책도 볼까?"

 

 

 

제목: 우리끼리만 하는 인사

글: 최은규, 그림: 오동

펴낸곳: 몬테소리-우리글 글끼말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