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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육아는 행복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의 죄인가?



"글쎄요...잘 모르겠는데요..."
"아셔야 하는데...모르면 접종을 해 드릴 수가 없어요."
"얘가 온지 두 달이 넘었는데
부모는 못 찾겠고 또 쉽게 찾아질 것 같지도 않고...

기본 접종들은 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큰일이네..."


한결이의 BCG와 B형 간염2차 예방접종을 위해

10월 18일 보건소를 찾았을때 접종실에 들어서자 마자 들려온 대화입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시는 아주머니와 예방 접종 접수를 도와주는
보건소 직원과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제가 듣기 시작한 부분은 딱 저기서 부터여서 그 아주머니께서
언제...어디서 그 아이를 데려다 키우시게 되신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주책맞게 꼬치꼬치 사연을 캐 물을 만한 일도 아니고
들려오는 보건소 직원과의 대화를 토대로
추정해 볼 뿐이었습니다.


대략 돌은 넘어 15개월 전 후로 보이는 그 아이를 그 아주머니가 키우게 되신건 두 달쯤 전...
신고를 하고 부모를 찾아주려고 노력을 하셨던 것으로 볼 때
아이를 입양할 의도로 어딘가에서 데려온 것은 아니신 듯 합니다.

차마 기관에는 보내지 못하시고 아이의 부모를 찾을 때까지 본인이 기꺼이 맡아 키우시는 중이고
아이의 이름은 물론 정확한 생년월일도 모르는 상태인데 더군다나
예방접종 현황 따위는 당연히 알 수가 없으셨겠지요.

아무래도 기약없이 아이를 데리고 계시다 보니 혹시라도
그동안 병에라도 걸릴까 기본 접종 정도는 해 주려고 보건소를 찾으신 것 같더군요.
(굳이 보건소까지 찾아 예방접종을 시키는 것을 보면
아이의 부모는 거의 찾을 수 없으리라 어느정도는 포기를 했고
만약 찾지 못하면 아이를 키울 결심을 하셨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결이의 접종 신청서 작성을 위해 왔다갔다 하느라
중간에 보건소 직원과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는 못 들었습니다만

아마도 아이의 접종 현황을 알 수 없으니 꼭 필요한 예방 접종들을 순차적으로 모두 맞히기로 한 듯 합니다.
"앞으로 11월 17일까지 매 주마다 와서 예방 주사 두 대씩 맞아야 할 거에요."
"네...월요일에 와도 될까요? 제가 월요일만 보건소까지 올 시간이 될 것 같아서요.
갑자기 아이가 생겨서 바빠지기도 했고..."
"네...그러셔요...안그래도 저희 보건소는 영아 예방접종 요일이 월요일이거든요."
이런 대화의 마무리 부분부터 다시 들려왔으니깐요.


접종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를 찬찬히 볼 수 있었습니다.
좀 마르긴 했지만 동그랗고 큰 눈에 꾀 귀엽게 생긴 남자 아이였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잘 보살피셨는지 밝은 표정에 건강해 보였고 옷도 새로 사 입히셨는지 입성이 아주 깔끔했습니다.

"아이고...우리 애들 키운지 벌써 20년도 넘어서 이런 옷들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요즘은 참 애들 옷이 입히고 벗기기도 편해졌네요...아이고...우리 아기 아팠어요?"
중얼거리시며 주사 맞고 우는 아이의 옷을 입히더군요.

내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든 세상에 어디서 왔고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저렇게 사랑해주며 키울 수도 있구나...

버려진 것인지 아님 정말 어디선가 부모님이 애타게 찾고 있는 미아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신고까지 했음에도 두 달 넘게 못 찾은 것을 보면 후자쪽은 아닌것 같습니다만...
상식적으로 돌이 갓 지나 이제 걷기 시작하는 아이를 모르고 잃어버리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 싶습니다)

부모를 잃은 것은 너무 안쓰러운 일이긴 해도 그나마 저런분을 만난 건 
불행 중 천만다행으로 운이 좋은 편에 속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짐승들도 제 자식 귀히 여기고 거둘 줄 아는데...>

그 날 저녁 9시 뉴스를 보는데 보험금을 노려 입양한 아이를 고의적으로 죽이고
본인의 자식 또한 의문사 시킨 
한 비정한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문득 뉴스속의 엄마와는 상반 된 낮에 보았던 아주머니와 아이가 생각이 나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상에...그렇게 누구 자식인지도 모르는 애 데려다가 부모 찾아주려고 노력해 가면서

혹시라도 애 아플까봐 예방접종까지 시켜주는 세심한 사람도 있는데 저렇게 지 자식까지 죽여?
나쁜X, 천벌을 받아야 해"
누구랄 것도 없이 신랑과 동시에 욕을 했습니다.




그렇게 입양 되어서 양어머니에게 죽음을 당한 그 아이는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아이였겠지요?
또 버림 받은 건지 잃어버린건지...어쨌든 오늘 낮에 본 아이도 부모를 잃은 아이이구요.
아이들 모두 똑같이 부모를 잃었지만 어떤 양육자를 만났느냐에 따라 생의 방향이 갈라진 것이네요.

참나...아이의 인생이 복불복도 아니고...
낳기만 낳았지 책임지지 않는 부모들때문에 도대체 아이들은 무슨 죄인지...

비슷한 상황에 달라도 너무 다른 극과 극인 영아 시절을 보내게 된 아이들...
결론이야 어떻든 원인 제공자들은 모두 그 아이들을 낳은 엄마들이군요.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버려야만 할 만큼 딱하고 피치못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부모들의 그 피치 못할 사정으로 버려야만 했다해도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지요.


운 좋아 좋은 부모 만나 잘 살면 좋겠지만
재수없어서 나쁜 부모 만나면 구박받고, 더 재수없어서 다시 버림 받고,
극단적으로 죽임까지 당할 수도 있는 아이들은... 
처음 낳아지는 순간부터 버림 받는 것도, 새로운 부모를 선택하는 것도...
아무 말도 못하고 선택할 수 없었던 아이들은 도대체 무슨 죄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