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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꿈은 꿀 수 있어 더 아름답다. '오빠밴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간판 코너로 만들고자 야심차게 내 놓았던 오빠밴드.
결국은 높디 높은 시청률의 벽을 깨지 못하고 지난 10월 19일 일산 MBC 드림센터의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폐간 되었다죠.
몇 일간의 여행으로 인하여 한동안 TV도 보지 못하고 인터넷도 접할 기회가 없었다 보니 이제야 그 소식을 알게 되었네요.

한창 패미리가 떳다를 열심히 보다가 싸이월드 대본 유출사건 이후로 왠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회의감과 배신감이 들어 몇 개월 동안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시간에는 차라리 딸내미와 놀아주는 자유 시간이었지요.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 '칫...저것도 설정이겠지. 저 말도 대본에 있으려나?' 빤히 설정모드가 다분한 프로그램들을 보다가 보면 식상함과 한심한 기분마저 들어 아예 TV를 끄고 살던 어느 날 철 없었지만 꿈 많았고 무모 했지만 행복했던 젊은 날의 향수를 일깨워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바로 '오빠 밴드'였습니다.

지금은 중년이 훌쩍 넘어버린 대부분의 맴버들...젊은 날 잠시나마 음악인의 꿈을 꾸었던 그들이 모여 연주하는 추억속에 잊혀졌던 음악들을 다시금 들을 수 있었던 재미를 이젠 느낄 수 없겠군요.
간단한 코드 조차도 잡지 못하여 헤매던 멤버들이 한 주 한 주 회가 거듭되어 갈 수록 일취월장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 또한 괜스레 들뜨곤 했었는데...



'오빠 밴드'의 최고의 강점은 젊은 날에 대한 향수와 현실과의 괴리감으로 차마 이룰 수 없었던 꿈의 대리만족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한 때 음악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시절이 있었으니 아직은 현실에 눈 뜨지 못했던 21살의 꽃 처럼 아름다웠던 나이였습니다.
학창시절 (지금은 가수가 되었죠) 친구 채연이와 재미 삼아 기타를 딩가딩가 치고 집 근처의 건대 음악 동아리의 연습실에 드나들며 악기 몇 가지 만져 보면서 음악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키웠었지요.
그러다 대학을 가고 학교 선배가 보컬로 활동하고 있는 한 인디 밴드에 방문하던 날...
실력과 열정 그리고 패기는 있으되 가진 것은 전혀 없었던 그 밴드 하지만 젊다는 것과 꿈이 있다는 것이 큰 재산이었던 그 분들을 따라서 저도 음악 한 번 해 보겠다고 손가락에 굳은 살이 베기고 피가 나도록 연습하며 잠시였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 베이스 기타리스트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 마저 꾸었었죠.
물론 그 꿈은 무명 밴드의 설움과 배고픈 생활을 이겨낼 자질과 인내심이 전혀 없는 하랑맘에게는 채 1년을 못넘기고 접어야 했던 하룻밤의 꿈에 불과 했지만 말입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제 선택은 똑같을 것 입니다.
결국 그때의 다른 맴버들도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각자 삶의 길로 전향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한 순간이었을지언정 자신의 꿈을 위해 올인 한 경험이 있었다는 건 평생에 두고두고 큰 재산과 추억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의 그 열망과 추억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슴 한 곳에 아련하게 자리 잡아 문득문득 떠오를때면 새삼스레 두근 거리는 설레임으로 남았습니다.

'오빠 밴드'의 맴버들이 못 다 이뤘던 젊은 날의 꿈을 향해 서툴지만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는 모습들을 통하여 제가 못 이루었던 꿈이 생각나 대리만족이 느껴졌고 그 때 듣고 심취해 연주했던 노래들을 들으며 어리고 행복했던 나날들을 회상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들의 공연 하는 모습을 보며 한 때 제 집 드나들듯이 드나들었던 홍대 라이브 클럽들이 그리웠고 한 겨울 추운 줄도 모르고 밤새 술잔을 기울이다 동트는 것을 보곤 했던 신촌 뒷 골목의 허름한 포장마차가 생각났습니다.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 결국은 막을 내리게 된 '오빠밴드'를 보며 '역시 꿈은 꿈일 뿐인가...현실은 이게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추억은 다시 마음 한 켠에 접어두고 다시 엄마로써 아내로써 그리고 지금 제 자신으로써의 삶에 충실 해야 하겠지요.

꿈은 꿀 수 있을때 더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늘 꿀 수 있기에 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