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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육아는 행복해

도시락을 열던 6살 아이, 그냥 뚜껑을 닫은 이유

점심 시간입니다.

오전 활동을 마치고 반 아이들에게 나눠 줄 점심 급식 교실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은 각자의 식판을 꺼내어 앞에 두고 앉아 있습니다.

식판 뚜껑을 열어두고 선생님이 음식을 나눠 주시길 기다리고 있는데...

한 아이는 뚜껑을 살짝 열었다가 얼른 닫아 버립니다.

친구들은 급식을 받는데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리는 아이의 표정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본인도 어색함을 느끼는지...더 어색한 콧노래도 부르며 고개를 갸웃갸웃 흔듭니다.

 

옆으로 갔습니다.

"잠깐만..."

살짝 뚜껑을 열어보니 어제 먹었던 음식물들이 그대로 말라 있습니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

웃으며 어깨를 토닥여주고 급식 선생님께 도시락 세척을 부탁 드렸습니다.

벌써 몇 번째 입니다.

물론 난 센스 있는 선생님이니 다른 친구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신속하게 처리를 해주곤 했지요.

이건 자랑입니다. ^^;;

 

직장에 다니는 바쁜 엄마...챙긴다고 챙겨 주시겠지만 수시로 준비물을 빼먹곤 합니다.

가끔씩 손톱을 점검 할때면 아이는 민망해 하며 손가락을 펴지 못합니다.

이주일 이상은 깎지 않아 보이는 긴 손톱에는 때가 꼬질꼬질 끼어 있곤 했습니다.

살짝 데려다가 손 씻기고 깎아주고...

아이들이 워낙에 조숙하여 여섯살 정도면 다 아는 나이 이기도 하고 철이 없을 나이이기도 해서...

친구들도 다 알아차리곤 합니다.

 

"선생님 00이는 손톱이 너무 쌔까맣고 길어요..."

"선생님 00이는 00 안가져 왔데요."

 

선생님에게 작은 것 하나까지 고자질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의 고개는 떨구어 집니다.

아빠는 '사'자 붙는 직업이었고 엄마도 전문직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여 가장 비싸고 좋다는 놀이학교를 다니고

구깃구깃 손질이 안 되었을 망정 아이의 옷은 명품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늘 주눅들어 있고 눈치를 보곤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부유할지 몰라도 잦은 엄마의 실수에

적잖은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똑똑하고 예민한 성격의 아이였기에 그렇게 민망함을 느꼈었겠지요.

늘...공부하는 직업을 가진 부모님을 닮아서요...

 

 그 아이가 오늘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주말 내내 아니 지난주부터 많이 바빴습니다.

여기저기 모임도 많았고 새로 시작한 일이 있어 자주 나가야 했습니다.

이번주 화요일...그러니깐 오늘은 수업도 잡혀 있습니다.

수업 셋팅도 제대로 안 되었는데...

주말에 연휴까지...가족들 챙기랴 틈틈히 셋팅하고 일 하랴...정신이 없긴 했습니다.

그래서...까맣게 잊었습니다.

오늘 딸내미가 소풍 가는 것을요.

 

아침부터 딸내미 기분 좋게 해준다고 샤랄라한 치마를 입히고

도시락과 물통을 챙기고

'수업때문에 오늘은 오후 늦게 출발하는 차량을 태워달라'는 내용의 수첩을 쓰면서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바쁘게 차량을 태우러 나갔는데

아이들은 모두 원복을 입고 간식과 음료가 들은 보조가방을 메고 있습니다.

차량이 도착하여 급히 타야하는 상황에서

다시 들어가 챙기고 옷 갈아입힐 시간이 도저히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수업만 없으면 다시 데리고 들어가서 챙겨 보내거나

그것도 안되면 원으로 소풍 준비를 해서 가져다 주기도 하련만...

오늘은 그 시간도 안 되었습니다.

 

그나마 오늘은 엄마표 도시락을 싸가는 소풍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아님 우리딸...쫄쫄 굶을뻔 했네요. ㅠㅠ

 

혼자만 없는 것, 혼자만 안가져 가는 것, 혼자만 다른 것...에 예민한 나이인 딸은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어린이집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 표정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선생님께 전화를 드리고 잘 부탁 한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자기 것이 없이 친구의 음료를 나눠 마시고 간식을 나눠 먹고...

원복을 입은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튀는 옷을 입고 있을 딸의 모습을 생각하니

자꾸만 미안했습니다.

 

둥글둥글한 성격이면 걱정도 덜 될텐데...

예민한 아이라 주변 눈치도 많이 보고 민망함도 잘 느끼는데...

쭈뼜쭈뼜...뻘쭘하게 있을 딸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는데

왜 예전에 씻겨지지 않은 도시락통 때문에 민망해 했던 그 아이가 떠올랐을까요...

 

바빴다...라는 건 핑계겠죠.

아무리 바빴어도 조금 신경써서 가정 통신문을 읽을 시간이 없었을까요.

 

"엄마...소풍 갔다가 딸기만 따고 그냥 왔구요

간식은 원에서 친구들이 싸온 거 골고루 나눠 먹었어요."

 

어린이집에 다녀온 딸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원복과 간식을 준비해오지 못한 아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센스있게 대처를 해주신듯 합니다.

연휴끝에 간 소풍이라 딸아이처럼 원복과 간식을 준비해 오지 않은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하기도 하네요.

 

어른이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은 작은일에도

아이들은 상처가 될 수 있고 그 순간에는 세상의 전부처럼 느낄 수도 있겠죠.

가끔 어린날의 사소한 실수나 속상했던 일들이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그 어린날의 일화들을 속상하고 민망한 일로 채워주느냐

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채워주느냐는

어른들에게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신경써서 가정 통신문도 챙겨보고 수첩도 꼼꼼하게 살펴서

오늘 같은일은 없도록 해야겠네요.

센스있게 대처해주신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뭘 알아? 싶지만 아이들은 다 압니다.

뭘 알아? 싶어도 아이들은 다 느낍니다.

뭘 알아? 싶어도 아이들은 다 알고 느끼고 눈치보고 기죽어 합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일수록 엄마의 꼼꼼한 손길이 필요하고

어른들의 배려와 관찰이 필요한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