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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랑이네 엿보기/평범한 일상들

현금 뭉치가 들어 있는 지갑을 주웠습니다.



당시 전 센터에서 아이들과 교구를 가지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원장님께서
"김쌤...00원에 가서 00 교구 시연 좀 하고 와 줄래요? 내가 가야하는데 아이가 아파서 지금 들어가야 할 것 같아.."
마침 수업이 없었던 저는 투덜거리며 원을 나섰지요.

바로 옆에 있는 원이라 금방 도착했고 약속 시간 보다 1시간 가량 일찍 도착했습니다.
당시 하랑맘은 스타크래프트에 푹~ 빠져있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접속해서 한 게임이라도 즐겼었지요.
여담이지만 스타크래프트는 길드 대회에서 우승 멤버였을 만큼 꾀 괜찮은 실력이었구요,
스타 뿐 아니라 새로나온 겜이란 겜은 다 섭렵하던, 밥 먹고 일 하는 시간 빼고는 게임만 하던 겜순이었습니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던 별명이 사이버 소녀였을 정도였지요.
지금 제 모습보면 친구들이 깜짝 놀라요. 평생 겜만 하고 살 줄 알았더니 제법 살림하는 시늉하면서 산다고.. ㅋㅋ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샛네요...
암튼 그날도 어느새 쉬는 시간을 빼앗긴 짜증스러움도 어느새 잊은 채 오호~횡재를 외치며 겜방으로 향했습니다.



"아저씨, 00마우스와 00키보드 있는 자리로 주세요."
스타 마니아들은 아시겠지만 게임의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이면 마우스와 키보드의 상태는 매우 중요하구요,
손에 딱 맞는 선호하는 마우스들도 다 정해져 있습니다.
나름 까다로운 저의 주문에 게임방 알바는 구석에 있는 자리를 가리키더군요.

접속을 하고 한 게임 하기에도 빠듯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얼른 자리로 가서 앉으려는데...
검정색 지갑이 보였습니다.
지갑이 미처 접히지 않을만큼 만원짜리가 다발로 들어있는 지갑이었습니다.
얼핏보아도 족히 백만원 이상은 되어보이더라구요.
방금 앉았다가 나간 사람이 빠뜨리고 간 듯 보였습니다.




순간 심장박동수가 매우 빨라졌고 키보드를 치는 제 손은 가늘게 떨렸습니다.
일단은 지갑을 주워 컴퓨터와 제 가방 사이에 두었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수표도 아니고 현금 다발이니 들고나가서 쓴다해도 문제 될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얼른 가방에 넣고 나갈까? 아니야...그래도 애들 가르치는 선생님인데...'
'지금 당장 가서 알바한테 말할까? 아니지...그럼 주인 찾아 줄지 자기가 쓸지 아닐지 알게 뭐야.'
'경찰서에 가져다 줘? 그것도 좀...'
알바는 못 믿겠고, 경찰서에 가져다 줘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주저하고 있었던 건
정말 솔직히 욕심이 나서 였습니다.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유아계통의 일이 참 박봉이라 당시 백만원을 조금 웃 도는 정도의 월급을 받던 저에게
한달 월급과 맞먹는 눈먼 돈이 생긴다는 건
몇 개월은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그래...일단 내가 있는 동안 주인이 찾으러 오면 주고 아님 말구, 찾으러 오지 않는 건 절박하지 않은걸거야...'
일종의 도박하는 기분이었지요.

게임에 접속을 했건만 소심한 하랑맘 심장이 떨려서 집중이 안 되더군요.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요? 한 아저씨가 헐레벌떡 제 자리로 왔습니다.
"저기요...혹시...여기에 지갑이 떨어져 있지 않았나요?"

뚜둥....주인이 왔네요.
좀 실망스럽긴 했습니다만 전 제 가방을 치우며

"이거 말씀이시죠?" 하고 자연스럽게 웃으며 건네 주었습니다.
"아...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아...내가 함부로 욕심을 내어서는 안 될 돈이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섭섭한 마음도 들긴 하더라구요.
또 한 10분 후...그 아저씨는 커다란 과일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저기요.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그 인사를 드려야 할지...이거라도 드리려고 다시 왔습니다."



그날 저녁 친구들과 함께 맥주 한 잔을 하면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갑자기 친구가 펄펄 뜁니다.

"아유...바보...그 걸 바로 들고 나와야지...거기 앉아있다가 주인 찾아주냐? 아님 모른다고 하던가...
돈에 이름이 써 있는것도 아니고 니가 아니라면 어쩔거야..."

"야야...그래도 내가 애들 가르치는 사람인데 그깟 돈 백때문에 양심 불량으로 살면 되겠냐.
그리고 그 아저씨 그 돈 잃어버리면 큰 일나는 거였나봐...그러니깐 그렇게 감사하지...
대신 과일 바구니 생겼잖아...언니랑 먹어야지...울 언니가 디게 좋아하겠다..."

당시 언니와 자취를 하던 하랑맘은 그저 공짜로 생긴 과일 바구니가 마냥 좋더군요.


어쨌든 주인에게 돈을 돌려준 것은 잘 한 일인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눈먼 돈 백 만원이 생겼다고 해도
그저 흥청망청 썼겠지 별다른 일을 했겠습니까...

물론 잠깐 한 두달 반짝 풍요롭게 해 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딱 그뿐.
제 인생을 크게 바꿀만큼 큰 액수는 아니었으니깐요.

하지만 그 아저씨에게는 당장 누군가의 병원비 였을 수도 있고,
사정이 어려운 회사의 공금이었을 수도 있잖아요.
저의 잠깐의 욕심때문에 그 아저씨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죠.

어쨌든 언니와 저는 한 일주일간 풍족하게 천연 비타민을 섭취 할 수 있었습니다.