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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어린 아이들의 부모는 아플 자격도 없다?

지난주 화요일 밤...10시...그러니깐 7월 3일 이었네요.

출장을 다녀온 남편은 저녁식사를 하고 쉬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레 두통을 호소합니다.

 

 

그냥 신경성 혹은 스트레스성 두통이리라 생각했습니다.

12시경...남편은 내내 끙끙 거리며 누워있습니다.

타이레놀을 주고 얼음찜질을 해주었습니다.

열은 없었습니다만 그렇게 해주면 두통이 조금 누그러진다는 검색 결과가 있어서요.

 

나아지겠거니...자고 나면 나아지겠거니 하던 남편의 두통은 계속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병이 있는듯한데...

이번에도 또 검색을 했습니다.

무지한 하랑맘...사실 두통에는 어느 병원을 찾아야하는지 조차 제대로 몰랐거든요.

 

뭐...스트레스, 신경성...은 물론이고

디스크가 있는 경우에도 두통이 올 수 있다더군요.

많은 이유 중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경추에 이상이 있을때 였습니다.

유난히 목이 긴 남편...폭신한 배게를 좋아하고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는 일을 하고...

검색을 하면서 내린 결론...통증의학과를 가자...!! 였습니다.

 

 

병원에서 주사 한 방 맞거나 물리치료를 받으면 나아지겠거니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딸내미 브레인스쿨에 갔다가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왔습니다.

약 3시간 가량 나갔다 왔는데 그 사이 남편은 더 초죽음이 되어 있습니다.

병원에 겨우 다녀왔고 약도 먹었는데 진통제도 소용이 없다 합니다.

 

진통제가 소용이 없다는 말에 퍼뜩 머리를 스치고 가는 병명은...'뇌수막염' 이었습니다.

어디선가...그런말을 들었거든요.

뇌수막염은 진통제도 소용이 없다...!!!

 

 

급히 준비를 하고 종합 병원으로 갔습니다.

물론 병원에 가면서도 반신반의 했습니다.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긴 하지만 고열도 없었고 고개를 까딱까딱 할 수도 있었으니깐요.

큰 병원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말 그대로 혹시 몰라서 였습니다.

 

 

 

 

 

 

혹시나 하고 갔는데...이런 경우에 역시나를 써도 되는지 모르지만...

암튼 역시나...남편은 뇌수막염이었습니다. ㅡㅡ;;

 

갑자기 낫겠거니 하룻밤 남편을 방치해둔 것이 너무 미안합니다.

아침 일찍 병원에 올 것을 볼 일 다 보고 오후에야 병원에 왔던 것도 미안했습니다.

뇌수막염의 통증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극심하다는데...안쓰러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도 잠시...

아이들은 어쩌지??

일단 검사 마치면 데리러 가겠다고 했지만...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먼저 돌아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엄마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텐데...

 

만만한게 근처에 사는 이모네 입니다.

하지만...이모의 중학생 딸이 시험기간 입니다.

예민한 사춘기 아이의 시험기간...

아무리 조카 손주들이 예뻐도 부담스러우실 줄 알지만...

남편은 아프고 아이들을 맡길곳은 없고 염치 불구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기꺼이는 아니지만...일단 두 아이들을 찾아서 하룻밤을 돌봐주셨습니다.

 

난생 처음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하룻밤을 보내는 아이들도 걱정이고

밤새 고열에 시달리며 끙끙 앓고 있는 남편도 걱정이 되어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샜습니다.

 

 

새벽5시...시어머니께서 교대를 해주시기로 하여

아이들을 받으러 급히 집으로 왔습니다.

청소하고 간단한 아이들 아침거리를 만들고...

 

5살 딸내미는 아빠의 아픔을 대강은 알고 하룻밤의 이별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지만...

아직 두 돌도 안 된 아들은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않습니다.

표정이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고 행동도 평소와 다름 없지만 눈만 마주치지 않고 자꾸 고개를 돌렸습니다.

 

미안하고 안쓰러웠지만...또 거기에 마음을 둘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도 통증에 시달리고 있을 남편이 마음에 걸려서요.

급하게 아이들을 준비시켜 또 딸은 유치원에 아들은 어린이집에 맡기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다행하게도 둘째날 저녁은 시어머님께서 병원에 계시기로 하셨습니다.

시어머님도 노환을 앓고 계신 외할머니를 모시고 계시기에 시간이 자유롭지 않으시거든요.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고 병원에서 집까지 2번을 왕복했더니 100km도 훌쩍 넘더군요.

하루에 이리 많은 운전을 한 적이 없었는데...

집에 와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와 떨어져 있었던 아이들은 심하게 보채고 짜증을 많이 냈습니다.

안아주고 달래주고...하룻밤 비웠을 뿐인데 엉망이 된 집안도 정리하고...

 

다음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남편에게 가져갈 먹거리 준비하고

여전히 떼를 쓰는 아이들 달래어 또 각자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보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아 줄 사람만 있으면 남편 옆에서 저녁도 챙겨주고 담당 주치의 선생님도 만나고 싶은데

아무리 고민하고 찾아 보아도 맡길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건...남편의 뇌수막염 증상도 조금씩 호전되어 가고 있고

주말에는 수원에 사는 친정언니가 와서 아이들을 돌보아 주어 여유롭게 남편을 챙길 수가 있었고...

일요일인 어제 퇴원을 했습니다.

 

아는 병이고...치료 잘 받고 시간이 지나면 수일내로 낫는 병이라 다행이지요.

남편과 함께 입원했던 중증의 환자...기약도 없이 입원해 계신분들도 많더군요.

단  몇 일도....남편 옆에 있으면 아이들 걱정...아이들과 있어도 병원에 있을 남편 걱정...

늘 마음이 불안하여 잠 한숨을 편하게 못 잤습니다.

몸은 너무 피곤한데 머리는 깨어있는 상태??

깜빡 잠들었다가 화들짝 놀라서 깨고...

 

아이들도 아이들대로 갑작스레 엄마와 오래 떨어져 있고

내내 맡길곳을 찾는 엄마 옆에서 불안한 몇 일을 보내야 했고

누워있는 남편 역시도 극심한 통증 속에서도 아이들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언젠가 말했지만...엄마는 아플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정정해야 할 듯 합니다.

엄마뿐 아니라...아빠도 아프면 안되네요.

아빠가 아프면 엄마가 옆에서 지켜주고 간호를 해야하는데

그러면 또 아이들은 어찌합니까...

 

지난 몇 일간...많이 슬프고 힘들었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부모는 아플 자격이 없습니다.

특히 부모의 보살핌이 절실한 어린 아이들의 부모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