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인 제 사촌동생은 학부모 운영위원회 위원장 딸과 같은 반입니다.
뭐...우리때의 식으로 말하면 육성회장 정도겠지요.
평소 학교 다녀와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다 말하는 사촌동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일명 치마바람이 센 엄마덕에 그 딸내미의 위상 또한 높아서 선생님들 조차 그 아이의 뜻을 다 받아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죠.
상황이 그래서 인지 결코 겸손하지 못한 그 아이는 친구들을 무시하고 제 멋대로 굴어서 같은 학급 아이들에게 인심을 많이 잃었었나 봅니다.
그러다 보니 그 아이를 대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의 태도 또한 곱지는 않았으리라 예상됩니다.
그러던 지난 주 수요일 제 사촌동생의 반에서 뜬금없이 친구에 대한 설문조사가 이루어 졌답니다.
가장 싫어하는 아이 이름을 적고 왜 그 아이가 싫은지 이유에 대해서도 적어야 했다구요.
그 설문조사에서 제 사촌 동생과 몇몇 아이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적고 싫은 이유에 대해서도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적었다고 하네요.
그 다음날인 목요일 사촌 동생과 친구들이 하교를 하려고 교실을 나오는데 교실 문 앞에서 운영 위원장이라는 그 아이의 엄마가 불러 세웠습니다.
"너희들이 쓴거 내가 다 봤어.우리 00가 왜 싫으니? 자꾸 그런식으로 하면 곱게 졸업 못 할 줄 알아...납작 업으려서 우리 딸한테 잘 하면 내가 졸업을 할 수 있게 해줄거고...아니면 알아서 해..."
아직은 어리고 여린 아이들이 잔뜩 겁에 질려 사색이 되어 집으로 돌아 온 것은 당연한 일이 었겠지요.
다음날인 금요일은 담임에게 불려가 훈계를 들어야 했고 토요일 오후에는 전 담임선생님인 5학년때 담임 선생님과 만나 면담을 해야 했고 월요일에는 교무주임에게 불려가 수업도 못 받고 면담을 해야 했고 화요일인 어제는 방과후 교감 선생님의 호출까지 받았더군요.
늦어도 3시면 귀가하는 아이가 4시 30분이 되도록 오지도 못하고 교감선생님 만나러 가야해서 늦는다는 전화를 받은 이후 연락이 안되는 딸내미를 걱정하던 이모를 비롯한 함께 불려간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 또한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엄마들은 담임 선생님께 항의 전화 하고 저희 이모는 직접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로 갔지요.
엄마들 입장에서는 처음 설문 조사부터 이해가 안 갔고 한 주동안의 아이들이 겪는 상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졸업 할 것이고 그래도 선생님들이 하시는 일들이니 알면서도 속상하면서도 많이들 참았었던 것 이지요.
항상 선생님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 입장에서 봐도 참으로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네요.
저도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치며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그런 설문조사를 받아 본 적도 없었고 주변 누구에게 그런 설문조사가 있었다는 소리도 들어 본 적이 없네요.
백 번 양보해 아이들의 생각을 알고 바람직한 교우 관계 형성을 위한 담임 선생님의 노력이라 생각해도 왜 그 설문지가 그 날로 운영위원장의 손에 들어가야 했으며 그렇게 아이들이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시달려야 하는지도 이해 불가입니다.
솔직히 결론만 놓고 보면 그 설문지 자체가 그 아이를 좋아라 하지 않는 아이들을 발본색원 하기 위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초등학교 6학년이면 아이들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자신들의 성격에 맞는 친구들을 수 있고 자신들의 지각과 생각이 있는 어엿한 반 성인이라 생각되는데 좋아하는 친구가 있으면 싫은 친구도 있을 것이고 그 한 아이를 싫어한다고 해서 온 학교가 들고 일어나 교감까지 나서서 난리가 날 일인지 모르겠네요.
아이들이 크게 싸웠거나 그런일도 전혀 없었는데 말이지요.
그 아이들이 운영위원장의 딸을 괴롭힌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아이 싫으니까 우리 다 같이 놀지 말자며 주변 아이들을 선동한 것도 아니고 막말로 대 놓고 왕따를 시킨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자기 딸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법인데 도대체 자기가 무슨 권한이 있기에 그 아이들에게 졸업을 시키네 마네 하며 협박을 하는 그 위원장도 상식이하 인 것 같습니다.
설문지 한 번 잘못 썼다가 졸지에 같은 학급의 친구를 이지매 시킨 문제아들 취급을 받는 아이들의 상처는 또 어떨 것이며 귀한 자식들 이리저리 불려다니는 모습을 본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속상했을까요.
주변에서 지켜보는 아이들도 생각이 있는지라 결국 그 위원장의 딸은 그야말로 고립상태가 되었나 봅니다.
엄마와 선생님들이 설친 덕에 진짜 왕따가 될 수도 있겠지요.
지금이라도 내 딸을 좋아해줘라...내 딸이랑 놀아줘라...협박하고 선생님들을 이용하여 곧 졸업을 앞 둔 아이들의 학창시절을 얼룩지게 만들지 말고 차라리 아이들을 달래주고 아이들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부탁을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선생님들도 별 일 아닌 아이들 간의 일에 편파적으로 나서지 말고 교사 본연의 공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모든 아이들을 두루 살필 줄 아는 시각을 갖는 것이 떨어져가는 교권 회복에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돈으로 선생님들까지 움직인다...영화 '두사부 일체'에서 본 육성회장과 그 딸내미의 횡포를 현실에서 만난 것 같아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