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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아파트 A/S를 가장한 방문판매 아줌마 물건 안 사면 욕설?






오늘 오후 4시경...띠리리리~~~초인종이 울립니다.
인터폰으로 확인해보니 모르는 얼굴의 한 아주머니가 계시더라구요.


"누구세요?"
"네~아파트에서 렌지 후드를 갈아드리고 있어서 나왔습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순간 렌지 후드 교체해주는 서비스도 있나? 라고 의심이 들긴 했지만 아파트 입주자들 대상으로 가끔 침구류나 쇼파 자외선 소독해주기도 하고  참 숯도 나눠주기도 하는 등의 생각지 못한 서비스들을 가끔 받았었기에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바쁘게 들어오신 아주머니 커다란 가방에서 주섬주섬 세제를 꺼내더니 다짜고짜 반말로 의자를 달라고 하시더군요.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당당하신 아주머니의 태도에 얼떨결에 식탁의자를 대 드렸죠.
눈을 돌려 아주머니 가방을 보았더니 삐죽이 나온 팜플렛과 여러병의 세제가 보이더라구요.
아차...방문판매 하시는 분이셨던거죠...
아주머니는 이미 렌지 후드에 세제를 잔뜩 뿌리고 계셨었구요.


"저...이거 아파트에서 해주는 거 아닌가요?"
"응...아니야...애기엄마...이거봐라..이거 진짜 신기해...힘 하나도 안들어..."
"근데요. 뭐 사야 하고 그런거에요?"
"아니...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공산주의도 아니고 그냥 애기 엄마가 보구 살만하면 사라고 한 번 보여주는거야."

무슨 오렌지 추출성분이 들어갔다는 그 세제는 정말 잘 닦이긴 닦이더라구요.
칙~칙~ 세제를 뿌리고 1분도 안되어 눈 앞에서 찌든 기름때등이 빠져 나가는게 신기하기는 하더라구요.
별로 힘들여 닦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저도 살림하는 주부인지라 순간 욕심이 나기도 하더라구요.


"와~진짜 신기하기는 하네요."
"그지그지? 이거봐 진짜 힘 하나도 안들어...에이구 다 했다..."


의자에서 내려오신 아주머니 본격적으로 팜플렛을 펼치셨습니다.
"이게 한병에 18,000원인데 열 병 사면 150,000원이야. 빨래도 할 수도 있고 과일 세척 할 수도 있고...
이제 추석인데 손님 맞으려면 집안 대청소도 해야 할거 아냐..."


아주머니는 입에 모터라도 다신듯 계속 상품 설명을 하셨고 제가 열 병까지 필요 없다고 하자 4병에 6만원에 주시겠다며 다짜고짜 세제들을 꺼내 놓으셨습니다.
좀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 그냥 하나 사드려야 하나...고민도 되더라구요.
근데 생각해보니 오늘 아침 신랑이 교통카드로 이용하는 카드를 분실했다고 제 신용카드를 빌려 갔던게 생각이 났습니다. 평소 현금도 잘 가지고 다니는 편이라 지갑에는 몇 천원 정도 밖에 없었구요.


"아주머니, 지금은 말구요 일단 명함 주시고 가시면 생각해보고 연락 드릴게요."
"아니...나 여기 6개월에 한 번씩 밖에 안 와 살려면 지금 사..."


"지금 제가 현금이 별로 없네요. 꼭 다시 연락 드릴게요."
"현금 없으면 카드도 돼...카드로 사면 되지..."
"아 오늘 아침에 신랑이 교통카드 잃어버렸다고 가져갔거든요. 아님 내일 다시 오시면 제가 카드 받아서 살게요."
"아...나 오늘 밖에 안온다니까...그럼 내가 세제를 두고 갈테니까 통장으로 부쳐..."



이쯤되니 좀 강압적인 아주머니의 태도에 거부감이 들더라구요.

또 생각해보니 성분도 모르는 세제 생전 처음 보는 방문판매 아주머니만 보고 사기도 찝찝하기도 하구요.


"아니요. 그건 좀 그렇구요 필요하면 연락 드릴게요. 명함만 주시고 가세요."

가방을 챙기시던 아주머니 혼잣말 치고는 큰 소리로

"그지같이 세제하나를 못 사고 쩔쩔매...아이고 이 가시네...나이도 어린게 드럽게 까탈 부리네."


딸내미도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고 있는데 공연히 아는체 하면 싸움이라도 생길까봐 처음에는 못들은 척 했습니다.

"미친것...젊은 것이 그렇게 돈도 없이 어떻게 살아? 세제 하나 살 돈이 없어? 왜 저러구 산데?"

도저히 그냥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머니 제가 돈이 없어서 안산다는게 아니구요 일단 전 이거 처음 봤거든요. 주변에 쓰는 사람도 못 봤고.
그냥 좀 알아보고 필요하면 꼭 연락드릴게요. 그런데 욕까지 하시는 건 좀 심하시네요"

"아니...내가 뭘...내 말투가 워낙에 퉁명스럽고 목소리가 커서 애기 엄마가 오해한거지..."
아주머니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문을 꽝~닫고 나가버리셨습니다.


아주머니를 보내고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런 식으로 살림하는 아줌마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물건을 사게하는 상술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뭐 대부분은 기분 나빠서라도 안사겠지만 간혹 자극 받아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실제로 제가 아는 언니도 웅진 영사의 무시에 발끈해서 100만원 어치도 넘는 전집을 들인 예가 있었거든요.


암튼 자극이었든 상술이었든 생전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 되지도 않는 욕을 먹고 내내 기분이 찜찜하고 기분이 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