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2017.07.26 12:08


결혼 후 잠시 직업 상담사로 일을 했을때 만난 여러 부류의 내담자분들 중 가장 상담과 취업이 힘든 내담자는 아이러니하게도 경력 과잉이었다. 차라리 학벌이 낮고 스펙이 없으면 취업에 대한 눈높이도 낮고 배울 수 있는 직업 기술이나 훈련등을 제시 하기도 편했다. 


시카고 대학의 교수 출신도 있었고 대전 엑스포 및 고양 꽃 박람회 초기 기획자도 있었다. 네이버 검색하면 첫 페이지에 뜨는 유명한 특수효과 감독도 있었다. 해외 유학파에 박사 학위까지 있는 고학력 내담자. 멀게만 느껴졌던 스펙과 꿈의 직장에 다녔던 내담자를 만나 상담을 해야 할 때면 조심스레 여쭤봤다. "선생님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안타까운 건 내가 퇴사를 하기 전 까지 그 분들 중 원하는 곳에 취업이 되신 분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분들의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조각 경력이었다. 적성, 가정사, 더 나은 조건을 맞춰주는 곳으로, 동료와의 갈등등 이직 사유는 가지각색이었다. 여기저기서 불러주며 벌이가 좋았던 시절을 보여줄 해외 경험도 많고 이를 반증하듯 탄탄한 외국어 실력을 가지신 분들도 있었다. 다만  5년 이상 한 곳에 있었던 이력이 없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곳이었으되 2장 이상을 빽빽하게 채우는 이력들의 대부분은 1년 남짓. 3년, 길면 5년. 심한 경우에는 한 시즌, 한 분기. 

 

화려했던 과거는 현실에서 발목을 잡는 올무에 불과했다. 기존에 받았던 급여, 대우, 급에 맞는 직장을 원했지만 그 자리는 공백기간 없이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말단 자리부터 시작하려 하여도 새롭고 참신한 시각을 가지고 열심히 자기 계발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차지했다. 상사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아도 왕년에 잘나갔던 간부급 나이의 스펙이 화려하고 대하기 어려운 부하 직원보다는 경험은 부족하지만 의욕 넘치고 빠른 습득을 보이는 어린 부하 직원을 가르쳐서 부리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지금 당장 그 일만 시작하면..." 누구보다 그 일을 잘 해낼 자신이 있다는 말과는 달리 본인 자소서에 자신을 소개하는 글 한 줄을 논리적으로 못썼다. 문맥도 안 맞고 트랜드에도 한참 벗어났다. 말로 보여주는 자신감과 달리 그 일에 대한 전문성을 보여주긴 커녕 부족한 인문학적 소양만 드러난다. 수정을 해주려 해도 뼈대가 있어야 가능한데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고쳐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자연스레 상담시간의 대부분을 자소서 작성하며 보내기도 했다. 십 수년 간 이직의 기본중의 기본인 이력과 자소서 조차 관리하지 못한 부족한 준비성으로 새로운 곳에 취업을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평생 직장? 사라진지 오래된 개념이다. 적성에 안 맞으면 그만 둘 수도 있다. 그 직장의 상사와 동료가 꼴보기 싫을 수도 있다. 정 싫고 못 견견뎌 그만두면 된다. 다만 지금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더 좋은 직장에 갈 수 있을까? 여기만 아니면 무슨 일이든 잘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여기서 잘 하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도 잘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더 높다. 더 잘 할 수 있는 다른 곳에서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 잘 할 수 있는 직장에 취업했다 생각했는데 출근 일주일 만에 다시 지금의 이 직장이 좋았던 것만 알게되고 내 이력서만 지저분해 질 수도 있다.


최근 준비하는 상담사 시험 준비로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매일 아침 근처의 커피숍으로 출근한다. 8시 40분쯤  늘 같은 맴버들을 만날 수 있다. 내 또래의 혹은 나보다 조금 윗 연배의 아저씨들  4~5명이다. 각기 사정과 이유가 있겠지만 늘 나보다 먼저 출근하여 나의 퇴근 시간 (하교시간 오후 3시) 보다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실상 나보다 사정이 훨씬 좋을 수도 있고 나름의 휴가를 즐기고 있을 수도 있는데 왠지 모를 짠함이 느껴진다. 눈인사 조차 하지 않는 존재감 없는 사이지만 마음으로 지금 준비하는 일들이 성공하여 그들의 가족들이 함께 기뻐할 일이 생기길 응원하기도 한다. 그 멤버들 중 한 명이 몇 일 안보이면 준비하던 일이 잘 되었나 궁금하기도 하다. 이 아줌마의 오지랍이란...


"출근이 칼퇴보다 즐거워지는 책" 이라는 제목을 처음 남편에게 들었을때...말도 안된다고 했다. 너무 진부하다고 했다. 사기라는 카톡을 주고 받기도 했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참으로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선택은 자유다. 그 선택을 본인 스스로 질 수만 있다면...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선택의 책임의 무게를 본인만 지게 되지 않는다. 그 무게를 나누어 지게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아주 가까운 나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나의 부모, 나의 배우자, 나의 자녀, 나의 형제...물론 그들을 위해 희생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힘들다 어렵다는 생각을 조금 더 바꾸어 긍정적으로...생각 한다면...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는 해야하는 일이라는 마음 가짐으로 바꾼다면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뀔 것이다. 


내 책임의 공간이 반드시 여기가 아니어도 된다. 다만 어디에서든 가치롭게 살 수 있는 준비와 노력을 시시때때로 해야한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장 떠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출근을 기쁨으로..." 여기길 바란다.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지금 이 곳을 그리워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떠나지 못해 안달복달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이 곳에 들어오지 못하여 좌절 하고있는 유능한 젊은이들은 그 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 곳이 바로 내가 있는 이 회사이다.



PS. 아이들 어렸을때 몇 년 바짝 하던 블로깅...어느새 시들해져 하다말다 하던 나와 달리 남편은 꾸준히 글을 썼다. 그러더니 책을 냈다.  "출근이 칼퇴보다 즐거워지는 책"  자랑스러우면서도 샘이 난다. 나도 열심히 했으면 책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려나? ㅋ 늘 성실하고 노력하는 아빠의 모습을 아이들도 닮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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