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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육아는 행복해

매일 글과 사진을 보내주는 어린이집, 경계해야 하는 이유.


이사 오기 전 딸아이가 다니던 어린이 집에서는
매일 아이의 하루 일과를 보내며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사진과 글을 보내는 수첩이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에 매일 가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세 번,

3시간~4시간 그러니까 반나절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

어느틈에 쓰시는지 매일 반도 아닌
우리 딸까지 신경 써 주시더군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누구랑 노는지...
항상 궁금한 엄마에게는 참 고마운 일이지요.



아이들 돌보기도 바쁜 선생님들 사진은 언제 찍고, 수첩은 언제 쓸까?

그런데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 종일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몇 시간 있다 오는데
아이들 돌보기도 바쁘신 선생님들

어느결에 사진도 찍고 정리하고 뽑아서 정성스런 글까지 곁들여 보내실 시간이 있으신 걸까요?

아침에 비어있던 페이지가 어린이집에 다녀 온 몇 시간 동안 채워져 있다면
그건 우리 아이가 머물러 있던 몇 시간내에 채워졌을텐데...
그렇다고 우리 딸아이 수첩만 쓰시는 것도 아니고 반 아이들의 수첩을 모두 작성하시려면
그 또한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릴터인데

그럼 선생님이 그 페이지를 채우시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방치 되어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첩쓰기'가 가장 힘들었던 놀이학교 근무 시절...!!!

지금도 영유아를 둔 엄마들 사이에서 이름만 대도 "아...거기..." 라고 알만한
고가의 놀이학교에서 몇 년간 근무 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기농 식단에 친환경 소재로 되어진 최고급 인테리어
당시 우리 나라에서 보기 드문 고가의 수입 교구재와 각종 놀이시설들 외에 기존 어린이집과의
차별화 전략 중 하나가 매일 아이의 일과를 적어 보내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쓰이는 명칭으로는 수첩쓰기였습니다.
점심 먹고 한 시간정도 후면 집으로 돌아가는 반일반제 놀이학교 였기에 오전 중에 수첩쓰기를 끝내야 했었지요.
(지금은 가정 어린이집에서도 매일 그와 같은 편지들을 써서 보내기도 할 만큼
일과를 적어보내는 수첩이 보편화 되기도 했나보더라구요. 마주보기 수첩이라고 부르는것 같던데...

그때만 해도 그렇게까지 정성스럽게 매일 수첩을 작성하는 원은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엄마들은 대환영이었고 어쩌다 선생님의 일과가 바빠 수첩을 빠뜨리는 날에는
항의 전화가 올 만큼 엄마들은 수첩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엄마들은 알았을까요?
그게 선생님들에게는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 일이고, 또 그 편지들이 작성되는 시간 동안
내 아이는 장난감들과 함께 방치되어 있었어야 했다는 것을요...
편지에 글자 수가 많은 반 일 수록 방치 되어있는 시간은 더 길다는 것을...


쌤...수첩 몇 개 썼어?

놀이 학교의 최고의 장점인 소수 인원으로 저희 클래스는 5명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간혹 특별한 일이 있는 날도 있지만 대부분 그 날이 그 날이고, 그 수업이 그 수업인 하루하루의 생활속에
매일 5명의 아이들의 생활을 적고 칭찬하고...하다보면 나날이 작문 실력이 늘어 갔습니다.
그나마 저희 반은 인원이 적었기에 망정이지 8명씩 정원이 가득 찬 선생님들은 매일매일 수첩때문에
늙는다는 우스갯 소리까지 했었습니다.
선생님들 사이의 안부 인사가 "쌤, 수첩 몇 개 썼어?" 였으니까요.
소수 정예 놀이 학교에서 몇 명 안 되는 아이들을 관리하는 선생님들도 이럴진데
한 반에 10명 이상 되는 일반 어린이집 선생님들
매일은 커녕 일주일에 한 번씩도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생활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의의를 좋은 의의를 둘 수도 있지요.
하지만 아이들을 돌 보는 일만으로도 벅차게 힘들고 바쁜데
그 외에 다른 업무도 봐야 하고 수업 준비들을 하다보면
일주일에 2~3일은 당연하게 야근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엄마들이 매일 목을 빼고 기다리는 그 수첩을 쓰는 일은
그렇지 않아도 박봉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선생님들에게
크나큰 일거리 하나를 얹어주는 격이었죠.

예전에 일했던 경험만으로 선생님들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 절대 아닙니다.
선생님들이 피곤하고 다른 업무에 매달려 있으면 그만큼 우리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을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걱정 되어서 하는 말이지요.


선생님 스트레스를 덜어드리면 그 덕은 내 아이가 받는다.

이런 사정을 알았던지라...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받게 된 수첩을 보면서 참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집에는 이 수첩 보내지 말라고 할까? 아니야...다 보내는데 또 나만 안 받겠다고 하기도 뭐하고...
사실 궁금하기도 하잖아? 근데 그 짧은 시간에 언제 또 이런 걸 작성해? 선생님도 너무 스트레스 받겠다...'

고민하다가 '선생님 하랑이는 매일 어린이집에 가는 것도 아니고 짧은 시간 머물다 오는데 그 사이에 정성껏 써주신 수첩 잘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선생님께서 많이 부담 되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굳이 매일 챙기시지 않으셔도 괜찮으니 너무 부담스럽게 느끼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라는 답장을 보내기도 했었습니다.

그나마 우리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약소한 메모와 사진에 속하더군요.
우리 딸 아이보다 한 살 많은 이웃에 사는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과 주고받은 수첩을 본 일이 있습니다.
하루 동안 왠 사진들을 그렇게 많이 찍었는지 그 사진들 아래 마다 빽빽한 글씨의 선생님 코멘트들...
그리고 반대쪽 페이지는 아이 엄마인 친구가 선생님께 보내는 답장으로 빽빽했습니다.
"에고...이 어린이집 선생님 너무 힘들겠다. 너도 너무 매일 답장 빽빽하게 쓰지마...
선생님 입장에서 엄마가 이렇게 열심히면 어쩌다 못 쓸날이 있어도 무리하게 되니까.
적당히 해라...너도 답장 쓰는 것도 일이 되겠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아이가 잘 노는지, 구박은 안 당하는지, 무엇을 먹는지...
모든게 궁금하기만 한 엄마 입장에서 아이의 생활을 적어보내 주는 수첩 참 반가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특별한 날이나 일이 있을 때 외에 매일 아이의 하루를 낱낱이 적어 보내는 수첩이라면
'이 수첩은 과연 언제 쓰셨을까? 이 수첩 쓰시는 동안 우리 아이는 뭐했을까?'
라는 의문과 경계 한 번쯤은 갖어야 마땅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