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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가슴 뭉클한 가장 짧은 단어 '어머니'


ⓒ : flickr


'어머니'라는 단어보다 가슴 뭉클한 짧은 단어가 있을까요?
어릴 땐 몰랐던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되면서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딸들은 엄마가 되면 어머니의 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고 하지만 아들도 자식인걸...똑같지 않겠습니까.
제가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워보니
저를 키울 때 부모님이 어떤 마음이셨는지 이젠 알 것 같습니다.
고맙고 죄송스런 맘들이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커지네요.


자라면서 어머니에게 미안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미처 헤아릴 수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


즐거운 주말 오후. 학교를 파하고 친구들과 시민회관으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엄마한테 용돈을 받기 위해
친구들과 외삼촌 공장에 들렀습니다. 외삼촌 봉제 공장에서 일을 하시던 엄마가 나오셔서 친구들과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쌈짓돈을 꺼내 주십니다.

"누구야?", "니네 엄마야?", "왜 이렇게 늙었어?"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35 살의 늦은 나이로 막내아들을 낳으시기도 하셨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묻어나는 평탄치 않았던 삶은 나이를 넘어
초라한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아..아니, 외숙모야 ....”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장난치고 킬킬거리며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가던 길을 재촉합니다.
9살의 철없는 아이는 보이는 것만 보고 느낍니다.


목요일 저축하는 날 아침.
누가 찾아왔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복도에 나가보니 초라한 행색의 나이든 아주머니가 통장과
돈을 들과 서 계십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등 떠밀듯 엄마를 돌려보낸 아이는 얼굴이 붉어져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교실로 들어옵니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날 창피하게 만들려고 일부러 온 거야!"


11살 아이의 마음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리 없습니다. 



학부모 면담하는 날.
살다가 이렇게 고민되는 날은 없습니다. 한숨만 나옵니다.
"아빠 ! 절대로 엄마한테 말하면 안 돼!"
학부모 면담일 날 유일하게 아빠가 온 학생이 있습니다. 면담이 끝난 후 친구들과 사이좋게 청소도 해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는 멀쑥한 양복 차림의 아저씨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그 날 이후 그 아저씨는 학교에서 자주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6년 동안 저축한 돈을 찾는 날.
선글라스를 낀 멋쟁이 아줌마. 젊고 날씬한 아줌마. 소년은 아빠의 모습이 보이질 않아
불안합니다. 그런데 멋쟁이 아줌마들 틈에서 낯익은 아줌마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어설프지만 화장을 곱게 하고 생전 처음
보는 옷을 입은 아줌마. 얼굴에 가죽만 남은 봉제공장을 다니는 바로 우리 엄마입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속상하기만 합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아이의 대학교 졸업식.
곁에는 초라하지만 인자한 모습의 노인이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이
그대로 녹아든 얼굴에는 고단했던 삶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그 뒤에 묻어나는 행복한 표정 또한 비춰집니다.
못난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그다지 잘나지 못한 아들이 이제는 사회인이 된다는 게 가슴 뿌듯하고
기쁘기만 합니다.
 



철없는 아들의 결혼식.
아들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줄곧 싱글벙글 합니다. 주례사가 끝나고 뒤로 돌아서는 순간 초라하게
혼자 앉아계신 어머니가 눈물 훔치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합니다. 30년간 함께 했던 어머니와 이제는
 헤어져야 합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내 집, 내 가정을 꾸미는게 좋았던 아들은 너무 미안해 가슴이 아파옵니다.



ⓒ : flickr

소년은 성인이 되고, 이제는 부모가 되어 부모의 마음을 서서히 깨닫고 있습니다. 가난했지만 아들을 위해 없는 돈을
내주셔야만 했던 어머니의 마음, 준비물을 안 가져간 아들이 벌을 받을까 걱정되어 한걸음에 달려오셨던 어머니의
마음, 아들을 위해 수년 동안 장롱깊이 나프탈렌과 함께 햇빛을 갈구하던 주인 잃었던 옷을 꺼내 입으셨던 어머니의
마음, 철없는 아들을 장가 보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그 깊은 마음을...  



그리고 당신의 이름이 왜 "어머니"인지를... 
 



이제는 당신의 삶을 보상해 드리려 합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떠나신 후 괴로워하시고 외로워 하시는 어머니를 이제야
정신 차리고 바라봅니다. 당신의 삶을 모조리 아들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의 행로가 스쳐지나 갑니다. 부모님은 기다려주시지
않는 다는 걸 잘알고 있습니다.
 


칠순을 바라보는 노년의 어머니를 위해 소년은 아들이 되고 딸이 되고, 삶을 공유하는 동반자가 되려 합니다.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조급하기도 하지만 소년은 깨달았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행복한 과제. 앞으로 소년이 해야 할 일은
철없던 소년이 만들어 놓은 어머니의 주름을 하나하나 지워 드리는 것입니다. 


무뚝뚝하고 철없던 소년은 다시 철없는 어린 아이가 되었습니다. 


“엄마!  오늘 나 동창회 있는데, 오늘 하랑이좀 봐줘!! 용돈 두둑이 줄께~”
"근데, 엄마 나 오늘 뭐 입을까?…이걸 입는게 낫나? 저걸… 입을까?"
"엄마! 나 머리 세울까? 내릴까? 뭐 좀 바를까? 그냥 갈까?"
"엄마! 신발은 뭐신지? 구두 신을까? 운동화 신을까?"  


성인이 된 소년의 입은 잠시도 쉬지 않고 사랑하는 '엄마'를 실컷 불러봅니다. 
 


"아! 아무렇게나 하고 나가!"
"사내놈이 지 마누라보다 더 까탈스러워서 원...!"  


오늘도 전 어머니가 건강하게 살아 계신걸 눈으로, 귀로 그리고 피부로 느끼며 기분 좋게 집을 나섰습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합니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